2010/12/17 09:55:47
◆다리 근육 약해지는 병… ‘철도 놀이’로 꿈 찾다
어진이가 지하철을 좋아하게 된 건 초등 2학년 때. 다리 근육이 점점 약해지면서 두 발 대신 휠체어에 의지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바깥나들이가 녹록지 않았던 어진이의 유일한 놀이터는 마루였다. 아버지 김병욱 씨(44세)는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 보니 어진이가 할 수 있는 놀이라곤 기껏해야 게임 정도였다”며 “그래도 아이와 함께 할 만한 취미가 없을까 고민하던 중 ‘철도 모형을 수집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미로 시작된 부자(父子)의 철도 모형 수집은 어느새 일과가 됐다. 모형 가격이 제법 비쌌지만 하나 둘 모으다 보니 3년 만에 20세트까지 늘어났다. 철도 모형 한 세트는 기차 외에 차량기지·기차역·선로·산·터널 등이 모두 포함된, ‘실제 철도의 축소판’이다. 선로 사이 자갈까지 놓여 있을 정도로 세밀한 게 특징. 단순히 기차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주변 지형까지 맘대로 배치할 수 있는 철도 모형의 매력에 어진이는 푹 빠졌다. 놀이로 시작된 관심은 자연스레 철도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다.
매주 일요일 어진이의 집 마루에선 어김없이 ‘철도 놀이’가 시작된다. 모형을 설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이 시간만큼은 어진이도, 아버지 김씨도 진지하다. 매번 다른 형태의 배치를 고민, 또 고민해 선로를 깔고 열차를 작동시킨다. 철도를 차지하는 주인공은 언제나 지하철이다. 지하철은 어진이가 철도 모형 중 가장 좋아하는 열차다. 어진이는 “유럽 기차도 멋있지만 다양한 형태와 독특한 멋을 가진 지하철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수많은 기차를 제쳐놓고 어진이가 지하철 기관사를 꿈꾸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