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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논술] 서양 세계를 제패한 '1000년 제국' 로마가 남긴 것은?

2010/10/28 03:06:05


◆개방성과 포용성을 바탕으로 1000년을 이어간 로마제국

유명한 일본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는 '작은 변방의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어떻게 대제국을 세울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점에서 출발해 30년 동안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집필했다. 그녀는 "로마제국이 1000년 동안 유지된 것은 개방성과 포용성에 있다"고 말한다. 타민족과 타 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 적까지도 포용하는 자세를 가졌기에 로마제국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오랜 기간 유지됐고, 300년간의 전성기를 누렸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문화는 이런 개방성과 포용성을 근거로 그리스 문화를 흡수한 복합적 문화 형태를 형성했다. 우리가 '그레코로만(Greco-roman)'이라고 일컫는 미술 양식이 바로 이러한 그리스 문화를 바탕으로 한 로마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제국을 형성한 로마제국은 그들의 지배지에 로마문화를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으로 전파했다. 세계 최강의 군대, 다민족 연합 군대인 로마 군대가 지나가는 곳마다 도로, 수로, 다리, 공공극장, 공중목욕탕을 만들었고, 법률서비스를 시행했으며 피지배자의 주민등록증을 발급했다. 로마 황제들은 건축물로 세계 곳곳에 그들의 흔적을 남겼다. 철학가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낸 것 중 가장 위대한 기술의 발전이 로마제국을 존재하게 했다"고 평했다.


◆로마제국의 눈부신 건축 공학기술


로마 미술을 이야기할 때 건축의 토목공학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 미술이 인간성을 존중하고 조화와 균형을 중시했던 데 반해, 로마 미술은 공중목욕탕, 도로, 수로 등 실용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완벽한 건축미를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건물 입구나 창문에 쓰인 반원 모양의 궁륭형 아치와 둥근 모양으로 된 돔 스타일을 발명했는데, 이런 혁신적인 건축기술의 발달로 로마인들은 최초로 거대한 내부 공간을 받침대 없이 덮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콘크리트를 최초로 사용했고, 공회당, 목욕탕, 원형경기장, 바실리카 등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는 공공건물 중심의 건축이 특히 발전했다.

그 대표적 건축물 중의 하나로 오늘날에도 로마 시내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콜로세움(Colosseum)'이 있다. 기원후 70~82년에 세워진 콜로세움은 거대한 원형극장으로 오락극장 겸 스포츠 경기장이다. 로마 황제들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고자, 정치적인 실수를 만회하고자, 대중을 선동하고자, 대중에게 오락과 스포츠를 제공했다. 카이사르 시절부터 대중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했는데, '빵과 서커스'라는 오락을 이용한 대중 정치의 효과는 대만족이었다. 콜로세움의 원래 명칭은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인데 경기장 옆의 '콜로서스'라고 불린 네로황제의 거대한 동상 때문에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로마인은 궁륭형 아치와 콘크리트를 이용해 그리스인이 꿈도 못 꿨던 대규모의 건물을 건축했다. 그리스의 극장은 언덕 사면에 축조됐으나 로마의 경우는 평지에 엄청난 규모로 지어져 건축 공학의 발전을 증명한다.

5만 명의 관람객을 수용했던 콜로세움은 신분에 따른 객석 배치, 3000명이 넘는 배우가 공연할 수 있는 무대, 승강장치와 출입구 등이 효율적으로 설계돼 있어 현대의 경기장 설계에도 응용되고 있다. 약 50m 높이, 6단의 객석, 전면은 4개 층으로 이뤄졌는데 그리스 건축 양식이 사용됐다. 1층은 도리아식의 로마식 변형(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과 4층은 코린트식으로 80개의 아치를 구성하는 벽돌과 콘크리트로 지어졌고, 외장은 대리석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훗날 바베리니(Barberini)를 비롯한 로마 귀족들이 자택을 장식하고자 대리석을 떼어가 훼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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