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 교수가 평범한 코팅용지처럼 보이던 판을 가리키며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연필가루가 묻은 것처럼 엷은 회색인데, 바로 이게 투명기판으로 쓰이는 그래핀 필름"이라고 말했다.
건너편 실험실에선 연구팀들이 그래핀 합성 작업을 하느라 분주했다. 크기가 각각 다른 투명 원통에 구릿빛 금속이 놓여 있었고 곳곳에 투명기판들이 보였다. 이곳을 거치면 연구실 벽면에 붙어 있던 그래핀 필름이 모습을 드러낸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배수강씨가 "니켈을 촉매로 사용해 고온에서 가스를 반응시키고 탄소를 녹이는 과정 등을 거쳐 그래핀 필름을 합성한다"고 말했다. 홍병희 교수팀이 개발한 이 합성법은 화학증기증착법으로 불린다.
연구진들이 그래핀 합성에 쓰는 시간은 하루의 절반쯤 된다. 배씨는 "매일 자정 넘어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래핀 합성에 있어서는 우리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에 힘든 것도 잊는다"고 했다. 홍병희 교수팀은 작년 가로·세로 10㎝ 크기로 그래핀을 합성하고 회로를 만드는 기술도 선보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작년 초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은 지난해 국내 학자들이 게재한 SCI급 논문 중 최다인용을 기록했고, 올해 6월에는 7㎝(3인치) 그래핀을 터치스크린으로 상용화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논문을 실었다.
이 연구실은 박사급 8명을 비롯해 20명으로 구성됐다. 다양한 전공으로 연구팀을 꾸린 것도 특징이다. 자정까지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중요한 논문 발표를 앞뒀을 때엔 날을 고스란히 샐 때도 많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최근 대기업 취업이 확정된 심성현씨는 "훌륭한 장비들이 갖춰져 있어 개인연구를 하기에도 좋았고 동료들과 공동연구를 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나누고 서로 자극을 받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연구성과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외국에서도 연구팀 합류를 묻는 전화와 이메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홍 교수는 "내·외국인 구별하지 않고 열정과 실력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구를 함께 할 것"이라며 "우리가 다른 연구팀보다 한발 앞서갈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시행착오 가운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구성원 개개인의 열정 덕분"이라고 말했다.
나노분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2005년 문을 연 성균나노과학기술원은 연구실험실(6700㎡)과 교육실습실(2556㎡)에 고분해능 투과전자현미경, 전계방사형 주사전자현미경, 핵자기공명분광기, X선회절분석기 등 최첨단 장비 70여점을 갖추고 있다. 100% 장학금 혜택에다 세계 석학 강의 등 수준 높은 교육프로그램으로 나노기술 세계 5위권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처럼 특정 연구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 방식의 전폭적 지원이 높은 성과를 내자 나노과학기술원에서 인턴실습을 받고 싶다는 지원자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부터 이곳에서 연구체험을 하고 있는 박명진씨는 "화학을 전공했지만 그래핀이라는 새로운 소재에 관심이 있어 지원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투명전극 시장규모가 2012년에 1조2000억원쯤 될 것인데 그래핀 투명전극은 4~5년쯤 후엔 상용화될 것"이라며 "이런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우리가 확보했다는 점에서 학계와 산업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핀을 최초로 발견한 가임 교수가 노벨상을 탈 것 같다"는 홍병희 교수의 전망은 이튿날 그대로 실현됐다. 안드레 가임 교수와 그의 제자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이다. 홍 교수는 "전날 내가 한 말을 바다 건너 멀리서 들은 것 같다"며 "전자종이와 입는 컴퓨터 등 그래핀이 세상을 바꾸는 날은 반드시 우리가 앞당기겠다"고 말했다.
성균나노과학기술원 홍병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