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 대왕과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
키루스 대왕은 이란인들에게는 '건국의 아버지'다. 그는 나뉘어 있던 2개의 이란왕국을 통합, 페르시아 제국의 기초를 다졌다. 그의 치세 동안 페르시아는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동아시아의 인도까지 진출했다. 29년 동안 통치하면서 메디아, 신바빌로니아, 리디아 제국을 정복하고 이집트만 정복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는데,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 정복에 성공해 대제국을 이뤘다.
이후 기원전 521년 12월에 왕위에 오른 다리우스 1세(Darius I, 재위 기원전 521~486년)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Xerxses, 재위 기원전 486~466년)가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500년 경 세계 최대의 제국을 형성했고, 이후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과 벌인 이수스 전투(기원전 333년)에서 패하기 전까지 대제국의 영화를 누렸다.
위대한 공적을 세워 '다리우스 대왕'으로 불리는 다리우스 1세는 재위 기간 동안 유럽에서 아시아 인도에 이르는 정복지와 페르시아 도시에 활발한 건축 사업을 벌였다. 도로공사를 하고 도시를 정비하고 기념비와 화려한 궁전을 세웠다. 당시 만들어진 엄청난 규모의 유적과 황금빛의 찬란한 유물은 현재까지 남아 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활약한 페르시아 이모탈
다리우스 1세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통치하던 시기,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가 격돌하는데 이를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라 부른다.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로 유명한 아테네 마라톤 평야에서의 전투와 스파르타 군사 300명이 끝까지 항전한 테르모필레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이 벌어졌다. 비록 그리스 원정에는 실패했지만 당시 전쟁에서 활약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친위대이자 호위 무사들의 모습이 바빌론에 세워진 '이슈타르 문'과 겨울궁전으로 사용한 수사(Susa)의 다리우스 대왕의 궁전에 남아있다.
다리우스 대왕 궁전 벽화에 묘사된 페르시아 병사들은 '페르시아 이모탈(Persian Immortals)'이라고 불린다. '페르시아 이모탈'은 페르시아 제국의 호위무사 부대로 불사조 또는 불멸의 군대라는 뜻을 가졌다.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정예부대다. '이모탈'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의 기록에 따른 것으로, 다리우스 대왕이 만든 최강의 부대로 왕의 신뢰를 받는 지휘자를 포함, 언제나 1만 명의 규모를 유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