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14 03:54:42
◆걷기의 생태학적 의미
많은 사람이 걷지 않는 작은 길을 걸을 때는 약간의 두려움과 머뭇거림이 있다. 눈에 확 띠는 이정표가 없이 걷다보면 샛길로 빠져서 길을 헤맬 수가 있다. 이 때 새로운 길을 선택해 걷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인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 자유를 누리면 가식이 없는 사람과 꾸미지 않은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구불구불 이어진 제주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인공적 미보다 자연적 미에 경도된다.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모든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연과 일체감을 이룬다. 올레길을 걷는 것은 큰 아스팔트길에 의해 끊어지고 막히고 사라져버린 길을 복원해내는 것으로써 생명운동의 시작이다.
걷는 것은 근력 강화보다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크다.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인 말초적 자극과 무조건적 반응 시스템을 해체시켜 왜곡된 감각 기능을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걷기의 사회학적 의미
자연스러운 호흡에 맞게 걷다보면 디지털의 세계, 나노의 세계에서 촌각을 다투며 사는 질주하는 세계에 대해 반성한다. 자연의 속도를 극복하는 것이 문명의 발전이라고 했지만 속도를 낼수록 인간은 기계가 되고 기계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했다.
'놀멍 쉬멍 걸으멍'('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의 제주도 사투리)이 제주 올레길 걷기의 모토이다. 성실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걷기는 폴 라파르그가 주창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떠올린다. 이 권리를 제주도 말로 '간세다리 정신'이라고 부른다. 놀고 쉬는 것이 창의적 인간의 전제라는 것을 호이징가는 호모루덴스(Homo Luden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걷기는 항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삼보일배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시위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걸었다. 간디는 소금행진을 통해 독립을 호소했다. 인도인의 소금 생산을 금지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한 항의표시로 간디와 추종자들은 수백 킬로미터를 걸었다. 마틴 루터 킹은 흑백차별의 부당함을 평화로운 행진을 통해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