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02 06:51:21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나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은 첫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첫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에 대한 기억의 영화라고 보는 편이 옳다. 과거에 묻혀 있던 기억은 현재의 시점에서 새롭게 재탄생 된다. 묻혀 있던 보물이 발견되듯이 과거의 기억들은 현재의 삶을 변화시킨다. 첫사랑이라는 코드는 청소년기의 순결한 감정과 어울려 기억을 신성화한다.
신성화라는 말은 어떤 사실이 기억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되돌릴 수 없다는 한계는 기억을 신성화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된다. 어차피 과거의 일이고 변화될 수 없는 것이라면 아름다운 부분만이 취사 선택될 확률이 높다. 과거, 기억 속 연인의 모습이 아름답게 채색된 채 모자이크처럼 남아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한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올드보이'에서 비밀을 알아버린 오대수가 자신의 기억을 지워버리기 원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오대수에게 있어 '기억'은 현재의 삶을 속박하는 원죄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는 살기 위해서는 기억을 지워야 한다고 말한다. 때로 사람들은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천재였던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 전쟁의 공포감을 잊지 못하는 '디어 헌터'의 주인공들처럼 복수, 죄책감과 같은 개념도 고통스러운 기억과 연관된 개인의 감정들이다.
중요한 것은 동일한 경험과 체험일지라도 그것에 대한 개인의 반응이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예술은 바로 이 각기 다른 기억에 가치를 부여한다. 기억의 주관성은 다양한 해석의 토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