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낙서화가로 유명한 로버트 뱅크시는 이보다 한 술 더 뜬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이나 브루클린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슬쩍 걸어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끔 궁금해진다.
예술이란 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것을 예술이라 말해야 하며, 예술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런 궁금증에 정답까진 아니더라도, 한번쯤 생각해볼 기회를 던져주는 영화가 있다. 베토벤의 말년을 그린 음악영화 '카핑 베토벤'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베토벤이 아니라 안나 홀츠라는 이름의 젊고 지적인 23세 여성이다. 작곡가가 되기 위해 비엔나에 온 그녀는 베토벤의 악보를 멋지게 필사해낸다.
이야기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초연되기 사흘 전에 시작된다. 악필로 유명한 베토벤의 악보 필사를 맡기 위해 야망에 찬 여성작곡가 안나 홀츠가 찾아온다. 베토벤은 "여성 작곡가란 뒷다리로 걷는 개와 똑같다"며 우습게 여기지만,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그녀를 신뢰하기 시작한다.
베토벤이 실수로 'B 메이저'라 적은 악보를 그녀가 'B 마이너'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왜 멋대로 악보를 바꿨느냐고 다그치는 베토벤에게 이렇게 말한다. "바꾼 것이 아니라 교정한 겁니다. 선생님이라면 분명 B 마이너를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폭발이 있기 전에 서스펜스를 주려고 말이죠."
당시 베토벤은 후드의 떨림을 통해 간신히 음의 변화를 짐작하는 '귀머거리' 신세였다. 그런 그에게 재능 많고 열정적인 안나 홀츠는 새로운 예술을 함께 완성해나가는 멋진 동반자가 돼준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막 작곡을 시작한 청년 예술가답게 극도로 '형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베토벤은 형식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감성을 악보에 옮겨 적는다. 두 사람의 스타일은 영화 내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감독은 전적으로 베토벤의 편을 들어주는 대신, 관객에게 질문의 답을 넘긴다. 예술에 있어서 형식은 얼마나 중요할까, 예술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베토벤은 9번 교향곡 '합창'을 만들면서 아주 파격적이고 새로운 형식을 추구했다. 교향곡에 합창 코러스를 삽입하는 것은 당시로선 아주 이례적인 시도. 하지만 자칫 우스꽝스럽게 전락할 뻔했던 9번 교향곡 '합창'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안겨준다. 말년의 베토벤은 심지어 추한 것을 아름다움의 세계로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대 푸가 현악 4중주'는 추한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베토벤은 안나 홀츠에게 이 곡의 느낌이 어떤지 묻는다. 그녀가 "추한 것 같다"고 대답하자, 베토벤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도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나? 난 추한 것에 음악의 문을 열어줄 거야!"
베토벤의 생각대로 추한 것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감독의 대답은 확고하다. 아름다움은 고정불변의 가치가 아니다. 추한 것도 어떤 경지에 이르면 충분히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그런 경지를 개척하는 데는 비평의 몫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카핑 베토벤'은 베토벤의 행동을 통해, 예술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되 비평할 권리를 가졌을 때는 독하게 몰아붙여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