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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논술] 레이첼 결혼하다

2009/09/24 03:13:38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에 등장하는 레이첼이 아니라 킴. 제목에서 킴의 이름을 배제한 건 가족 사이에서 언제나 변두리에 머물러 있는 킴의 상황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언니 레이첼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집을 찾은 동생 킴은, 가족들 사이에 스며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으로 오랫동안 고생했고,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다 재활원 신세를 진 집안의 문제아. 가족 입장에서 골칫덩어리 킴의 출현은 반가우면서 한편으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언니 레이첼은 자신의 들러리로 동생 킴이 아니라 친구 엠마를 세우기로 약속한 상황이다.

아빠는 술과 마약에 절어 살았던 딸이 또 다시 사고를 일으키진 않을지 사사건건 걱정하고 잔소리하기 바쁘다. 집에 온 지 하루 만에 "숨이 막혀 못 살겠다"고 외치는 킴은 가족 사이에 있는 것을 재활원에 갇혀 있는 것보다 더 괴롭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문제아 동생 킴이 결혼식을 뒤엎을 만한 대형 사고를 일으키는 건 아니다. '레이첼, 결혼하다'는 특별한 사건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가족끼리 울고불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결혼식이 엎어질 만큼 심각한 위기상황이 닥치는 것도 아니다. 그 흔한 플래시백 하나 없이 가족의 갈등 상황을 이어가기 때문에, 이 가족의 전사를 알 수 있는 단서는 오로지 가족들이 무심코 나누는 대화뿐이다.

대화를 찬찬히 들어보면 문제의 발단은 막내 동생의 죽음이다. 킴은 어린 시절 동생 에단을 본의 아니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모든 비난은 킴에게 쏟아진다. 킴은 알고 보면 너무나도 순수하고 마음이 여린 캐릭터.

평생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녀와 모든 것을 보듬어주고 싶어 하는 아버지와 언니는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이 풀리지 않는 응어리를 안고 살아간다. 가족의 세계와 킴의 세계는 두 개의 평행선을 그리며 외롭게 흘러갈 뿐 어떤 지점에서도 만나지 못한다.

반듯하고 똑똑한 언니 레이첼은 동생을 따듯하게 감싸주려 하지만 망나니 동생 킴은 매번 착한 척하는 언니가 가증스럽다. 똑똑한 언니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질투한다. 자기가 갖지 못한 세계에 사는 언니에게 뭔가를 빼앗긴 듯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레이첼, 결혼하다'는 꽁꽁 눌러왔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가족은 서로에서 어떤 존재가 돼야 할까, 가족 구성원은 가족의 화목을 위해 각자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영화가 들려주는 해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레이첼은 남편 시드니와 새로운 가정을 만들며 아버지의 조언을 인용한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죠. 행복한 인생의 기준은 얼마나 사랑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을 했는가라고. 시드니 덕분에 저는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레이첼은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가족들 앞에서 당당하게 고백한다.

언니 레이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렵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돌아온 킴에게도 작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흔하고 진부하지만 가슴 깊이 울리는 사랑에 관한 명언들.

'레이첼, 결혼하다'는 구구절절 오래 전 기억들을 불러내지 않으면서, 가족이 왜 소중한지, 가족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뜨겁게 전해준다. 레이첼과 킴이 새겨들은 사랑에 관한 명언은 '가족을 내다 버리기 어려운' 우리들이 꼭 한번은 돌아봐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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