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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배 작가의 서울 이야기] 덕혜옹주와 덕수궁(하)

2009/12/17 09:53:54

1929년 5월 30일, 덕혜옹주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친정인 충북 청주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덕혜옹주는 그 소식을 들은 날, 온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배를 타고 조선으로 왔습니다.

덕혜옹주는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 지냈으며, 한밤중에 정원으로 나가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덕혜옹주는 정신병이 깊어져 갔습니다. 어떤 때는 영친왕 내외를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덕혜옹주의 병이 악화된 1930년 가을, 대마도 번주의 아들인 소다케시 백작과 옹주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듬해 봄 덕혜옹주의 병이 조금 나아지자, 두 사람의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덕혜옹주는 결혼하기 싫어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강제로 시키는 결혼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이 편안할 리가 없었습니다. 덕혜옹주의 병이 재발하자 남편은 그녀를 학대했고, 결국 이혼을 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미사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딸도 어른이 되어서는 아주 불행했습니다. 결혼 생활에 실패하더니 현해탄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덕혜옹주는 평생 ‘조발성 치매증’(정신분열증)이라는 정신병에 시달렸습니다. 동경 근처에 있는 마쓰사와 정신병원에 갇혀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1962년 조국으로 돌아왔는데, 일본으로 끌려간 지 꼭 37년 만이었습니다.
덕혜옹주는 낙선재라는 곳에 살다가 1989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비가 낳으면 '공주', 후궁이 낳으면 '옹주'
왕에게는 같은 딸이라도 누가 낳았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랐다. 왕의 정부인인 왕비가 낳은 딸이면 ‘공주’, 왕의 후궁이 낳은 딸이면 ‘옹주’에 봉해졌다.

공주, 옹주는 워낙 존귀한 신분이어서 대군, 군과 마찬가지로 따로 품계가 없었다. 서열로는 정1품 영의정보다 높다고 볼 수 있어 영의정보다 높은 봉급을 받았다. 그리고 왕궁의 잔치, 혼인 및 초상 등 모든 행사에 참석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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