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한반도 안에서만 쓴다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 한글학자와 한자학자의 만남(5/6) [조선에듀]
권재일 서울대 명예교수, 전광진 성균관대 명예교수,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기사입력 2022.11.28 08:22

●“‘학교(學校)’라는 한자어를 한글로만 쓰는 것이 ‘한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영어 ‘School’을 ‘스쿨’로 쓰는 게 한글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만큼 우매한 일”
●“참다운 ‘한글 사랑’ 위해선 한글을 글자 없는 민족에게 표기법으로 나눠줘야”

  • ▲ "중국 국경 내에 있는 소수민족과 타이완섬에 거주하는 원주민족 언어를 대상으로 한글 서사체계를 입안하여 분석 검토해본 것입니다. 그들 민족 언어에 대하여 현지 언어학자들의 음운 연구를 토대로 자음과 모음 체계를 종합 정리한 다음 한글로 대입할 경우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작업입니다."
    편집자주: 지난 10월 9일, 한글 반포 제576돌 한글날을 기념해 역사적이고 뜻깊은 만남이 있었다. 한글학자와 한자학자(漢字學者)가 줌으로 ‘한글 바로 알기’ 좌담회를 개최한 것이다. 좌담회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한글 바로 알기’를 치면 볼 수 있다. 좌담회에 참석한 한글학자는 권재일 서울대 명예교수다. 국립국어원 원장과 한글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재단법인 한글학회 이사장으로 있다. 한글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다. 
    한자학자는 전광진 성균관대 명예교수다. 조선일보에 ‘생활한자’ 칼럼을 12년간(1999년~2010년) 3300회에 걸쳐 집필 한 바 있다. 그야말로 한자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다. 한글 세계화 관련 국내 최다(最多) 논문 집필자이기도 하다. 전 교수는 ‘참다운 한글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날 사회를 본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같은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EBS 교육대토론’의 사회를 본 경력도 있다. 
    이번 한글·한자 토론은 기존의 소모적 논쟁에 머물지 않고 상생적 대안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조선에듀는 한글 바로 알기 좌담회 주최 측이 제공한 대담록을 6회에 걸쳐 소개한다. 한글과 한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 우리나라 어문 교육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 왼쪽부터 사회자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한글학자 권재일 서울대 명예교수, 한자학자 전광진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선일보DB
    ▲ 왼쪽부터 사회자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한글학자 권재일 서울대 명예교수, 한자학자 전광진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선일보DB
    제5부 : 한글, 바로 알아야 교육이 살고 나라가 산다(1)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그런 자리가 되어야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광진 예! 한자어 중에는 의미 투명성 높은 것도 있고, 낮은 것도 있습니다. 비중으로 보면 투명성이 높은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권 이사장님께서 예시한 한자어들도 형태소 분석을 통하여 의미를 얼마든지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논의를 이 방향으로 더 들어가면 예전의 한글, 한자 논쟁처럼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이 문제는 훗날을 기약하고 주제를 좀 돌려 보겠습니다.

    오늘 권 이사장님하고 저의 만남은 그런 논쟁보다는 서로 상생의 대안을 찾아내자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여기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서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 정신으로 이실직고(以實直告), 즉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그런 자리가 되어야 역사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한글 사랑’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한글 사랑, 이 문제도 또 여러 사람의 의견이 다른 것 같습니다. 무엇이 한글 사랑인가? 일찍이 이 문제에 대하여 제가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학교’라는 한자어를 한자로 쓰는 게(學校) 아니라, 한글로만 쓰는 것이 곧 ‘한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면 영어 ‘School’을 알파벳으로 S, C, H, O, O, L로 쓰는 게 아니라 한글로 ‘스쿨’이라고 쓰는 것이 한글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만큼 우매한 일이 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발상이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졌습니다.

    사회자 네, 전 교수님! 재미있습니다. 계속하십시오.

    “세종대왕께서 당시 한국어를 대상으로 입안한 한글 서사체계가 실제로 활용되기까지 5백 년이 걸렸다!”

    전광진 예! 한글 사랑을 좀 더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왜곡된 사랑과 구분하기 위해서 한글 사랑 앞에 형용사를 붙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참다운 한글 사랑’이라고 명명해 봤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두 가지 사명을 부여하였습니다. 하나는 ‘참다운 한글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참신한 한자 연구’입니다. 한자 연구를 하더라도, 좀 참신하게 하자, 현대적 시각에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그런 참신한 연구를 하자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두 가지가 사명 가운데, ‘참다운 한글 사랑’ 문제는 권재일 이사장님 의견하고 100% 동일합니다. 일찍이 훈민정음학회의 창립 단계 때부터 학술이사로 함께 참여하였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한글 사랑이란 문자의 편익을 누리지 못하는 무문자(無文字) 민족에게 한글로 문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28년 교수 생활 동안 ‘참다운 한글 사랑’이란 사명감에서 많은 논문을 썼습니다. 무문자 민족의 언어를 한글로 서사(書寫, writing, 보조적인 수단의 表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임)하여 writing system(書寫體系)을 구축하는 문제에 관한 논문을 지금까지 17편 썼습니다. 주로는 중국 국경 내에 있는 소수민족과 타이완섬에 거주하는 원주민족 언어를 대상으로 한글 서사체계를 입안하여 분석 검토해본 것입니다. 그들 민족 언어에 대하여 현지 언어학자들의 음운 연구를 토대로 자음과 모음 체계를 종합 정리한 다음 한글로 대입할 경우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작업입니다. 17편 논문 가운데 8종 언어에 대한 한글 서사체계를 입안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가 실효를 거두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세종대왕께서 당시 한국어를 대상으로 입안한 한글 서사체계가 실제로 활용되기까지 5백 년이 걸렸다는 사실에서 보자면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장기적인 안목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런 ‘참다운 한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이 자리도 있게 되었던 겁니다. 우리 권재일 교수님하고 뜻을 같이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한자학자이지만, 한글 사랑도 남다른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 문제를 두고 어떤 한글 학자들하고도 문제든지 같이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노력해 왔습니다. 아무튼 ‘참다운 한글 사랑’ 문제는 권재일 이사장님하고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 네. 그 잠깐만, 전 학장님 잠깐만 멈추고, 우리 권재일 교수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광진 예, 예.

    권재일 전광진 선생님의 ‘참다운 한글 사랑’ 정신의 실천에 박수를 보냅니다.

    전광진 아이고! 감사합니다.

    “한글을 한반도 안에서 우리만 쓴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

    권재일 오늘 청중 중에서 안동에서 오신 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저희들이 지난주에 안동에서 열린 제8회 인문가치포럼의 ‘훈민정음 가치’ 토론회에서 바로 이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글을 표기법으로 문자 없는 민족에게 나누어 주는 일, 이것을 전광진 선생님께서 아까 ‘참다운 한글 사랑’이라 말씀하셨는데, 전폭적으로 저는 동의하고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배우기 쉽다고 하는 이 한글을 한반도 안에서 우리만 쓴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아직 글자 없는 민족들이 참 많은데 아까 전광진 선생님께서 직접 17편의 논문을 쓰시고 8개 언어의 표기법을 제시하셨다 하셨는데, 저는 선생님께서 대만에 있는 소수민족에게만 그런 문자를 나누어준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까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서로 토론했는데 그런 논의보다는 앞으로 한글을 위해서, 전광진 선생님 말씀대로, 참다운 한글 사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 학자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한글을 글자 없는 민족에게 표기법으로 나누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 민족에게 한글 표기법을 나누어 주었듯이, 지금 전광진 선생님께서 펼치는 이런 일에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전광진 선생님의 이런 한글 나눔 활동, 참다운 한글 사랑에 대해서 거듭 존경을 표합니다.

    사회자 네, 고맙습니다.

    전광진 예.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회자 저기 제가 전 교수님, 잠깐만 한 말씀 더 하고 갈까 합니다. 아까 주셨던 비유 중에 한글을 숟가락에 한자를 젓가락에 비유를 해주셨는데, 보니까 저희가 숟가락으로만 밥을 먹을 수도 있는 경우가 있고요.

    전광진 그렇죠.

    사회자 젓가락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고. 그런데 젓가락만 가지고서는 또 해결할 수 없이 숟가락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잖아요. 이렇게 비유를 이해하고 봤더니 한글 전용이냐 한자 병용이냐 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고 오히려 그걸 함께 하려다 보면 이 숟가락만으로 되는데 괜히 젓가락 가지고 설치다가는 오히려 더 밥 먹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하나 들었는데···

    전광진 예! 그렇군요.

    사회자 그다음에 제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아까 우리가 초성, 중성, 종성을 이렇게 한 글자로 한자처럼 만들려다가 보니까 요새 다른 나라에 한글을 나누어 주려고 할 때 컴퓨터로 타이핑을 하면 차라리 그걸 음절 단위가 아니라 그냥 쭉 영어처럼 이렇게 나열해서 쓰는 그런 방식으로 바꾸어야 현대에 맞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한자 병용을 안 하고 있으니까. 그게 가능한지를 우리 권재일 교수님하고 전광진 교수님께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게 어떤가요?

    권재일 예,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래전부터 그것을 ‘한글 풀어쓰기’라고 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음절 단위로 묶지 않고 쭉 나열하는 것인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 보았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도 현재 표기법 체계, 모아쓰기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서 그랬고요. 그다음에 또 하나는 우리가 ‘아버지’ 할 때 ‘아’에 ‘ㅇ’은 음가가 없는 영이잖아요. 풀어쓰기에서 이 ‘ㅇ’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런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놓여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컴퓨터화할 때 사실은 그래서 전에 조합형도 있고 완성형도 나왔지 않습니까? 컴퓨터화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풀어쓰기가 정말 적합한 방법인데,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걸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어서 지금 그 연구는 조금 주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회자 아, 그래서 제가 드렸던 질문은 다른 나라에 전파할 때는 차라리 풀어쓰기 방식으로 전파를 하면 그 사람들한테 더 익숙하지 않나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권재일 예, 그것도 저희들이 시도를 했습니다. 전광진 선생님께서는 아까 8개 언어의 표기법을 제시하셨다 하셨는데요. 남미에 볼리비아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저의 연구단이 3년간 겨울방학 때마다 가서 연구 활동을 했는데요. 거기에 있는 토착민족어 아이마라어에 훈민정음 체계를 표기법으로 나누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 언어에는 모음이 셋밖에 없어요. 그래서 풀어쓰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분들은 아직 모아쓰는 것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시도를 해본 적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하신 풀어쓰기 문제는, 글자 없는 민족에서 훈민정음, 한글을 문자 체계로 나누어줄 때 대단히 의미 있는 내용입니다.

    사회자 네, 고맙습니다. 우리 전 교수님 말씀 듣겠습니다.

    “한글로 써놓은 한국어 문장이 읽기 쉬운 것은 음절을 단위로 써놓았기 때문!”

    전광진 예! 권재일 이사장님과 후배 교수님들이 그런 연구를 한 것을 압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글을 창제할 그 당시에 한글 자모의 자형을 고안할 때부터 모아쓰기(合而成字)를 전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알파벳처럼 풀어쓰기, 즉 차례로 나열하는 것을 전제하였다면 한글 자모의 모양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무튼 ‘한국어’를 ‘ㅎㅏㄴㄱㅜㄱㅓ’ 이렇게 적으면 음절 구분이 어려워 읽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6바이트가 12바이트로 늘어나 공간도 많이 차지하게 됩니다.

    세종대왕께서는 이런 문제를 일찍이 아셨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알파벳처럼 나열해서 풀어쓰기 하는 방식이 절대적으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영어를 발음하기, 읽기가 어려운 것은 어디까지가 하나의 음절인 줄을 알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글로 써놓은 한국어 문장이 읽기 쉬운 것은 음절을 단위로 써놓았기 때문이지요. 우리 인간의 실제 발음은 음소가 아니라 음절을 단위로 합니다. 그래서 음절을 단위로 하는 한글 맞춤법이 훨씬 과학적인 셈입니다.

    그리고 외국의 모든 언어를 한글로 서사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풀어쓰기를 하면 가능한 일이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발음하기 어렵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지요. 현재처럼 모아쓰기를 하면 어두에 자음이 겹쳐 오는 음절 구조를 지닌 언어는 한글로 서사하기가 불가능합니다. smart와 같이 ‘CCVCC’ 같은 음절 구조를 지닌 단어는 한글로 모아쓸 수 없습니다. ‘ㅅㅁㅏㄹㅌ’라고 풀어쓰면 되겠지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사회자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주제로 넘어가시지요.

    전광진 아, 네! 그럴까요? ‘참다운 한글 사랑’에 대하여 더할 말이 많지만 시간 관계상 이쯤하고, ‘참신한 한자 연구’ 쪽으로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 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