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많이 아는 사람 생각 깊어... 성공의 크기도 달라”... 한글학자와 한자학자의 만남(4/6) [조선에듀]
권재일 서울대 명예교수, 전광진 성균관대 명예교수,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기사입력 2022.11.26 18:37

●“한글은 독서를 잘하게 하고, 한자는 독해를 잘하게 한다”
●“언어생활에 한자가 도움 되는 경우가 있어... 필요한 경우는 한자를 배워야지요!”

  • 이번 한글·한자 토론은 기존의 소모적 논쟁에 머물지 않고 상생적 대안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 이번 한글·한자 토론은 기존의 소모적 논쟁에 머물지 않고 상생적 대안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편집자주: 지난 10월 9일, 한글 반포 제576돌 한글날을 기념해 역사적이고 뜻깊은 만남이 있었다. 한글학자와 한자학자(漢字學者)가 줌으로 ‘한글 바로 알기’ 좌담회를 개최한 것이다. 좌담회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한글 바로 알기’를 치면 볼 수 있다. 좌담회에 참석한 한글학자는 권재일 서울대 명예교수다. 국립국어원 원장과 한글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재단법인 한글학회 이사장으로 있다. 한글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다. 
    한자학자는 전광진 성균관대 명예교수다. 조선일보에 ‘생활한자’ 칼럼을 12년간(1999년~2010년) 3300회에 걸쳐 집필 한 바 있다. 그야말로 한자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다. 한글 세계화 관련 국내 최다(最多) 논문 집필자이기도 하다. 전 교수는 ‘참다운 한글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날 사회를 본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같은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EBS 교육대토론’의 사회를 본 경력도 있다. 
    이번 한글·한자 토론은 기존의 소모적 논쟁에 머물지 않고 상생적 대안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조선에듀는 한글 바로 알기 좌담회 주최 측이 제공한 대담록을 6회에 걸쳐 소개한다. 한글과 한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 우리나라 어문 교육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 왼쪽부터 사회자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한글학자 권재일 서울대 명예교수, 한자학자 전광진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선일보DB
    ▲ 왼쪽부터 사회자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한글학자 권재일 서울대 명예교수, 한자학자 전광진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선일보DB
    제4부 : 한글의 우수성과 한계성에 대하여(2)

    전광진    예! 제가 잠시 또 PPT 화면을 공유하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사회자    예, 그러십시오.

    전광진 예! 한글은 대단히 쉽지만, 한국어는 정말로 어렵습니다. 우리의 논의가 한국어는 어렵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들어가지를 못한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지금부터는 그 문제를 조금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때, 한글이 그렇게 우수하고, 또 한글이 대단히 쉽고 좋다면, 한글만 알아도 언어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히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글만 알아도 될 것인가? 다른 문자도 더 알아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권 이사장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는 간단하니까, 이사장님 말씀을 먼저 들어 보는 것이 논의의 순리일 것 같습니다.

    사회자 아, 네! 
       
    “전문가 글에서는 영어를 쓰든 불어를 쓰든 한자로 쓰든 아니면 한자를 병용하던 그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다”

    권재일 저는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한글’만 알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지요. 왜 제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드리냐 하면 현대사회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정보화 사회입니다. 정보화 사회에 정보 격차가 있으면 그것은 언어의 글자 생활에 평등, 민주사회가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문 아는 지식인들이여, 조금 양보해라, 한문 한 글자도 모르는 사람하고 같이 생활해야 하지, 어떻게 한자 좀 안다고 신문에 한자를 씁시다, 언론에 한문을 씁시다, 이렇게 하느냐, 조금 참고, 전문가들끼리는 한문을 쓰든 영어를 쓰든 그렇게 하고, 일반 국민들을 위한 글자 생활은 한글만 쓰자, 100% 의사 전달이 완성되지 않더라도 설령, 95%, 또는 90%밖에 안 된다 하더라도 글자 생활의 평등을 위해서 저는 한글만 쓰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단, 일상생활 글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전문가 글에서는 영어를 쓰든 불어를 쓰든 한자로 쓰든 아니면 한자를 병용하던 그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겠지요. 그래서 현재 국어기본법 제14조에 나와 있는 대로, 즉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 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라는 규정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글자 생활에서 가장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만 더 제가 말씀드리면, 흔히 과거 세대는 학교에서 한자 공부를 많이 해서 정말 좋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한자를 몰라서 의사소통이 어렵다, 그런 얘기를 하는데요. 한자 모른다고 하는 지금 젊은 세대들의 문해력, 결코 떨어지지 않으며, 어휘력 굉장히 뛰어납니다. 어휘 창조 능력도 엄청납니다. 그리고 흔히 한자 세대라고 하는 저희 세대 때를 살펴보면 결코 모두가 한자를 잘 아는 세대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저희 세대가 72학번인데요. 그때 저희 나이 또래가 거의 100만 명입니다. 대학 정원은 5만 명 정도입니다. 대학을 가려면 고등학교 나와서 대학예비고사를 봐야 합니다. 예비고사 합격할 정도가 돼야 한자를 어느 정도 알지 그렇지 않은 저희 친구들을 보면 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쳤더라도 거의 한자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그런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세대가 한자 교육 세대라 하더라도 일부만 한자를 아는 세대였습니다. 실제 살펴보면, 물론 저희들이 대학시험 칠 때에 제갈량의 ‘출사표’까지 시험을 보는 등, 한자, 한문을 꽤 아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한자 모르는 학생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한자를 섞어 써서 의미가 통했고 지금은 안 그렇다 하는 것은, 통계를 보면, 반드시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요즘 가끔 신문에 보면 문해력이 떨어져서, 한자를 잘 몰라서 ‘심심한 사과를 한다’는 뜻을 이해 못 한다 하는데, 그것은 그런 학생 한 사람의 문제이지, 대부분의 고등학생 같으면 그런 오해를 안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자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고유어인 ‘사흘’을 4일이라고 하는 것도 그 학생의 문제이지 전체 학생의 문제는 아닙니다. 또 한 예를 들어서 ‘남침’이라는 용어가 요즘 문제가 되는데 그걸 한자로 ‘南侵’이라 쓴다 한들 남으로 쳐내려왔는지, 남에서 쳐올라갔는지, 구분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의미의 혼동 문제를 한자를 써서 해결한다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말을 할 때, 고유어도 있고 한자어도 있지만, 한자어를 한자로 사용하지 않고 말을 해도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습니까?

    전광진 예! 알겠습니다만···

    사회자 어유! 우리 두 분 말씀이 아주 의미 있게 기록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마주 바라보면서 저도 많이 배웁니다. 우리 전 학장님 말씀을 추가로 더 듣고 가겠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문자를 많이 알수록 좋다”
    “속은 따지고 보면 한자어 투성이... 한자를 알면 대단히 유리!

    전광진 예! 한글, 저도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정부 차원에서는 국가의 공용(公用) 문자를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하나로 정해야 되겠지요. 공용문자, 즉 공식적(公式的)으로 사용하는 문자는 하나로 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용(公用) 언어가 그렇듯이.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문자를 많이 알수록 좋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중국의 어떤 언어문자학자가 말했듯이, 언어가 발이라면, 문자는 신발입니다. 신발은 운동화도 있을 수가 있고 구두도 있을 수가 있고, 구두도 한 켤레가 아니라 여러 켤레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문자를 많이 알수록 좋고 많이 아는 사람들이 훨씬 더 유리하고 크게 성공합니다.

    국가의 공용문자는 하나로 정해져 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많은 문자를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표음문자인 한글만 알아도 된다는 한글 전용 교육을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 교육이 앵무새 같은 교육이 됐습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라는 애국가의 후렴을 앵무새도 따라 할 수는 있죠! 앵무새가 이걸 따라 한다고 그 뜻을 아는 거로 착각하면 되겠습니까? 학생들이 읽을 줄 알 뿐인데 뜻을 아는 것으로 오인하고 그냥 지나가는 선생님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수박의 속은 모르고 수박의 겉만 핥는 ‘수박 겉핥기’식 공부를 하다 보니 문해력 붕괴 사태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한글 전용은 한글 전용 표기의 줄임말입니다. 한글만 사용하여 표기하자는 것이지요. 한글만 알아서는 한글 전용이 이해력 진작과 사고력 발달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우선 이 ‘전용’이라는 말도 6가지 다른 뜻이 있습니다. 물론 문맥에 의해서 추정 가능하다고 하지만 한자도 아는 사람은 문맥 판단도 쉽게 할 수 있지만,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전혀 판별이 안 되죠. ‘한글 전용’과 ‘예산 전용’의 전용이 각각 다른 말인지 같은 말인지 알자면 한자 지식이 필수불가결입니다. 

    그래서 한글로 쓰인 한자어를 읽을 줄 알아도, 한글로 포장되어 있는 낱말의 속에 담긴 뜻, 즉 속뜻을 몰라서 대단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우리 학생들의 고충입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각급 학교의 교과서는 한글 전용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그 속은 따지고 보면 한자어 투성이 입니다. 그래서 한자를 알면 대단히 유리합니다. 
     
    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어떤 문자를 한 나라의 공용(公用, 共用이 아님) 문자로 정하는 것은 국가 정책에 관한 일입니다. 저는 국가 시책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대책을 세우는 문제라면 할 말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만약 어떤 학생이 개인적으로 어떤 대책을 어떻게 세워서 어떤 사회에 진출하여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한글뿐만 아니라 한자도 알면 좋을 것입니다. 한글만 아는 사람과 한자도 아는 사람은 생각의 깊이가 다르고, 성공의 높이가 다릅니다. 

    사회자 아, 학장님!

    전광진 예!

    사회자 잠깐, 그 말씀에 대해서 혹시 우리 권재일 교수님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그 두 분 말씀이 저한테도 아주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전광진 뜻이 같은데 한 번에 하시죠. (웃음)

    사회자 특별히 덧붙일 말씀 없으시다면 학장님께서 계속하시지요!

    “한자를 알면 한자어의 뜻을 대단히 쉽게 풀 수 있다”

    전광진 그러면 한글과 한자는 어떤 관계일까? 다 같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좀 전에 잠시 말했듯이 한글을 표음문자, 한자를 표의문자로 바꾸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두 문자의 관계가 상호 보완적이다(O, X). 상호 배타적이다(O, X). 지금 좌중에 계신 분들께서 상호 보완적이라는 게 X일까 O일까? 상호 배타적인 게 X일까 O일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똑같은 문제를 두고 다른 말로 하면 상극 관계이다(O, X). 상생 관계다(O, X). 상극의 {극}은 ‘이길 극’(剋)자입니다. 서로 이기려고 하는, 하나가 죽고 하나가 살려고 하는, 도저히 같이 살 수는 없는 것을 ‘상극’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상생은 ‘서로 상’(相)자와 ‘살 생’(生)을 쓰는 것이죠. 이렇게 한자의 뜻을 알면 낱말의 뜻은 금방 알잖아요. 그렇죠! 배타적이다의 ‘배타’도 한자를 아는 사람은 배자가 ‘밀칠 배’(排)를 쓰는 것이니 다른 것은 밀쳐내는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게 됩니다. 이렇듯 한자를 알면 한자어의 뜻을 대단히 쉽게 풀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한글만 아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가 됩니다. 

    너무나 자명한데도 한글과 한자의 관계를 두고도 많은 이견(異見)이 있습니다. 우리 교육계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이런 의견 불일치로 인하여 우리나라 교육이 파행을 몇십 년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학력(學歷)은 갈수록 높아지지만 학력(學力)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뭡니까? 따지고 보면 표음문자만 쓰자는 교육 정책의 부산물입니다. 

    “한글은 독서를 잘하게 하고, 한자는 독해를 잘하게 한다”

    다시 앞에서 말한 것으로 돌아가 보면,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가 O이고, 상호 배타적인 관계는 X이고, 상극 관계다가 X이고, 상생 관계이다가 O이지요. 우리 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한글은 음을 잘 알게 하고 한자는 뜻을 잘 알게 한다. 그렇죠! 그래서 한글은 표음문자라 하고, 한자는 표의문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요즘은 한글 전용이 일반화되어 있으니까, 한글만 알아도 독서를 잘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없이 많은 한자어가 걸림돌이 됩니다. 좀 전에 본 ‘상극’, ‘상생’, 한글만 아는 학생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말입니까? 이런 한자어를 독해하자면, 즉 읽고[讀] 뜻을 풀이[解]해 알자면 한자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종합하자면, ‘한글은 독서를 잘하게 하고, 한자는 독해를 잘하게 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글과 한자의 관계를 두고 옛날에 많은 사람들은 새의 두 날개다(兩翼論), 수레의 두 바퀴다(兩輪論), 이런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개인적으로 ‘한글이 숟가락이라면 한자는 젓가락이다’(匙箸論)는 주장을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숟가락으로 밥을 스스로 먹을 줄 알게 되었다고, “이제 됐다. 젓가락은 쓰지 말아라”. 이렇게 가르치는 부모는 아무도 없죠. 그렇죠! 숟가락 사용법을 익힌 다음에 조금 더 성숙해지면 젓가락질도 할 줄 알아야 식사가 편리해 지지요. 그래서 한글이 숟가락이라면 한자는 젓가락이라는 비유를 해봤습니다. 그런 생각을 글로 쓴 것은 아마도 2006년도쯤으로 기억합니다. 하여튼 한글과 한자의 관계가 명백해진 이상 이에 관한 논쟁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논의를 그다음 주제인 ‘한글 사랑’ 문제로 넘어가면 어떻겠습니까?

    사회자 저기, 전 학장님! 잠깐만 말씀을 멈추고, 지금 한글 전용이냐 한자 병용이냐 이런 질문이 들어오고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 권재일 교수님으로부터 한글 전용, 한자 병용에 대한 의견도 잠깐 듣고 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주제로 갈게요.

    “우리의 언어 생활에 있어서 한자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는 한자를 배워야지요!”
     
    권재일 그러면 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까 동그라미표가 있었는데, 한글과 한자는 서로 보완적이다, 거기에다 한 표를 던집니다. 한 표 던진다고 해서 제가 한자를 혼용하자, 그런 뜻은 아닙니다. 우리의 언어 생활에 있어서 한자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필요한 경우는 한자를 배워야지요. 지금 제가 알기로는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한자, 한문 교육이 정상적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행이 잘 안 되고 학생들이 배울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 문제지요. 그건 별개 문제고, 그래서 둘의 관계가 서로 아까 뭐라 하셨습니까, 적대 관계다,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는 전광진 선생님이 아까 표시한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한자를 써야만 그 뜻을 다 안다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부분적으로는 동의를 하더라도.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자는, 한자 전문가 모시고 제가 이런 말씀 드려서는 죄송하지만, 한자는 뜻이 한 글자에 참 많잖아요. 다의적이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한자 공부할 때 그 글자의 뜻 가운데 하나만 배우지요. 중요한 뜻 하나. 예를 들어 ‘中’ 같으면 ‘가운데’라는 뜻 하나. 그래서 대부분 이 뜻 하나만 아는데, 이것만 알아가지고는, 한자를 안다고 해서 의미 파악은 안 되지요. ‘적중’, ‘중독’, ‘뇌졸중’을 ‘가운데 중’ 자를 배웠다고 의미 파악이 될까요? 

    또 ‘학교’를 한글로 써도 온 국민이 100% 다 뜻을 알지만, 모른다 치고, 한자로 쓰면 ‘배울 학(學’), ‘집 교(校’) 하니까 아, 배우는 곳이다, 뜻을 쉽게 알 수 있겠지요.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계시는데 ‘선생’을 한자로 써가지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훈으로서는 선생이란 개념이 안 들어오지요. 오히려 한자로 써 놓음으로써 한자 뜻 ‘먼저(先) 태어남(生)’을 가지고는 오히려 의미 혼동이 일어날 수 있지요. 
     
    ‘곤충’이라는 것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잖아요. 곤충을 한자로 쓴다고 해서 뜻을 알까요? ‘곤’은 ‘맏 곤(昆)’ 자, ‘충’은 ‘벌레 충(蟲)’ 자잖아요. 그러면 맏 벌레? 즉, 곤충에 대한 생물학적인 설명을 들어야 의미를 알지, 이렇게 한자를 안다고 해서 뜻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저는 구연산이 음료수의 성분이라는 것만 알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몰랐는데, 구연산, 여러분들께서는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구연산의 한자가 ‘枸櫞酸’이라고 해요. 이러한 한자를 아무리 살펴봐도 구연산의 의미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의 화학적인 설명을, 이러이러한 성분을 가진 이러이러한 용도에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구연산을 알지, 구연산을 한자어라고 한자로 쓴다고 해서 의미를 아는 건 결코 아니지요. 그래서 한문 전문가이신 선생님께 제가 이런 말씀 드려서는 죄송하지만, 한자가 한자어의 의미를 보완해주는 측면이 있지만, 반드시 한자, 특히 한자의 자형을 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의미 파악은 어렵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학’에는 ‘배우다’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의미 파악을 위하여 ‘學’이라는 자형을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요. 여기서 선생님의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 네, 고맙습니다. 그럼 우리 전 학장님 다시 말씀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