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심연의 팔색조 화가, 피정원의 ‘검은 화합’
윤다함 아트조선 기자 daham@chosun.com
기사입력 2022.11.18 17:30

●동양의 ‘먹’과 서양의 ‘블랙 젯소’가 이룬 독특한 화면(畫面)
●개인전 ‘합(合): CONFLUENCE’
●12월 9일까지 서정아트 강남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윤다함 기자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윤다함 기자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서정아트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서정아트

    피정원(29)은 검은색 화가다. 물성이 도드라지는, 강렬하고 개성 넘치는 검은 화면으로 단번에 국내 미술계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동양과 서양의 재료를 섞어 새롭게 해석한 독창성이 특기다. 어린 시절부터 캐나다, 미국 등에서 오랜 시간 생활해온 작가는 한국을 향한 그리움과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찰의 결과로서 동양의 먹과 서양의 블랙 젯소가 함께 어우러진 검정색 회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 검정색은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작가 자신을 뜻하는데, 동양화의 상징인 먹과 서양화의 밑바탕 재료인 블랙 젯소가 이뤄낸 검은 화합은 여러 나라를 오가는 피정원의 유목민적 특징을 상징한다. “‘먹’으로서의 주체적인 요소와 ‘블랙 젯소’로서의 기초적이며 근본적인 요소의 결합물은 제 자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날 다양한 사회에 필연적으로 적응하며 존재해야 하는 우리네 모두를 포괄하기도 합니다.”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서정아트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서정아트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서정아트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서정아트

    그림 표면의 거친 균열이 흡사 흙이나 바위, 혹은 지층을 연상하는데, 이러한 외형은 그의 유년기 경험에서 기인했다. 어릴 적 우연히 본 동굴 벽화에서 느낀 전율과 감상을 자신의 화면을 마주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피정원은 이를 캔버스 위에 구현하고 싶었다. 오랜 세월이 축적된 동굴 벽화처럼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시간을 캔버스에 켜켜이 쌓아내는 셈이다. 그의 회화가 일면 암각화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이다. 수없는 실험과 모색을 거쳐 시멘트, 갈퀴드 오일 등으로써 열, 결합, 용매 등 인위적 화학처리를 통해 재현한 이 검은 균열들은 관객을 더욱 깊은 심연으로 이끄는 듯하다.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윤다함 기자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윤다함 기자

    삶에서 축적된 경험, 그 경험에서 파생된 감정을 융합해 검은 추상으로 표현하는 작가 피정원의 개인전 ‘합(合): CONFLUENCE’가 12월 9일까지 서울 논현동 서정아트 강남에서 열린다. 대표작 ‘Untitled’ 시리즈의 근간이 되는 ‘After Image’(2017~)에서 출발해 확장된 현재의 ‘Untitled: Black Path’까지 이어지는 작가의 작업 서사를 한데 모아 풀어낸 자리다.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윤다함 기자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윤다함 기자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윤다함 기자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윤다함 기자

    특히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단순히 추상화를 본다는 의미를 넘어 본인이 경험한 감정과 기억을 함께 공감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Untitled: Black Path’ 시리즈의 대작을 마치 동굴처럼 꾸민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그의 작업 세계에서 주요한 근간을 이루는 동굴 벽화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전시장에 어두운 검은 방을 설치해 압도되는 분위기를 연출한 것.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소재로 해 자전적인 작업에 몰두해온 작가이기에 기록과 수집에도 능하다. 평소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며 일상의 순간과 찰나의 영감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곤 한다고. 작가의 이러한 성품을 엿볼 수 있도록 실제 그의 작업실에서 가져온 스터디, 스케치, 드로잉 등이 전시장 한편에 함께 내걸린다.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서정아트
    ▲ 피정원 개인전 ‘합(合): CONFLUENCE’ 전경. /서정아트

    한편,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파인 아트를 전공한 피정원은 수석 졸업할 만큼 역량과 재능을 일찍이 먼저 인정받았다. 이후 디언타이틀드보이드, 성남큐브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서정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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