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코로나 후유증’이 심상치 않습니다
기사입력 2022.05.20 09:42
  • 드디어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2020년 10월, 정부가 마스크 착용 의무를 도입한 지 566일 만이죠. 정부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면서 첫날부터 거리에서 “마스크를 벗을까 말까” 하는 눈치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정부의 발표가 미덥지 않아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탓이겠죠. 누구나 익숙한 걸 선뜻 바꾼다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닐 겁니다. 특히, 아이들은 무슨 일이든지 회복하는 데 더딘 법이죠.

    코로나가 절정일 때 소셜미디어에서 ‘마기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마기꾼’은 ‘마스크를 쓴 사기꾼’을 뜻하는 말인데, 타인의 외모를 마스크 탓으로 돌리는 일종의 ‘인터넷 밈’이었죠. 딱히 부정적인 의미라기보다 10~20대 디지털 세대에게 통용되던 재미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장난삼아 ‘마기꾼’이라는 용어를 꽤 썼었죠. 한 중학생 여자아이도 제게 자신을 ‘마기꾼’이라며 “마스크 때문에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부모님들도 ‘탈 마스크’ 때문에 한결 표정이 좋아지신 것 같더라고요. 일단, 부모님들은 돌봄 문제가 해소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죠. 아이들도 엄마와 더 전쟁을 치르지 않아서 좋아 하고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놓쳐선 안 될 게 몇 가지 있죠. 대표적인 게 바로 아이들과 관련한 ‘코로나 후유증’입니다. 2년 넘게 이어져 온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주었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안전’이었지만, 또 어떤 아이에게는 ‘차단’이기도 했다는 거죠. 특히, 아이들에게 ‘차단’이란 친구들과의 ‘단절’을 의미하고 또 친구를 잃은 ‘상실’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지금 단계에서 아이들의 온전한 일상 회복을 위해서는 교육과 지원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으면 자칫 후유증을 낳을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코로나 후유증’이 아마 ‘등교 거부’일 겁니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아이들의 ‘등교 거부’와 관련해 메일로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님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아쉽게도 부모님들이 ‘등교 거부’ 문제를 아이의 태도 문제로 잘못 해석하는 사례도 적지 않더군요. 분명한 건, 아이들의 ‘등교 거부’는 코로나의 영향에서 비롯된 상황의 문제이자 아이가 가진 ‘회복 탄력성’의 문제지 아이들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우리 아이에게서 ‘등교 거부’의 낌새가 보이면 실랑이하기보다 아이가 단계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부모님의 아침 시간이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아이에게는 충분한 단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반대로 우리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부모가 무작정 안심해서도 안 됩니다. 현재 ‘코로나 후유증’은 아동·청소년 연구 영역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라서 다양한 연구기관에서 아이들의 ‘코로나 후유증’을 주목하고 있고, 저 또한 아이들의 ‘학교폭력’과 ‘비행’ 관점에서 그 변화를 지켜보고 있죠. 최근 들어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선생님들이 학교폭력과 관련해 자주 문의를 해주고 있는데, 마치 쓰나미가 닥치기 전 나타나는 자연 징후처럼, ‘탈 마스크’ 이후 불길한 징후들이 나타나는 것 같아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얼마 전에는 도시 주택가에서 아이들의 집단폭행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죠. 중학생 무리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또래 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을 집단폭행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져 논란이 됐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주춤했던 집단폭행이 마스크를 벗게 되자마자 등장했다는 게 심상치 않죠.

    성범죄 사안도 주목해야 합니다. 최근 들어 학교 안에서 아이들의 성 관련 사안도 부쩍 늘고 있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한 30대 남자가 주택가에서 초등학생 여자아이에게 성매매하자고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희귀한 사건이죠. 아이의 신고로 범인을 체포하긴 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무엇보다 대낮에 주택가에서 멀쩡해 보이는 어른이 여리고 여린 학생의 뒤를 쫓아갔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성 사안 문의는 올해만 해도 전국적으로 초·중고를 가리지 않고 자주 들어오는 편입니다. 더구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간의 성 사안이 늘고 있어 더 걱정이고요.

    원래 코로나 이후 우리가 원했던 건, 아이들의 행복한 일상 복귀이지 학교폭력의 복귀가 아니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이미 사이버 폭력이 늘 대로 는 상황에서 신체 폭력과 성범죄까지 다시 등장하면 아이들의 일상 회복은 그만큼 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지난해 방역 기준이 완화되고 등교 일수가 늘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학교폭력의 달라진 징후들이 있었죠. 2020년 코로나 때문에 ‘전국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잠시 주춤했던 신체 폭력과 성범죄 유형이 2021년에는 크게 증가했습니다.

    해외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보다 ‘탈 마스크’를 먼저 선언한 미국에서는 이미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의 스마트폰 과다 사용과 소셜미디어 중독이 문제가 돼 아이들의 이상 행동들이 곳곳에서 일어났지요. 대표적으로 최근 미국 뉴욕주 한 마트에서 18세 소년이 중무장한 채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있었고, 범행을 저지른 소년은 범행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인터넷에서 생중계까지 해 충격을 줬습니다. 또 미국 미주리주에서는 중학생들이 유명 소셜미디어에서 생중계로 생일파티를 하다 총격 사고가 발생해 당시 시청 중이던 6,100명의 구독자들이 사망 장면을 목격하는 아찔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미국 정부는 지금 아이들의 무분별한 ‘생중계 문화’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어쩌면 많은 부모님이 각종 뉴스에서 ‘코로나 후유증’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지는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건 이번 글을 통해 공감할 수 있었죠. 이렇다 보니, 학교의 고민이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학교는 정부가 ‘탈 마스크’를 선언하기 전부터 이미 학교폭력과 성범죄 예방 교육에 ‘올인’하고 있지만, 교육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게 사실입니다. 또, 경찰청에서도 학교를 도와 학교전담경찰관 중심으로 예방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지만, 확신이 없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건 당연할 겁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학교와 경찰 그리고 부모 등 ‘다수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일단, 부모님들은 당분간 가정에서 ‘분명한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져 주세요. 또, 오늘부터 학교에서 보내는 ‘가정통신문’을 꼼꼼히 읽어주시고요. 지금 같은 시기에 가정통신문은 아이의 안전을 위한 정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관할 경찰서 홈페이지도 방문해 주시고요. 그리고 아이가 학교에 오가는 모습을 눈여겨 봐주세요. 적응의 문제는 결국 아이들이 절대 숨길 수 없는 부분이라 누구보다 아이를 잘 아는 부모님이 아이의 적응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해주셔야 합니다. 아이의 행동에서 이전과 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면, 먼저 학교 선생님을 통해 확인도 꼭 해주시고요. 또 이참에 그동안 아이와 못했던 외부 활동도 계획을 세워 실천해주세요. 가족과 함께하는 외부활동은 아이의 ‘회복 탄력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아이에게서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여도 섣불리 확신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아이는 부모 앞에서 배우가 된다”라는 말처럼 아이가 부모를 위해 고민과 상처를 감출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지속적으로 아이를 지켜봐 줘야 합니다. 중요한 건, ‘코로나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