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전 과목 대비는 국어 책 읽기부터
기선옥 리딩엠 목동교육센터 원장
기사입력 2021.11.04 17:00
  • 기선옥 리딩엠 목동교육센터 원장
    ▲ 기선옥 리딩엠 목동교육센터 원장
    답이 아닌 과정을 도출해야 하는 시대 

    학생마다 약한 과목, 선호하지 않는 과목은 각기 다르다. 하지만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문제유형이 있다. 바로 ‘서술형 문제’이다. 답이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문제, 해석을 보면 왜 이게 정답인지 바로 알 수 있는 문제여야 학생들이 안심한다. 

    이렇게 예비된 답을 외우는 것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기를 수 없는 시대가 왔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말만 하는’ 시대가 아닌, 질문자와 답변자가 상호 소통해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답을 푸는 것만큼이나 답을 내놓는 과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정해진 답, 정해진 트랙이 아닌 자기만의 답을 제시하고 길을 설계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낼 수 있도록 한국의 공교육이 부지런히 바뀌고 있다. 올해 겨울 치르게 될 수능 제도의 변화, 2년 앞당겨진 고교학점제 시행 등 구체적인 혁신안이 추가 발표되고 있다.

    일선에서는 이러한 제도변화를 실행할 공교육 여건이 마련돼 있는가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변화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이를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점검과 반성이다. 기존의 과목 간 장벽이 허물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평가방법이 도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 못지않게, 우리 학생들은 얼마나 준비를 갖추고 있을까?

    외우지 말라는데 외우는 학생들 

    한국 학생들은 참 부지런하다. 학교 수행평가를 위해 새벽 세 시까지 밤을 새우고 어려운 수학, 영어문제를 수십 문제씩 풀어 간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가장 지루한 방법으로 열심히 하는 학생들일지도 모른다. 이 모두를 외워서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해답을 외우고, 공식을 외우고, 문제유형을 외워 해결하려 한다.

    글쓰기 지도를 할 때 많이 만나는 벽이 이 ‘외워서 해결하려는 습관’이다. 자신의 생각을 써야 하는 주제를 제시해도 그 답이 책 안에 그대로 쓰여 있기를 바라는 학생들이 많다. 물론 매주 읽은 책에는 주제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 

    다만 문제가 요구하는 방향은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게 아니라, 내용을 다시 재구성해 자기 생각의 근거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꼭 책에 그 답이 그대로 쓰여 있고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기만을 바란다. 고학년이 될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 

    그런데도 자꾸 외우기만 하는 학생들이 게으른 것일까?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참 부지런하다. 문제는 외우는 법은 알고 생각하는 법을 익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국어 문해력이 모든 학습의 기본

    국어는 반짝 공부로 시험 점수가 오르지 않는 과목으로 유명하다. ‘국어 실력’이란 결국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잘 표현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계속 생각하고 생각을 다듬고 이를 소통하는 게 국어 수업의 핵심이다. 

    영어, 수학 성적은 좋은데 국어 성적은 살짝 저조한 우리 아이. 국어 과목만 피해가면 괜찮을까? 하지만 국어과목은 선택하지 않는다고 피해갈 수 있는 교과가 아니다. 모든 학습의 핵심은 결국 타인의 지식, 사고를 이해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다시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연히 잘 읽어야 잘 이해할 수 있지'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초등 중학년을 넘기면 국어 실력이 곧 다른 과목의 결과와도 직접적으로 연동된다. 3학년부터 교과과목이 9개 추가되고 과목마다 각기 어려운 어휘가 나오기 때문이다.

    수학은 지문이 짧으니 별 문제 없을 것 같지만, 분수, 소수, 함수 등의 개념을 선생님이 설명할 때 바로 이해하려면 어휘력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3, 4학년 때 배우는 수학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얼추 문제만 풀고 넘어가면 5, 6학년 때 한 단계 고등해진 문제에서 주춤한다. 급기야 수학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말만 하는 아이가 된다.

    사회는 5학년에 나오기 시작하는 한국사에서 많이 걸려 넘어진다. 역사를 모르면 원인을 모르고, 원인을 모르면 사회처럼 따분한 과목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하려면 어휘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지문 속 사건을 시간순으로 배치해 이해하는 능력이 필수다. 이 둘이 갖춰지지 않으면 역사, 더 나아가 사회분야 역시 암호의 영역이 된다. 

    과학은 실험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니 국어 실력이 좀 떨어져도 괜찮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실제 과학에 자신 있는 학생이 자신은 글은 잘 쓰지 못해도 된다고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러나 문이과를 통합하는 현재 추세에서 과학을 잘하니 국어 실력이 떨어져도 된다는 것은 너무 큰 약점을 지고 가는 꼴이다. 게다가 과학 보고서는 실험을 잘 수행한다고 저절로 쓰게 되는 게 아니다. 생각이 곧 글이 아니고, 실험 결과가 곧 보고서가 아니다. 실험을 잘 수행하는 것만큼이나 이를 잘 설명하는 능력이 갖춰져야 제대로 학습 결과를 평가받을 수 있다. 

    영어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학부모님들이 먼저 국어의 중요성을 느끼고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다. 영어 학원에서 논술을 병행하라는 추천을 받으셨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이를 이해할 기반언어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국어실력 없이 영어를 쌓아 올리는 건 진흙 위에 벽돌담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어 능력은 바른 독서에서 온다

    결국 모든 과목은 국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어공부를 대비할 수 있을까? 간혹 학부모님께서 국어 문제집은 어떤 걸 푸는 게 좋을지, 초등학교부터 국어 내신학원에 보내는 게 좋을지 문의하신다. 그러나 국어가 결국 무엇을 배우는 과목인지 생각해 보자. 

    문제를 푸는 게 곧 국어 실력이 될 수 없고 성적도 보장할 수 없다. 국어과목의 목표는 정해진 문제유형 풀이를 숙달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모든 과목의 시작이 국어라면, 국어의 시작과 끝은 독서다. 독서를 꾸준히 해야 한다고 하니 책은 많이 읽히지만 그저 이렇게 읽히는 게 다일까? 책 많이 읽었으니 국어는 어련히 잘 하겠지, 마음 놓고 있어도 될까?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가장 좋은 국어 공부 방법은 독서인 게 맞다. 그리고 오래, 많이 읽을수록 좋다. 이와 함께 꼭 필요한 것은 읽은 책을 꼭꼭 씹어 자기 것으로 확보하는 시간이다. 읽기와 함께 읽은 책에 대한 글쓰기 시간을 병행하는 것이 필수다. 읽기와 쓰기를 통해 자유자재로 하는 학생은 국어에 발목을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국어가 학생의 자신감의 근원, 든든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