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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모 상담을 가득 메우는 주제는 아이들의 ‘여름방학’과 ‘방콕’입니다. 여름방학인데 아이들이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는 거죠. 요즘 방학을 맞아 아이와 전쟁을 치르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믿기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있다면 그분은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해도 여러 번 구하신 게 분명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아이와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죠. 코로나로 인한 돌봄과 교육의 공백이 부모의 잘못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부모의 책임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정작 책임 있는 사람들의 사과는 어디에도 없죠.
최근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부모와 아이의 ‘전쟁’은 절정을 맞고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기세와 전투력에서 결정되는데, 아이에 비해 부모의 전투력과 사기가 너무 떨어져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부모는 식사시간을 노려 푸짐한 밥상으로 협상을 끌어내 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식사를 마친 아이는 당당하게 “적군의 사신은 해치지 않는다”라는 삼국지 게임에 나오는 한 구절을 주워듣고 와서는 부모에게 읊어주고 다시 나릿나릿한 발걸음으로 방을 향하죠. 이제 부모는 정면 승부로는 도저히 아이를 이길 승산이 없어 보입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가정 내 범죄가 증가하고, 숱한 디지털 범죄가 아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걸 목격한 이상 부모의 근심은 더 늘었습니다. 다시 말해, 부모는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요. 그래서 작전을 바꿔야겠습니다.
일단, 새로운 작전명은 ‘방 탈출’ 작전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방에서 나오게 해야 하니까요. 전술 또한 기존의 방식에서 조금 달리하겠습니다. 어쨌든 아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가 컴퓨터와 게임인 걸 고려한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다고 인정해야겠죠. 먼저, 첫 번째 승부수는 ‘인터넷 차단’입니다. 일단, 가정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는 일정의 요금을 지불하는 회원제 방식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인터넷 업체에 연락하여 일정 기간 인터넷 서비스를 차단해달라고 요청을 할 수 있죠. 사유는 대부분 이사 또는 집수리 명목으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요금도 지불하지 않습니다. 다만, 갑자기 인터넷이 끊기면 아이가 강한 불만을 보일 수 있으니 아이에게는 인터넷 공사 때문에 당분간 인터넷 서비스가 중단된다고 말해주시고, 믿어 의심치 않을 입증자료를 준비해주세요. 입증자료는 업체 공지문을 제작하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인터넷 회사에서 인터넷 라인 공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가정에 양해를 구하는 ‘공지문’을 배포한 것처럼 교묘하게 제작하여 아이에게 보여주면 아이의 불만은 없을 겁니다. 아이들의 눈치가 보통이 아니라서 공지문은 섬세하게 제작해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전략을 선택하신다면 아이가 방에서 나왔을 때를 위한 대안도 준비해야 합니다. 아이가 방에서 나왔는데 할 게 없으면 소파에서 스마트폰만 할 게 뻔하죠. 부모가 중심이 되어 가까운 도서관을 찾고, 영화 목록을 살피며, 부모와 함께 공원에서 운동 거리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도 기억해주세요.
첫 번째 전략이 내키지 않는다면, 두 번째 ‘적진에 들어가는 전략’을 시도해보시죠. 그러니까 늦은 시간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를 위해 부모가 아이 방에 들어가는 겁니다. 최근 상담사례를 보면, 아이가 코로나와 여름방학을 핑계로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더군요. 잔소리를 해대도 고개조차 끄덕하지 않는다고 하니 부모가 아이 방에 들어가 잠을 자는 수밖에요. 그러니까 아이가 게임을 하든 말든 부모는 취침시간에 맞춰 잠을 자는 겁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잠을 자더라도 절대 아이가 게임을 하는 것에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아이는 부모가 방에서 자는 순간 불편해지거든요. 아이는 부모의 잔소리에는 맞대응해도 부모의 침묵에는 대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 옆에 있으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 아예 적진에 침구를 들고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부모가 아이 방에 들어와서 잠을 자면 아이가 거부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기만전술이 필요하겠지요. 다시 말해, 안방에서 부모가 잘 수 없는 타당한 이유를 아이에게 제시해야 할 겁니다. 또 이 전략에서 핵심은 결국 아이가 게임을 마치고 부모 옆에서 눕게 된다면 아이가 흥미를 느낄 대화거리를 찾는 것입니다. 이참에 아이에게 아이들 문화를 물어보고 배워보는 기회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전략은 제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방법입니다. 바로 가족 모두가 ‘집을 비우는 전략’입니다. 아이에게 여름방학이 있다면 부모에게는 여름휴가가 있잖아요. 또 주말은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단기휴가이기도 합니다. 이번 휴가는 다들 어떻게 계획하고 계시는지요? 물론 코로나 방역 지침이 4단계로 격상되어 외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심지어 한 부모님은 시골에 아이들을 데려가고 싶어도 어르신들이 더 예민하게 생각하신다더군요. 그래서 사실 집을 비운다는 건 요즘 같은 시기에 쉽지 않은 전략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보고 있으면 어떻게라도 산으로, 바다로, 자연으로 아이를 데려나가야 하는 건 맞죠. 가족이 다른 가족과 합세하지 않고 온전히 우리 가족만 움직이고 방역 지침을 잘 지킨다면 수도권을 벗어나 한적한 자연을 찾을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연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 아이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중독에 빠져 일체 ‘화학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얼마 전, 문구점에 들렀더니 잠자리채가 보이지 않더군요. 심지어 학교 방학 숙제에도 이제 곤충 채집은 권장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곤충 채집이 자연보호와 생명존중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면 곤충을 보고 느끼는 시간은 분명 화학작용이 없는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세 번째 전략을 선택하신 부모님들은 한결같이 아이가 처음에는 집을 나서는 걸 거부했지만 막상 나가보니 아이가 너무 좋아하더라는 거죠. 다시 말해, 아이가 집을 나서길 거부하는 건, 당장 눈앞에 컴퓨터와 게임이 노려보고 있으니 주저할 수밖에요. 쉽지 않겠지만, 오늘부터 집을 어떻게 비울지 고민해주시면 어떨까요? 위기가 기회가 되듯, 여름방학이 부모의 근심에서 부모의 안심으로 바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 집을 비운다는 건, 결국, 아이에게 ‘놀이’를 제공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놀이는 아이에게 질서와 규범을 가르치는 최적의 콘텐츠라고 볼 수 있고, 아이의 간질간질한 욕구를 건전하게 충족시켜주는 해방의 의미도 있습니다. 부모가 마련해 준 바깥세상과 그 세상에서 즐기는 놀이는 아이에게 디지털로 채워진 아이의 딱딱한 마음을 보드랍게 만들어주는 최선의 처방책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 생각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세요. 지금 아이를 위해 당장 지도를 펼쳐놓고 가족이 함께 놀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주세요. 장담하건대, 집을 비운 이후 부모는 아이의 놀라운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아이를 방에서 나오게 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