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 강연이 한창일 때 저는 한 강연장에서 부모님들을 향해 “학교 폭력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부모님들은 일제히 “스마트폰을 없애면 돼요”라고 답하더군요.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더니, 아이들은 “학교를 없애면 돼요!”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학교 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도 너무 다르죠. 지난 에피소드를 지금에 와서 다시 들추는 이유는 당시 황당하게 들렸던 아이들의 답변이 지금은 아주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정말 학교를 없애자는 뜻은 아니고요. 스마트폰을 학교와 바꿀 수 있다는 아이들의 당찬 주장을 당시에는 심각하게 감지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의 영향이 컸다는 걸 우리 사회가 진즉에 인식하고 제도를 마련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최근 들어 사이버 폭력이 다시 이슈입니다. 학교 폭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다시 사이버 폭력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마도 달라진 학교 폭력의 추세를 보여주는 통계 때문일 겁니다. 지난달 교육부는 17개 시·도 교육감이 실시한 ‘2020년 학교 폭력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조사 결과, 학교 폭력 피해를 봤다는 학생은 0.9%로 전년도 1.6%보다 0.7%가 하락했으나, 문제는 사이버 폭력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2015년도 사이버 폭력으로 유행했던 ‘떼카, 방폭, 카톡 감옥, 기프티콘 셔틀’ 같은 ‘레트로’ 유형이 다시 역주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마 코로나로 인해 등교 일수가 크게 줄어든 영향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참에 역주행 중인 아이들의 ‘사이버 폭력’ 유형들을 살펴볼까요? 아마 ‘사이버 폭력’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듣기만 했지, 사실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알아본 적은 없으실 겁니다. 먼저 ‘떼카’는 집단을 의미하는 ‘떼’와 아이들이 즐기는 메신저의 앞글자를 딴 합성어입니다. ‘떼카’는 한 아이를 채팅방에 초대한 뒤 집단으로 욕설을 퍼붓는 행위입니다. 욕설에 담긴 내용은 아이가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모욕적이고 위협적입니다. 또 ‘방폭’은 아이를 채팅방에 초대한 뒤 집단으로 한꺼번에 방에서 나가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채팅방을 폭파하고 아이 혼자 내버려 둔다는 뜻이죠. 이렇게 되면 아이는 순간적인 고립이 공포로 다가와서 결국 무기력을 느끼게 됩니다. ‘카톡 감옥’은 앞선 사례보다 한 술 더 뜹니다. 아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채팅방에 초대해 욕설을 퍼붓고, 그게 싫어서 아이가 방을 나가면 집요하게 다시 초대해서 괴롭히죠. 아이가 초대하는 아이를 차단하더라도 다른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초대하기 때문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강요에 의한 심부름을 뜻하는 ‘셔틀’ 유형도 있습니다. ‘와이파이 셔틀’은 데이터가 없는 아이들이 한 아이의 테더링 기능을 공유기처럼 사용해 무선 데이터를 갈취하는 행위입니다. 아이의 데이터 사용료가 많이 나온다면 의심해 볼 유형이죠. 또 ‘게임 아이템 셔틀’은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을 빼앗는 행위를 말하고, ‘기프티콘 셔틀’은 모바일 상품권을 빼앗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 같은 유형들은 어쩌면 또래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역주행 중인 사이버 폭력은 또래 관계를 넘어 불특정 아이들을 상대로 접근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들이 눈에 띕니다. 대표적인 게 ‘중고 거래’를 빙자해 만남을 유도한 후 금품을 갈취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 사이트나 메신저 공간에서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속여 아이의 학교와 집 주소, 연락처까지 알아낸 후 금품을 빼앗는 것이죠. 또 아이의 정보를 알기 때문에 폭력 행위는 한 번에 그치지 않습니다. 특히, 이러한 사례는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증가하면서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부모님들이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외부활동이 단절되면서 높아진 스트레스를 사이버 공간에서 해소하는 경향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개인을 특정하지 않고 이유 없이 비방하는 ‘묻지마 저격글’을 올리거나 카카오톡 메신저가 아닌 텔레그램 같은 기존과는 다른 앱을 설치해 ‘묻지마 폭력’을 일삼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으니 주의 깊게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엄밀히 말해, 최근 사이버 폭력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최근 화제가 되는 ‘학교 폭력 미투’와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 폭력 미투’를 통해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주목하고 피해의 상처를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사이버 폭력 또한 피해자와 상처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경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사이버 폭력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가졌는지 몰랐던 게 사실이니까요. 분명한 건, 사이버 폭력의 피해는 오프라인 폭력의 피해보다 더 고통스럽고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사이버 공간은 특성상 아이들이 보호받을 곳도,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습니다. 부모라면 이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럼 스마트폰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은 게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하지 말라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얼음처럼 가만히 있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부모가 사이버 폭력의 징후를 아는 것이 자녀의 안전을 지켜주는 첫걸음입니다. 스마트폰 알림이 울리면 아이가 불안한 행동을 보인다든지, 데이터 사용이 많아지고, 지나친 소액결제로 스마트폰 요금이 많이 나오면 부모는 꼭 의심해봐야 합니다. 대충 물어보고 아이가 게임이나 굿즈 구매 때문에 요금이 많아졌다는 핑계를 댄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꼼꼼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등교를 거부하거나, 전학을 원한다거나 혹은 집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면 피해가 심각해졌다는 걸 눈치채셔야 합니다.
사이버 폭력의 대안으로 처벌과 신고 절차를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학교와 경찰에 신고하는 절차를 모르는 부모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예방책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을 통해 부모가 사이버 폭력에 노출된 자녀를 감지하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는 스마트폰이 아이에게 ‘보통의 위험’이 아닌 ‘파괴적인 위험’을 줄 수 있는 심각한 물건이라는 인식을 먼저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아이가 활동하는 사이버 공간은 실제 공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는 아이가 스마트폰에 무슨 앱을 깔고, 누구를 만나는지 등 아이의 구체적인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이제 부모가 아이의 스마트폰 활동을 모르면 자녀가 위험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네 번째는 아이가 사이버 폭력을 당했을 때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뉴스 등 사례를 통해 아이와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부모가 최근의 사이버 폭력 사례를 놓치지 않고 아이와 대면해볼 필요가 있죠. 마지막으로 사이버 폭력이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챙겨주세요. 아이와 관련한 문제는 우선 담임교사와 상의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학교 폭력 상담 신고 전화인 ‘117’과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 전화 ‘1388’ 번호는 자주 보이는 곳에 메모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부모의 정보와 노력 없이는 자녀의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는 걸 먼저 공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사이버 폭력’이 자녀를 향해 역주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