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학교폭력 미투, 피해자의 시계는 멈춰있습니다
기사입력 2021.02.22 09:46
  • 한 남자가 홀로 무인도에서 생존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는 인간의 고립을 표현한 대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200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누렸던 배우 톰 행크스가 주인공을 맡아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를 연기해줬죠. 당시 톰 행크스는 영화를 위해 몸무게를 20킬로그램이나 감량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섬에서 배구공을 붙잡고 ‘윌슨’이라 부르며 대화 나누는 장면은 압권이었죠. 당시 영화감독이 축구공과 농구공, 야구공도 아닌 ‘배구공’을 ‘윌슨’으로 설정한 데에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겁니다.

    따지고 보면, 배구만큼 예의를 중시하는 스포츠도 없습니다. 축구는 90분 내내 몸싸움을 전제로 하고, 한 경기에 개인당 반칙 2개를 허용합니다. 또 야구는 베이스를 훔치는 걸 좋은 선수의 덕목으로 인정하죠. 또 홈런 한 방이면 안타 3개와 맞먹을 정도로 쉽게 점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배구는 참 착합니다. 한편으로는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죠. 농구처럼 3점 슛이 있거나, 야구처럼 홈런이 있는 게 아닙니다. 강스파이크를 때렸다고 해서 한 번에 2점을 주는 편법도 없죠. 배구는 가해가 없는 스포츠입니다. 상대편 코트로 넘어가면 반칙이고 또, 가로막고 있는 네트를 건들기만 해도 점수를 잃습니다. 그러니까 배구는 상대를 가격하지도, 편법을 허용하지도 않는 스포츠인 셈이죠. 이렇게 보면, ‘캐스트 어웨이’ 영화감독이 배구공을 ‘윌슨’으로 의인화시킨 건 이해가 됩니다. 또, 요즘은 한 예능에서 혼자 사는 연예인의 친구가 되어주는 곰 인형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도 연관이 있죠.

    최근에 국가대표 유명 배구선수 자매가 ‘학교폭력 미투’에 휩싸였습니다. 피해자라고 주장한 익명의 피해자는 ‘현직 배구선수 학폭 피해자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21개의 폭력 피해 사례를 상세히 나열하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죠. 특히 피해자는 가해자로 지목된 배구선수와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학창 시절 사진까지 올리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해당 선수들은 자필 사과문을 적어 소셜미디어에 게시했지만,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느껴진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논란 때문에 해당 선수들은 무기한 출전정지가 내려졌고, 안타깝게도 국가대표 자격까지 박탈당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남자 배구선수들 역시 ‘학교폭력 미투’의 가해자로 지목돼 같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노래 경연 방송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누리던 여자 가수가 학교폭력 미투에 휩싸이기도 했죠. 피해자라고 주장한 글쓴이는 가해자가 “인사를 똑바로 안 한다고 때리고, 엄마랑 같이 있는데 인사를 너무 90도로 했다고 때리고, 몇 분 내로 오라고 했는데 그 시간에 못 맞춰왔다고 때리고, 이유 없이 맞은 날도 수두룩했다”라며 당시 피해 상황을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그러면서 글쓴이는 “자신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는데 가해자는 지난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사실을 숨기고 포장하는 모습을 보고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라고도 했습니다. 결국, 가해자로 지목된 가수는 방송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새해 들어 아직 2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학교폭력 논란으로 유명인 6명이 퇴출 위기에 몰렸습니다. 평소 방송에서 보았던 가해자들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생각하면, 피해자들의 폭로 글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발생 시기가 10년은 물론 20년이 지난 사건들도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피해자는 20년이 지나도 그 당시 폭력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던 셈입니다.

    학교폭력 피해자는 학창 시절 겪었던 악몽을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는 걸, 우리는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중입니다. 피해자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행복한 시간으로 채웠어야 했을 시간을, 두고두고 억울해하며 살아갑니다. 학교폭력이라는 비열한 행동이 한 사람의 삶을 수십 년간 통째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앞선 사례를 통해 배운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피해자의 삶이 피해자만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피해자의 가족은 피해자와 동일 선상에서 피해자를 아슬아슬하게 지켜보며 살아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죠. 20년이 지나도 피해자의 고통이 쉽게 가시지 않는 건, 피해자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피해자를 둘러싼 ‘다수의 고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무례함’을 지나치지 않습니다. 타인을 짓밟고 착취하며, 할 것 다 하고, 누릴 것 다 누리면서 마치 자신은 “힘들었지만, 올곧은 삶을 살아왔다”라는 거짓말을 두고 보지 않죠. 예전처럼 포장된 과거가 허용되는 시대도 아닙니다. 초 연결시대가 만든 사회구조 속에는 가해자들이 잊고 있었던 ‘피해자의 시선’이 존재한다는 걸 우리는 최근에서야 실감하고 있습니다. 또 사회는 바라만 보지 않고 과거를 소환하여 공소시효가 없는 ‘사회적 재판’을 언제든 열 수 있게 만들었죠. 이렇게 되면, 앞으로는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저지른 지난 과오를 사과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가해자가 “학창 시절의 철없는 행동이었다”라고 말하는 건, 피해자의 감수성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니까요. 가해자는 ‘철없는 행동’이었다고 짧은 문장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피해자는 ‘철없는 행동’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학교폭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 그 자체입니다. 또 피해자의 범위가 피해자 한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요. 따라서 피해자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누구라도 자신이 누리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폭로가 나오고 이어서 사과글이 바로 올라왔다는 건, 가해자에게는 최선이었겠지만, 피해자는 ‘속전속결’ 같은 사과문을 두고 “나의 고통을 이렇게 빨리 이해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죠. 어쩌면 피해자는 가해자의 사과글이 담긴 A4 용지 한 장보다는 피해자가 당한 고통을 듣고, 인정하며, 사과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이러한 논란의 당사자가 되지 않으려면, 부모가 학교폭력을 아이의 ‘걸림돌’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는 실수할 수 있고, 또 순간 나쁜 행동을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아이가 학교폭력의 당사자가 되면, 아이와 부모는 오롯이 피해당한 아이만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찌 됐건, 우리 아이로 인해 한 아이가 고통을 받았다면 어른인 부모가 먼저 나서서 아이의 상처가 덧나지 않게 도와줘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화해가 이뤄지고, 피해 아이 또한 최대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협의회」 조정실 회장은 “학교폭력의 후유증은 피해자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해서 사회적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를 양산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학교폭력 미투’는 사과해야 할 시기에 사과하지 않았던 이유가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피해자의 시계는 피해당한 시점부터 멈춰있다는 걸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