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학부모 사이 ‘공공의 적’ 된 전동킥보드
하지수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20.12.23 16:11
  • 이달 초 홍대역 인근에서 한 시민이 일방통행로로 역주행을 시도하다가 급정거를 한 모습./조선일보DB
    ▲ 이달 초 홍대역 인근에서 한 시민이 일방통행로로 역주행을 시도하다가 급정거를 한 모습./조선일보DB
    “○○초등학교 앞에 공유형 전동킥보드가 여러 대 세워져 있네요. 단체로 업체에 치워달라고 항의 전화합시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위험하게 전동킥보드 타는 중고등학생 보면 얼굴 나오게 사진이나 영상 촬영하거나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 들고 학교에 찾아가주세요.”

    최근 학부모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정부가 전동킥보드 탑승 연령 기준을 재조정하고 주행 규정에 대한 보완책을 내놨지만 학부모들의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자녀가 전동킥보드에 올라 탈까 봐, 치일까 봐 걱정한다. 타도 문제, 안 타도 문제인 셈이다. 같은 지역 학부모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중학생, 너도나도 “통학용 킥보드 살래”


    전동킥보드가 학부모들 사이에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힌 건 지난 5월부터다. 당시 국회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만 13세 이상부터 운전면허 없이도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 모빌리티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소식이 전해지자 학부모와 교원 단체는 거세게 반발했다. 개정안에 반대하는 국민청원까지 빗발쳤고 정부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달 초 원동기 장치자전거 면허(만 16세 이상 취득 가능) 이상의 운전면허를 소지해야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을 재개정했다.

    법의 적용 시기는 이르면 내년 4월. 그때까지는 업체와 협의해 공유형 전동킥보드 대여 연령을 만 18세 이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16~17세 중에도 면허를 소지한 자는 전동킥보드 대여가 가능하다.

    문제는 개인 소유의 전동킥보드다. 법이 적용되기까지는 만 13세 이상, 즉 중학생이 타도 불법이 아니다. 10대가 즐겨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성비 갑(甲) 전동킥보드 추천받아요’ ‘키 150cm인 학생이 학교까지 왕복 20km를 이동할 때 타기 좋은 전동킥보드 알려달라’ ‘용돈 모아서 킥보드 사려는데, 승차감 좋고 빠른 제품이 궁금하다’ 등의 글이 이미 잇따른다.

    초등생 학부모 김모(40)씨는 “이랬다 저랬다 법을 바꾸는 사이 전동킥보드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만 높아졌다”며 “꼼수를 써 돈을 내지 않거나 면허 없이도 공유형 전동킥보드 타는 법을 서로 공유한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공유 전동킥보드의 탑승 가능 연령을 만 13세 이상으로 알고 있는 청소년도 많다.

    ◇‘규제 구멍’에 발 벗고 나선 학부모들

    이런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감시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부모들이 눈에 띈다. 학교 근처에 공유형 전동킥보드가 세워져 있으면 지역별 커뮤니티를 통해 내용을 공유하고 시청이나 킥보드 업체, 학교 등에 단체로 항의전화를 하자고 이끄는 식이다. 한 학부모는 “경사진 곳에 있는 학교 학생들은 특히 전동킥보드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며 “화근이 될만한 싹을 미리 잘라 사고 위험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온라인 공개 처형’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녀를 전동킥보드에 태우고 동네를 질주한 부모나 역주행해 달리는 학생의 신상 착의를 세세하게 적어 비난한다.

    학부모들은 규제 구멍 속에서 자녀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정부가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규정을 무시하고 인도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거나 시속 25km로 지정된 속도 제한을 불법적으로 풀고 시속 40~50km로 도로를 내달리는 경우도 잦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는 전동킥보드 속도 제한 푸는 법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영상이 버젓이 게시되고 있을 정도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로서는 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단속과 계도활동을 많이 하는 게 최선”이라면서 “경찰서 공익요원도 단속 요원으로 투입해 학생들에게 잘못된 부분을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공유형 전동킥보드 업체들의 노력도 필요하다”며 “탈 때마다 휴대폰 인증을 단계별로 거치면서 불법적으로 탑승하는 학생들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전동킥보드는 엄연히 새로운 이동수단”이라면서 “기존에 있는 법에 적용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관련 전문가들을 모두 모아 전동킥보드를 관리할 법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haj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