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대 대학원의 수상한 ‘논문 교체’… 한해 최대 250건 달해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20.10.16 10:24

-논문 교체 늘 때 ‘내용 수정’ 급증… 교체 사유 32% 차지
-사회학·고고미술사학·국어국문학, 졸업자 대비 교체 건수 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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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DB
    최근 6년간(2015~2020) 서울대 대학원에 최종 제출된 석·박사 학위논문 교체 건수가 한해 최대 250건을 넘길 정도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내외 심사를 통과해 논문을 최종 제출했다고 하더라도 지도교수의 허가만 있으면 논문을 교체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기간에 ‘내용 수정’을 이유로 논문을 교체한 사례는 32%에 달한다. 별도의 제재 없이 이미 제출된 논문 내용 수정이 이뤄질 경우 연구 신뢰도 저하는 물론 학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본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1~2020년 서울대 대학원 학위논문 교체 신청 현황에 따르면, 석·박사 학위논문 교체 건수는 총 1299건에 이른다. 30~40건에 불과했던 논문 교체 건수는 2015년부터 100건을 훌쩍 넘겼다. ▲2015년 145건 ▲2016년 158건 ▲2017년 251건 ▲2018년 219건 ▲2019년 140건 ▲2020년 238건 등이다.

    서울대 대학원은 제출된 학위논문의 오탈자와 편집오류 등을 바로잡고자 할 경우 지도교수의 도장이나 사인이 포함된 ‘보존용 학위논문 교체 신청서’를 작성해 학과에 신청한 뒤 중앙도서관에 책자로 제출하면 이를 교체해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논문을 교체하는 주된 이유는 ‘오탈자 수정’(37%) ‘내용 수정’(32%) ‘인쇄편집오류’(19%) ‘참고문헌 수정’(9%) 등 다양하다. 특히 교체 건수가 급증했던 시기에는 ‘내용 수정’이 폭증했다. 2016년 125건, 2017년 161건, 2018년 143건 수준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내용 수정’과 ‘참고문헌 수정’을 이유로 논문을 교체하는 사례가 0건으로 급감했다. 대신 ‘오탈자 수정’과 ‘인쇄편집오류’가 각각 196건, 116건으로 크게 늘었다. 일부 논문의 교체 사유를 허위로 기재한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 서울대 대학원 학위논문 교체 사유 분류 표. /김철민 의원실 제공
    ▲ 서울대 대학원 학위논문 교체 사유 분류 표. /김철민 의원실 제공
    학위별로는 석사보단 박사 논문을 수정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올해 상하반기를 통틀어 석사 논문 교체 건수는 107건이다. 박사 논문 교체 건수는 131건으로 최고 건수를 기록했다.

    특히 박사논문의 경우 국내외로 검증받을 뿐만 아니라 국제저널 등에 게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용이 수정될 경우 더욱 심각한 연구윤리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직 중인 교수는 “국내외 심사가 끝난 논문을 수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연구윤리 위반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서울대 대학원 석·박사 학위별 논문 교체 건수 표. /김철민 의원실 제공
    ▲ 서울대 대학원 석·박사 학위별 논문 교체 건수 표. /김철민 의원실 제공
    논문 교체는 계열을 가리지 않고 이뤄졌다. 지난 10년간 논문 교체가 가장 잦았던 학과 10곳은 ▲법학과(일반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과 ▲사회학과 ▲건축학과 ▲건설환경공학부 ▲행정학과 ▲교육학과 ▲체육교육과 ▲고고미술사학과 순이다. 전체 학과 논문 교체 건수 대비 이들 학과의 교체 건수 비율은 약 33% 수준이다.

    특히 올해 기준으로 학위수여자 대비 논문 교체 건수 비율이 높은 학과 3곳이 눈에 띈다. 14명이 졸업한 사회학과의 논문 교체 건수는 13건. 이를 비율로 따져보면 93%에 달한다. 이어 고고미술사학과(80%), 국어국문학과(71%) 등에서 학위수여자 대비 논문 교체 건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 서울대 대학원 학위논문 교체 건수 상위 10개 학과. /김철민 의원실 제공
    ▲ 서울대 대학원 학위논문 교체 건수 상위 10개 학과. /김철민 의원실 제공
    이와 관련해 최근 서울대 내부에서도 연구윤리 위반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논문 교체가 쉽게 이뤄질 수 없도록 관련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타 대학원은 최종 제출 후 논문 교체를 일절 금지하거나 학적 기재사항 변경 등 제한된 경우에 한해 교체할 수 있도록 해 건수 자체가 적다. 동국대 중앙도서관의 경우, 논문 제출 유의사항으로 ‘최종 제출논문 수정 불가’를 내세우며 ‘제본 논문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등 외부 기관에 발송돼 최종 제출 논문의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른 국립대 대학원의 최근 5년간(2016~2020) 논문 교체 건수는 전 학과를 통틀어 경북대 3건, 충남대 13건, 전남대 7건에 불과하다.

    서울대 자연과학계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모(28)씨는 “논문을 내서 학위를 얻었는데 이후 그 내용을 수정한다면 사기를 치는 것과 다른 게 없지 않느냐”며 “계열별 특성을 반영해 논문 교체 관련 지침을 명확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lul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