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아이를 노리는 ‘사기(詐欺) 범죄’
기사입력 2020.09.16 09:55
  • 우리는 스포츠에서 가끔 부정행위를 목격합니다. 스포츠는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하는 분야이자 특히, 활동성이 넘치는 아이들에게는 스포츠만큼 관심 높은 분야도 없지요. 따라서 스포츠의 부정행위는 어쩌면 아이의 윤리관과 사회학습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에는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팀 중 ‘휴스턴 애스트로스’ 팀이 월드시리즈 우승 과정에서 상대 팀의 사인을 훔치는 부정행위를 한 것이 밝혀져 전 세계 야구팬들로부터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스포츠계에서 부정행위의 역대급 선수로는 마라톤 대회에서 지하철로 이동하여 우승을 차지한 ‘로지 루이즈’ 선수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아테네의 극작가이자 정치가였던 소포클레스는 ‘사기(詐欺)’를 가리켜 “어떤 약속도 사기를 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약속’은 사기 범죄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자 모든 것이 약속 거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바꿔 말하면, 사기를 치는 사람은 항상 달곰한 약속을 제시하고, 그럴싸한 이유를 내세워 그 약속을 철저히 깨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사기의 공식은 약속을 만드는 것과 깨는 과정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 어쩌면 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핵심은 ‘제시한 약속’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악몽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알려드릴 사례도 한 아이에게는 어쩌면 코로나의 악몽일지도 모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고작 스팸 문자 때문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는 집에서 원격 수업을 하다 우연히 받은 ‘채팅 앱’ 스팸 문자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광고를 본 아이는 망설임 끝에 “한 번만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채팅 앱을 깔아 입장했고, 이후 아이는 하루를 거의 채팅방에서 보내다시피 할 정도로 채팅에 빠져들었습니다. 하필이면 코로나 때문에 아이를 관찰하고 통제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대화의 수위를 끌어올렸고, 심지어 채팅 사이트에서 여자 행세를 하는 대범함까지 보였습니다. 결국, 아이는 여자 행세를 하며 남자들로부터 용돈을 받아 챙기는 재미까지 맛보게 됐습니다.

    놀랍게도 아이는 두 달 동안 남자들에게 무려 5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아 챙겼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는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가 남자들에게 만나줄 것을 약속했더니 용돈을 보내 줬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만남을 재촉하는 남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사용하던 계정을 탈퇴하고 다시 계정에 가입하는 일명 ‘먹튀’를 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돈을 보낸 남자 중 한 명이 경찰에 고소하면서 아이의 사기 행각은 두 달 만에 끝이 났고,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의 사례는 지금까지 우리가 걱정했던 요즘 아이들의 문제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아이 스스로 대범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죠. 다시 말해, 요즘 아이들은 논문이나 연구서에 나와 있는 인지 측정 지표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들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사기 범죄에 가담하거나 사기 피해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앞뒤를 재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모습은 발달학적으로 아이의 성장기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대목으로 보입니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소 불편하고 충격적이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사기’에 대한 인식 문화가 어떤지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사례 외에도 아이들과 관련된 사기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특히 얼마 전에는 한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장난감을 구매했다가 사기를 당해 직접 사기범을 검거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범인이 보내온 편의점 영수증을 추적하여 편의점 수십 군데를 뒤진 끝에 범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찾고 보니 범인은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최근에는 고액 알바 사기와 아이디 도용 사기, 심지어 보이스피싱의 현금 운반책까지 아이들이 가담하고 있어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디지털 부품으로 조립되면서 호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 코로나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사기’라는 범죄를 너무 관대하게 취급했던 건 아닌지 묻게 되고 특히, 인터넷 사기는 심각한 단계에 올라왔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점퍼를 주문했는데 벽돌이 배달됐다”라는 한 아이의 웃픈 이야기가 회자한 것도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고, 지금은 “돈이 없으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사기를 치라”는 아이들만의 네트워크에서 ‘중고나라론’까지 등장하며 확산하고 있습니다. 게임 아이템 사기는 이미 초등학교 때 경험했고, 굿즈와 콘서트 티켓 사기는 중학교 때 이미 상처를 입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달라질까 했지만, 고액 알바와 불법 대출로 피해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아이들의 개인정보를 푼돈으로 사들여 성 착취물과 사이버 도박 광고에 이용하는 비열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고 있죠.

    저는 청소년 업무를 하기 전 10여 년간 현장에서 사기 범죄를 수사했었습니다. 사기꾼들은 자신이 가장 경계하는 사람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의심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만큼 사기 성공률이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의심을 많이 해야 한다.”라고 훈육하는 건 옳지 않아 보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이에게 ‘비판적 사고’를 심어주는 일입니다. 더구나 ‘비판적 사고’는 우리 아이를 노리는 모든 범죄를 대비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입니다. 아시다시피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대를 ‘의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인지능력 또한 어른들보다 턱없이 부족하죠. 하지만 아이가 ‘비판적 사고’를 지니게 되면, 상대의 호의를 덥석 받지는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죠. 중고 거래를 예로 들면, 게시글이 사기일 수 있다는 사고를 할 수 있고, 시세보다 높은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으며, 나아가 상대의 활동 기록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는 창의성까지 기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기 범죄는 성범죄와 재산 범죄 등 추악한 범죄와 결합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또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돈을 뜯어내는 악랄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몸집 또한 커졌습니다. 그래서 사기 범죄는 지금부터라도 부모가 관심 갖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인이 되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어릴수록 누구를 속이고 누구의 속임수에 넘어간다는 게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문제라는 걸 인식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경미한 사안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친다는 건, 아이에게는 그만큼 잘못된 편법을 알려주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꼭 생각해주세요. 이번 글을 통해 아이를 둘러싼 사기 범죄를 고민해보고, 아이를 위한 ‘사고의 전환’과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비판적 사고’에 대해 다 같이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