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동사형’으로 꿈 꾸어야 할 때…“뭐가 되고 싶니? 묻지 마세요”
이진호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20.08.27 09:42

-[인터뷰] 이광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특정 직업으로 장래희망 정하는 시대 지났다”

  • 이광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은 ‘동사형’으로 꿈을 설계해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양수열 기자
    ▲ 이광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은 ‘동사형’으로 꿈을 설계해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양수열 기자


    어린 조카가 묻는다. “이모는 커서 뭐가 될 거야?”
    이에 이모는 대답한다. “OO야 이모는 이미 다 컸어.”
    하지만 조카가 다시 묻는다.
    “그럼 이모는 뭐가 된 거야?”

    한 차례 인터넷을 휩쓸고 지나갔던 재미있지만 슬픈 글이다.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이모가 ‘무엇’이 됐는지 묻는 조카. 이모가 정확히 어떤 대답을 내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떤 특정 직업 같은 ‘명사’로 대답했을 것은 틀림없을 테다. 하지만 이 같은 세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것 같다.

    “현재 생각했던 직업이 미래에는 사라질 수도 있는 시대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야겠지요. 이제는 ‘동사형’으로 꿈을 설계해야 합니다.”

    평생을 청소년 교육에 매진했던 이광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의 말이다. 경기대 휴먼서비스학부(청소년 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입학처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이제까지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 도서 ‘아이에게 동사형 꿈을 꾸게 하라’를 펴냈다.

    책은 제목처럼 ‘동사형 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대학 입시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던 이의 말이니 관심은 가는데 얼핏 감이 오지 않는다. 보통 진로 계획은 원하는 직업을 목표로 설정하고, 거기까지 차근차근 올라 가는 게 미덕 아니었던가.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오늘날 직업 세계도 변화할 것이라고 짚었다. 오늘 없었던 직업이 바로 내일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따라서 직업 형태로 꿈을 정하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 일로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동사형 꿈 통해 미래의 나 스스로 설계할 수 있어”

    그렇다면 동사형 꿈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일까. 이 이사장은 “하고 싶은 일을 특정 직업이 아닌 가치 중심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며 “사회 변화에 맞춰 나만의 길을 설계하는 것이 동사형 꿈의 목적이자 효과”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은 아이라고 치자. 하지만 ‘교사’라는 명사로 목표를 잡는 순간, 일을 하고 싶은 이유 자체보다는 사범대나 교육대학에 진학하고, 임용고시 합격에 이르기까지 진로 사다리를 오르는 데만 파묻힐 가능성이 크다. 삶의 모든 과정이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한 각각의 단계를 격파하는 데만 집중된다.

    “모든 아이에게는 자신만의 열정이나 가치, 포부가 있을 겁니다. 직업 자체보다는 ‘무엇을 함으로써 세상을 바꾸고 싶다’라는 식으로 인생 선언문을  내놓는 거죠.”

    그는 ‘사람들을 가르침으로써 세상을 바꾸고 싶다’처럼 동사 형태로 꿈을 설정하면 아이의 잠재력이 더 발휘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꼭 정규교사가 아니더라도 야학 선생님이나 대안학교 교사 등 꿈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또 현재는 없는 새로운 직업 모델을 생각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꿈을 어떤 직업으로 딱 정해놓지 않으니 같은 목표를 놓고 달려가는 친구와의 경쟁심도, 실패했다는 자책감도 느낄 일이 없다.

  • 이광호 이사장은 동사형 꿈 설계를 위한 부모 역할 중 한 가지로 ‘동사형 꿈 저널’ 작성을 제시했다./양수열 기자
    ▲ 이광호 이사장은 동사형 꿈 설계를 위한 부모 역할 중 한 가지로 ‘동사형 꿈 저널’ 작성을 제시했다./양수열 기자

    ◇부모 도움이 필수…“뭐가 될래?” 묻지 말아야

    이 이사장은 “아이가 동사형 꿈을 설정하는 데는 부모의 도움이 필수”라고 말했다. 단순히 동사형 꿈을 꾸라고 말만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지 않는 부모는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이제는 희망하는 직업을 물을 게 아니라 아이의 열망을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사형 꿈 설계를 위한 부모 역할 중 한 가지는 ‘동사형 꿈 저널’을 아이와 함께 적어보는 것이다. 일종의 진로 일기로 생각하면 쉽다. 아이는 일기 형식으로 오늘 경험했던 일 가운데 가장 좋았던 활동과 좋았던 이유를 적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문제점도 함께 담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이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또 어떤 것을 잘할 수 있을지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이때 부모는 아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눈이 반짝였는지, 아이가 꿈 저널에 적은 내용과 내가 바라본 아이의 적성이 맞는지 기록하는 저널을 작성하는 식이다. 아이의 꿈 저널을 살펴보고, 강한 인상을 남긴 경험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 즉 일종의 패턴을 찾아낸다면 아이가 꾸는 동사형 꿈의 밑그림을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아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확인하고, 장점을 키워주면 된다.

    그가 동사형 꿈을 생각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인터뷰 내내 밝았던 그의 표정에 순간 아쉬운 탄식이 비쳤다. 대학 입학처장 시절 경험이 답으로 돌아왔다.

    “한 학생이 논술고사장에 들어오자마자 잠을 자더니 시험지를 백지로 내는 겁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는데 정말 난 시험 보기 싫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때 누군가 정해주는 꿈은 진정한 꿈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스스로 자신의 꿈을 동사형으로 설계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고 왜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 /양수열 기자
    ▲ /양수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