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부모가 ‘n번방 방지법’을 모르면 안 되는 이유
기사입력 2020.06.23 09:57
  • 부모가 자녀를 위해 법(法)을 찾아본다는 건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일단 우리 자녀가 법을 어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생각하기조차 껄끄러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가 우리 사회와 가정에 파고들면서 자녀를 위해 법령과 판례를 찾아보는 부모가 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심지어 학교폭력 해결에 있어서 변호사를 고용하여 대처하는 모습도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죠.

    변호사를 통해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부모가 점점 법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적 변화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법이 경찰과 검찰, 변호사와 판사만이 알아야 하는 특권으로 분류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법은 자녀 교육을 위해 꼭 알아야 할 상식이 되었고,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아이를 위해 법과 상식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법이 시행되고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 법에 대해 모르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n번방 방지법」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대 국회에서 겨우 문턱을 넘어 통과한 법이죠. 구체적으로는 「성폭력처벌법」과 「청소년성보호법」 그리고 「정보통신망법」과 「전기통신사업법」 등이 개정되었고, 덕분에 우리 사회에 삐뚤어진 성 관념과 가치를 다시 배우고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올 것이 왔다”라는 목소리가 있지만 “다듬어야 할 내용도 적지 않다”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단 「n번방 방지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과 「불법 성적 촬영물」이라는 두 용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에 개정된 「n번방 방지법」의 핵심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 착취물’로써 기존에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라고 쓰였던 용어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로 바뀌었습니다. 또 기존에 ‘몰카’라고 불렸던 ‘불법 촬영물’을 「불법 성적 촬영물」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이라는 용어를 살펴보죠.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은 말 그대로 아이들의 성을 착취하는 영상과 이미지를 말합니다. 법조문에 의하면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성교 행위와 유사 성교 행위 그리고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자위행위 등의 내용을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을 말합니다.

    특히 부모가 주목할 것은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인데, 최근 판례를 보면 아이들이 즐겨보는 ‘야한 애니메이션’이나 ‘야한 만화’ 같은 외국에서 유입된 표현물까지 성 착취물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바로 아이들이 즐겨보는 스마트폰 콘텐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재미 삼아 보는 교복물이나 학원물의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성 착취물’로 분류되어 이제 시청만 하더라도 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불법 성적 촬영물」이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대상자의 동의 없이 찍은 영상과 사진 등’을 말합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소위 ‘몰카’를 의미합니다. 당연히 우리 아이가 불법 촬영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불법 성적 촬영물」을 이제는 보관, 시청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이번 「n번방 방지법」의 핵심은 기존에 유포만 처벌하던 것을 이제 보관이나 시청만 하더라도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호기심으로 보는 음란물 대부분 「불법 성적 촬영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고 또, ‘n번방’에서 유포된 성 착취물들이 아직 회수되지 않고 잠적한 걸 고려하면 앞으로 아이들을 유혹하는 불법 도박사이트나 게임물 쪽지 등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기웃거릴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물론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과 「불법 성적 촬영물」 모두 시청만 했다고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법상 고의로 시청한 때에만 처벌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고의성 여부를 입증하고 판단하는 것이 당사자와 수사기관에 있다는 것이죠. 쉽게 말해, 우연한 시청이었다고 하더라도 상황을 입증하지 못하면 자칫 법에 저촉될 수 있고, 또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불법 콘텐츠를 스트리밍(streaming) 즉, 재생하는 순간에도 자동으로 저장된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결국, 부모가 자녀에게 불법 영상물 시청에 대한 교육을 당장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는 반면에 또 반가운 개정 내용도 있습니다. 특히, 여자아이의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랜덤 채팅에서 벌어지던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 성범죄와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성 착취 범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규정을 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성적 목적으로 아이를 유인하거나 채팅에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의제 강간’ 연령을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상향 조정하고, 생존을 위해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신분을 ‘성매매 피해자’로 개정한 것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일단 자녀에게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과 「불법 성적 촬영물」에 대한 개념을 이해시키는 데 노력해 주세요. ‘강간’이 ‘성폭행’으로 용어가 바뀐 것처럼 ‘이용 음란물’이 ‘성 착취’로 바뀌게 된 것 또한 이유를 이해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걱정되는 건 ‘야애니’, ‘야망가’ 같은 아이들의 눈요기였던 표현물과 일반 성인 음란물에 포함되어 있는 「불법 성적 촬영물」을 시청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n번방 방지법」의 가치는 ‘n번방’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n번방’ 사건은 우리에게 ‘누구나 「성 착취물」과 「불법 성적 촬영물」의 가해와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사회가 동의하는 ‘성인지 감수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교육해줄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부모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자녀들이 불법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을 지나쳐서도 안 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자녀를 교육하기 전에 지금 당장 부모가 먼저 인터넷에서 「n번방 방지법」을 검색해 관련 뉴스와 법령을 읽고 학습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다른 건 몰라도 「n번방 방지법」 교육만큼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