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경찰관의 유즘 자녀學] 아이들이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기사입력 2020.06.12 11:45
  • 최근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아이들의 무면허 교통사고를 보고 있자니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아이들은 차량 운전석에 올라타는 것을 마치 게임기의 코드를 꼽고 소파에 앉은 것으로 착각합니다. 차량의 시동을 켜는 건 게임기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과 다르지 않고, 핸들을 잡고 전방을 주시하는 건 마치 게임기 콘솔을 쥐고서 TV 모니터 속에 펼쳐진 거리의 풍경을 주시하는 것과 같다고 여깁니다. 중요한 건, 차량이 움직이면 아이들은 순식간에 흥분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게임 속 캐릭터가 된 양 몰입한다는 점입니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의 무모한 운전이 세상에 소개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일입니다. 하지만 당시 아이들의 무면허 운전은 ‘색연필’ 코너 같은 짤막한 소식으로 보도되었을 뿐,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고 사례도 많지 않았죠.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 디지털 부품으로 조립되면서 아이들의 무면허 운전 사고는 뉴스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인터넷 게임기의 출시와 맞물려 증가하는 현상도 보였습니다. 여기에 당시 ‘대한민국 자동차의 변속장치가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뀐 것도 한몫을 했다’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운전 현상을 게임과 같은 지엽적인 영향으로 몰아세우기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크게 달라진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자가용 보유 수가 약 1,800만 대였던 것이 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인해 올해는 약 2,500만 대를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보다 부모가 아이들과 차량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카 셰어링(car sharing)’ 형태의 차량 공유 서비스의 등장과 허술한 소셜미디어와 애플리케이션만으로 모든 사회 시스템이 채워지는 구조 또한 아이들의 운전을 부추겼습니다. 쉽게 말해, 넘볼 수 없었던 운전의 영역을 아이들로 하여금 기웃거리게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무면허 운전의 주요 동기가 ‘호기심’이었다면 지금은 호기심을 넘어 ‘나도 어른처럼 충분히 운전을 잘할 수 있다’라는 무모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입니다. 결국, 이러한 무모한 신념의 배경에는 아이들이 장착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력’에 대한 오만과 소셜미디어가 제공하는 무분별한 정보가 깔려있습니다. 게다가 청소년기에 마주하게 되는 ‘동조압력’이라는 아이들의 심리 현상은 무면허 운전이 분명한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친구들의 동조로 판단이 왜곡되어 함께 행동하게 됩니다.

    지난해 무면허 운전으로 사망한 163명 가운데 10대가 몰았던 차량에 숨진 희생자가 18명이나 되고, 부상자 역시 1,016명이나 된다는 사실은 이 사안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말해줍니다. 특히 무면허 운전으로 붙잡힌 어른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아이들의 무면허 운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아이들의 무면허 운전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조종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왔던 작은 구멍을 비로소 마주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합니다.

    지난해에는 10대 청소년이 무면허 운전을 해서 데이트를 하던 젊은 남녀를 사망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운전자는 고등학생이었고 조수석에는 또래 친구가 타고 있었습니다. 당시 운전자는 사고가 나기 며칠 전에도 무면허 운전으로 경찰에 단속된 사례가 있었음에도 다시 운전을 해서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을 심리한 ‘대전지방법원’은 고등학생 운전자에게 징역 장기 5년에 단기 4년을 선고했고, 눈여겨볼 것은 조수석에 있었던 친구 또한 ‘무면허 운전 방조’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선고를 담당했던 판사는 아이들의 행동이 경솔하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젊은 남녀의 목숨을 앗아가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결했습니다. 여기에 민사적인 손해배상이 빠진 걸 생각하면 무면허 운전의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에도 아이들의 무모한 운전은 끊이질 않았고, 또 얼마 전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을 사망하게 만든 중학생들의 무면허 교통사고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차량에는 정원을 초과한 남녀 중학생 7명이 동승했고, 훔친 렌트카 차량으로 사망사고를 낸 후 다시 다른 차량을 훔쳐 유유히 달아나는 대담함까지 보였습니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아이들은 경찰서에서 와서도 반성은커녕 소셜미디어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과시하는 모습까지 보여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의 대비가 시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의 구조가 바뀌기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누구의 잘못을 따진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일단, 아이들을 생각하면 당장에 필요한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고, 누구도 우리 아이들을 무면허 운전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부모의 차량이 주차장에서 제대로 시정되어 주차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주세요. 무면허 운전에 앞서 최근 아이들의 차량 절취 사건이 빈발하면서 주요 목표물이 ‘백미러가 접혀 있지 않은 차량’이라고 합니다. 또 지금 당장 차량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도 찾아주시죠. 차량의 열쇠는 아이의 시선에서 가급적 보이지 않도록 해주시는 게 좋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태도에서 경계선을 배우는 특성이 있습니다. 부모가 사용하는 차량이 부모와 같은 어른만의 고유한 영역이고 절대 가벼이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부모님의 운전면허증은 어디에 보관하시나요? 또 우리 아이의 지갑에 위조된 운전면허증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체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한 어머니로부터 중학생 아이가 어머니의 면허증으로 차량을 빌려 새벽에 운전하다 사고가 발생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업체에서는 휴대폰 인증을 한다고 하지만 공교롭게도 아이들의 휴대폰이 대부분 부모님 명의가 많다 보니 애플리케이션에서 검증하는 개인 검증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또, 최근 소셜미디어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아이들이 손쉽게 위조된 운전면허증을 살 수 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지나친 과시욕과 동조 현상이 결합되면 아이들은 언제든지 비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무면허 운전에 대한 심각성을 꼼꼼하게 설명해주세요. 뉴스를 통해 가족끼리 함께 토론하고 대화를 나눠보는 시간도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무면허 운전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저연령일수록 게임, 동영상, 소셜미디어를 통해 잘못된 학습을 하기 쉽지요. 결국, 아이들의 논리에서 운전 행위는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직접적인 폭력과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의 자율적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운전은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과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행위라는 것을 지금부터 꼭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