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의 오묘한 오뮤(오페라&뮤지컬) 산책] '나비 부인'과 '미스 사이공'
기사입력 2020.06.12 09:22
  • ▲ 다소 불편한 이야기  
    불안하고 폭력력적인 전쟁의 시기는 사람들의 삶을 황폐화시킵니다. 잔인한 전쟁의 상황 속에서 많은 이들이 피 흘려 죽지만, 더 많은 힘 없는 이들이 고통받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참상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납니다. 참혹한 상황과는 대비되게 더욱 더 애절한 사랑을 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의 맹세는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순정을 다 바친 맹세를 남기고 떠난 남자는 떠나고, 그의 아이를 낳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은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지만 사랑의 맹세를 믿고 버팁니다. 그는 이미 본국으로 돌아가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찾아 옵니다. 사랑의 감정은 이미 마르고 오직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굉장히 익숙하게 들릴 텐데요. 오늘 알아볼 <나비 부인>과 <미스 사이공>의 이야기 구조입니다. 지금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아주 불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데요.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의존하기만 하다가 비극을 맞이하는 여성의 모습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게다가 두 작품에서 피해자는 모두 동양인으로 그려진다는 점도 불편한데요.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그려진 서양 중심의 사고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이 공연되고 있고, 대형 작품으로 평가받는 오페라 <나비 부인>과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함께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 나비 부인 / 조선일보 DB
    ▲ 나비 부인 / 조선일보 DB
    ▲ 푸치니의 <나비 부인>
     <나비 부인>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왜색이 짙을 수밖에 없고 어떤 작품의 경우 가부키 형식으로 구성된 것도 있어 우리 정서에는 맞지 않다는 평가를 많이 받기고 합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일본에 주둔하게 된 군인과 사랑에 빠진 게이샤 ‘나비’의 지고지순한 기다림 그리고 배신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 지극히 통속적이고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라 보엠>에서 살펴봤던 작가 푸치니의 작품입니다. <라 보엠>, <토스카>와 함께 <나비 부인>은 푸치니의 3대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배경을 일본으로 하고 있는 만큼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소프라노들의 가장 최종 목표로 하는 배역이 나비 부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아시아계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적이고 여성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작품’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1904년 밀라노에서 초연되었을 당시 야유를 받으며 초라하게 막을 내립니다. 동양풍에 대한 낯섦과 일본어 가사 등장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습니다. 2막을 3막으로 개정하고 내용을 각색하여 초연 3개월 후에 브레시아의 무대에 올려 큰 성공을 거둡니다. 1907년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고 푸치니의 명성이 더욱 올라갑니다. <나비 부인>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미스 사이공 / 조선일보 DB
    ▲ 미스 사이공 / 조선일보 DB

    ▲ 일본에서 베트남으로 <미스 사이공>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베트남 모두에게 굉장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인간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지까지 의문을 남긴 채 끝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만든 클로드미셸 쇤베르그와 알랭 부브릴의 1989년 작품으로 줄거리는 앞서 살핀 <나비 부인>을 바탕을 하고 있으며, 베트남 전쟁이 배경이 됩니다. 이 작품을 구상할 당시 실제 유사한 일들이 베트남에서 많이 있었다는 점에서 착안했다고 합니다.

    1989년 영국 런던의 드루리 레인 극장에서 초연했으며, 1999년까지 10년 동안 공연되었고, 1991년부터 2001년까지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되었습니다. 이후 2014년에 웨스트 엔드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25주년 리바이벌 프로덕션이 다시 올라왔고, 9월 22일 25주년 기념 갈라 공연이 열렸습니다.

    세계 4대 뮤지컬 중 한 작품으로도 꼽히는데요. 다양한 음악적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화려한 볼거리 덕분에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헬리콥터 등장 장면은 무대 연출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비슷한 스토리지만 조금은 다른
     소설과 오페라 <나비 부인>의 초초상은 수동적이면서도 속 깊은 동양 여인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나비 부인>에 대한 푸치니의 애정은 각별했다고 하는데요. <나비 부인>의 초초상은 푸치니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였다고 합니다. 당시 오페라를 제작할 때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쓰곤 했는데, 푸치니는 아내와의 불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본인 배우를 집안에 들여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푸치니가 거액을 들여 산 보트에 ‘초초호’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답니다.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비 부인>은 순수한 초초상의 사랑과 희생에 무게가 있다면, 이를 근간으로 한 이 <미스 사이공>은 전쟁 속에서 고아가 된 베트남 소녀 킴과 미군 크리스의 사랑뿐만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그리고 킴의 진한 모성을 여러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 지점에서 불편함이 있는 작품들이기는 하지만 예술성은 단연 압권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르게 본다면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참혹한 전쟁과 권력의 상황 속에서 희생 당하는 개인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해볼 수도 있습니다. 두 작품은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른 만큼 함께 감상해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