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 철야, 철야 … 도시락 먹을 시간도 없었다”
이재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20.05.08 11:03

-온라인 개학 준비 ‘언성히어로’ 개발자에게 과정 들어보니
-소형 서비스 개발인 줄 알았지만 ‘전 학년 원격수업’에 아연
-“가능한 모든 기술적 문제 경험했다” 비지땀 흘리며 대처
-시스템 환경은 조성 … 교육계에 원격수업 질적 발전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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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DB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 4월 우리나라의 전 학년 온라인 개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초기 잦은 접속지연 등으로 문제를 드러낸 원격수업은 비교적 빠르게 안정세를 찾았다. 교사와 학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의 이면엔 철야를 반복하며 안정화에 땀 흘린 에듀테크 개발진이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 2월 24일, 에듀테크 기업 유비온은 EBS로부터 EBS이솦(EBS Software Learning Platform·ESOF)의 기능을 수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솦은 유비온이 EBS의 위탁을 받아 개발, 운영하는 대국민 무료 SW 교육 온라인 플랫폼이다. 유비온도, EBS도, 그리고 교육부도 몰랐던 예상할 수 없었던 전 학년 온라인 개학의 시작이다.

    ◇ 소형 서비스→대구·경북 지역만→전 학년 온라인 개학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일주일 가량을 할애해 EBS 온라인 클래스를 뚝딱 만들었다. 온라인 개학의 낌새조차 없었던 시기라 서버용량을 얼마나 키워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워 우선 이솦에 준하는 규모로 만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곧바로 터졌다. 

    “온라인 개학 전부터 시범 운영 당시부터 서버가 접속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매일 같이 철야를 했습니다.” 구재명 유비온 미래교육사업부서장은 이렇게 말했다. 교육부는 온라인 개학을 발표하기에 앞서 시범학교를 지정하고, 일선 학교에도 EBS 온라인 클래스를 활용할 수 있다고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EBS 온라인 클래스는 곧바로 서버가 ‘터졌다’.

    초기 목표는 대구·경북지역의 원격수업이었다. EBS 온라인 클래스는 대구·경북지역 중고생 26만명이 접속할 수 있는 규모로 서버를 늘린다. 그러나 교육부가 원격수업 시범학교 등을 운영하고 EBS 온라인 클래스 활용을 일선 교사에게 알리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유비온 개발진이 눈에 불을 켜기 시작한 게 이 시점이다. 간단하게 생각했던 작업이 끝을 모르고 늘어졌다. 설상가상 본격적인 온라인 개학일정이 발표됐다. 유비온은 몰려드는 접속자를 보며 아연했다. 구 부서장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현상을 다 겪었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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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꽉 밀린 고속도로 진입로 … “댓글로 출결확인 할 줄이야”
    서버가 터지는 유형은 다양하다. 우선 진입 시의 지연이 있다.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차량행렬을 떠올리면 된다. 이후엔 특정 서비스로 진입할 때 접속 지연이 발생한다. 고속도로 진입 뒤 휴게소에 들어가려고 밀리는 차량, 나오면서 막히는 차량, 그리고 휴게소에서 볼일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등 각기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듯이, EBS 온라인 클래스 내에서 별도로 할당된 영역 곳곳에서 지연이 발생했다. 

    이 밖에도 휘발성 데이터인 캐시 데이터, 명령어다발을 의미하는 쿼리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구 부서장은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철야를 해서라도 서버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성취감이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개발진도 지쳐갔다. 답이 없는 문제에 개발진 8명이 투입돼 허덕이는 모습을 보는 경영진도 가슴이 타들어갔다. 

    이런 상황은 e학습터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e학습터의 개발과 운용을 맡은 것은 지역의 IT기업들이다. 당시 서비스 실무에 동참했던 백상엽 퓨전소프트 전무는 “처음 교육당국의 원격수업 목표수치(300만명)을 듣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검토단계부터 철야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e학습터는 네이버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해 구축돼 있었다. 이 운영을 책임진 박기은 네이버 비즈니스 플랫폼 CTO는 온라인 개학 초기 접속지연의 주요한 원인으로 ‘출결관리’를 꼽았다. 그는 “첫날 시스템 성능 저하의 주요한 원인은 게시판 이용 출결확인이었다”며 “출결관리의 방식을 학습방 게시판에 댓글 달기로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특정 시간대에 갑자기 게시판 덧글이 폭주하기 시작하자 시스템 장애를 유발했고, 거의 모든 서버로 접속 지연 등이 전이돼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개발진은 철야를 반복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썼다. 캐시 데이터를 분산하고, 쿼리를 가볍게 다시 프로그래밍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역할을 하는 게이트웨이를 8개에서 160개(EBS 온라인 클래스 기준)로 순식간에 늘리고, 데이터 저장소도 기존보다 4배 확충한 것은 개발 난도 측면에서 기적적인 성과였다. 백 전무는 “며칠 동안 집에도 못 간 직원들이 아침도 먹지 못해 도시락을 주문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없어 식어버릴 정도였다”고 전했다. 
  • ◇ 서버 증설로 급한 불 꺼 … 원격수업 고도화 노력 당부
    그러나 기술적 해결은 한계가 있었다. 서버 용량을 늘리는 게 최선의 대책이었다. 구 부서장은 “기술적인 대처가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서버 증설이 가장 손쉬운 답이었다”며 “다만 예산상의 문제로 개발진이 직접 요청하기엔 무리가 따랐다”고 했다. 이 결정은 정부가 구성한 상황실에서 했다.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14일 유비온에 EBS 온라인 클래스 상황실을 꾸리고, 개발진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서버 증설도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EBS 온라인 클래스 서버는 당초 3만명 수준에서 700배로 대폭 확장했다. e학습터 역시 서버 세트를 7개까지 늘렸다. 

    지금 원격수업은 안정세를 찾았다. 박 CTO는 “원격수업의 원활한 진행 관점에서 보면 90%는 완성됐고, 시스템 최적화와 클라우드 활용 등보다 기술적 관점에선 70% 정도 원격수업 환경을 갖췄다”고 했다.  

    다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고 했다. 그는 “클라우드 온라인 교육 플랫폼, 한국형 원격 수업 시스템의 완성도를 묻는다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구 부서장 역시 원격수업을 위한 원활한 환경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을 뿐, 교육적 관점에선 갈 길이 멀다고 했다.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교육 서비스 진출을 위한 장벽을 허물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백 전무는 원격수업 교수학습법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온라인 개학의 부족한 점이 많았더라도 많은 이들이 노력했음은 알아주시길 바란다”면서 “지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교사·학생 간 소통과 원격 수업의 집중력 향상, 학생의 온라인협력을 통한 과제 수행, 자유롭고 공정한 평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교우관계 등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