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선거권 보장에도… 정치활동 금지하는 고교 64.1%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20.03.30 11:53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전국 533개 중·고교 조사 결과
-10곳 중 8곳, 집단행동 처벌 규정… “집단적 목소리 제한”
-일부 학교, 학교 문제 SNS 고발·언론사 제보 시 징계 대상
-“교육 당국, 학생 학칙 전수조사하고 후속조치 확인해야”

  • 지난해 12월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올해부터 만18세 청소년의 선거권을 보장하기로 했지만, 학교에는 여전히 학생들의 정치활동이나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규칙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세 선거권 도입 이후 강원·광주·울산·전남·충남 등 지역교육청이 정당 가입을 금지한 학교 규칙을 손보라고 권고했지만, 교육 당국의 적극적인 실태 파악과 후속조치가 없다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30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이하 촛불청소년연대)는 전국 533개 중·고교를 대상으로 학교 알리미와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학교 규칙을 조사해 이 같이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당·정치적 단체 가입 금지 또는 정치활동을 금지·처벌하는 규칙이 있는 고등학교는 64.1%(139곳)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치 관여 행위나 정치 활동을 징계 사유로 정한 학교는 대체로 징계 수위를 매우 높게 책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기 지역 A고의 경우, ‘학생회의 회원은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해 활동할 수 없으며 학교 운영에 관한 사항을 의결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촛불청소년연대는 “학생회의 회원은 재학생 전원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재학생의 정당·정치적 단체 가입이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불법 집회 참가’ 처벌이나 ‘불량·불온 단체’ ‘불량 서클’ ‘학교의 허가 없는 단체’ 금지 규정을 명시한 학교도 많았다. 이러한 규정은 조사 대상 고교 중 168곳(77.4%)에서 확인됐다.

    서울의 B고는 ‘학교장의 허가 없이는 특별활동 등 어떠한 형태의 모임도 가져서는 안 된다’ ‘학교장의 허가 없이 단체나 서클을 조직하거나 이를 가입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촛불청소년연대는 “일차적으로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모임이나 조직을 금지하고 있지만, 학교 내부를 적용 범위로 한정하지 않고 있어 학교 밖의 정치·사회단체 등에 가입하거나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으로도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며 “이 같이 학교장이 인정하거나 허가한 모임만 참가할 수 있다는 조항은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 정치적 권리 침해 유형은 ‘집단행동’ 또는 ‘집단행동 선동’을 처벌하는 규정이다. 조사 대상 고교 10곳 중 8곳(82%)은 ‘동맹 휴학’(집단 수업 거부)이나 ‘백지 동맹’(집단 시험 거부) 등을 처벌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서울의 C고는 징계 대상으로 ‘백지 동맹을 주동하거나 선동한 학생’ ‘학생을 선동해 질서를 문란하게 한 학생’ ‘동맹휴학을 선동·주동하거나 동참한 학생’ 등을 적시하고 있다. 촛불청소년연대는 “이러한 규칙은 학생들의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학교 안에서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을 크게 제한하는 효과를 낸다”고 지적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경우’ ‘허위사실을 유포해 학교와 교원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 대한 징계 규정을 두고 있다. 촛불청소년연대는 “최근 학교의 문제점을 SNS에 고발하거나 교육청 민원 또는 언론사 제보 사례가 늘어나면서 생긴 조항으로 보인다”며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등에 대한 판단도 자의성이 개입할 여지가 많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명백한 허위 사실로 무고한 경우에 대해서만 제재하는 내용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개정하지 않으면 지난 2018년부터 주로 SNS를 통해 교내 성폭력과 성차별을 고발해온 ‘스쿨미투운동’ 등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촛불청소년연대는 “학생의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고 있는 학교 규칙들은 헌법과 유엔 아동권리협약 등을 위배하고, 학생인권 보장 의무를 명시한 초·중등교육법과도 맞지 않다”며 “교육 당국은 학칙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는 학칙에 대해 개정 결과를 확인하는 등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