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학교 자치권 부족… 학교교육과정 자율화해야”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20.01.09 14:11

-시도교육감협의회, 1차 교육자치포럼 열어
-교육부 결정권한 조정 필요 지적
-국가교육과정 대강화, 교과서 자유발행제 등 제시

  • 9일 오전 세종특별자치시교육원에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교육부가 공동 주최한 '1차 교육자치포럼'이 열렸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제공
    ▲ 9일 오전 세종특별자치시교육원에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교육부가 공동 주최한 '1차 교육자치포럼'이 열렸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제공

    교육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학교교육과정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9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교육부가 공동주최한 ‘1차 교육자치포럼’에 참여한 교육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교육자치포럼은 교육자치 실현을 위한 교육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학교자치 실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문가들은 교육자치의 핵심이 ‘학교자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학생의 특성과 여건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조강연을 맡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현실의 교육자치에서 교육부의 역할은 지나치게 크고, 교사의 역할은 지나치게 작다”며 “교육부는 교육청에, 교육청은 학교에, 학교는 교사에, 교사는 학생에게 더 많은 결정권한을 과감하게 넘겨 교육주체의 자율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우리나라는 국가와 지방 간 자치 권한 배분을 논의해왔지만, 단위학교 자치는 아직 준비가 부족한 상태다. 이병도 충남교육청 교육혁신과장은 “그동안 지역교육청과 단위학교 간 분권에 대한 논의는 활성화되지 못했다”며 “중앙정부에서 배분한 권한과 업무를 각 교육청에서 책임을 회피하며 단위학교로 떠넘기지 않으려면 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원의 역량을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교육과정 거버넌스 재구조화’를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았다. 함영기 서울시교육청교육연수원장은 “단위학교는 국가교육과정과 시도교육과정 편성·운영지침 아래 이중적인 제약을 받고 있다”며 “미래지향적 교육과정 거버넌스 재구조화의 핵심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충분한 자율성과 평가권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교육과정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교육과정 분권화를 통해 ‘학교교육과정 자율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학교교육과정 자율화는 국가교육과정을 지역·학교·학급 상황에 맞춰 편성·운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교과목과 교육과정 등을 개발해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정광순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궁극적인 장(場) 역할을 하는 학교에 맞춰 지역교육청과 중앙정부가 학교교육과정 개발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교육과정 자율화를 실현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국가교육과정 대강화’와 ‘교과서 자유발행제’ 등이 제시됐다. 함 원장은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 확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경직된 교육과정”이라며 “학교급별 교육목표와 발달단계별·교과별 성취수준, 최소 이수단위 등을 국가가 제시하고, 나머지 사항은 모두 시도교육청과 학교로 이관해 자율성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과서 자유발행제는 고교학점제 준비 단계에서 검인정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교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극적”이라며 “교육과정 대강화의 폭에 따라 교사가 교재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장 교사들은 정부가 안전·생명·인터넷 중독 등 사회적 요구에 따른 과잉 교육을 강제하면서 나타나는 역효과도 지적했다. 신동하 경기 청솔중 교사는 “사회에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법령 등으로 범교과 교육 요소를 교육과정에 집어넣는 일이 늘고 있는데, 학교교육과정과 중복되거나 지나치게 세부적인 게 많다 보니 전체 교육과정이 어그러지고 있다”며 “중등 학생이 1년간 수강하는 전체 시수의 약 20%에 육박하는 시간을 특별 교육에 할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교육자치를 명목으로 불필요한 행정업무가 늘어나고 있는 점도 개선 과제로 꼽혔다. 교사들이 받는 총 공문량을 연간수업일수로 나누면 이들이 하루에 처리하는 공문은 평균 70건에 달한다. 공정욱 고양 낙민초 교사는 “최근 혁신지구, 혁신공감학교 등의 교육자치사업의 공모사업으로 인해 행정업무가 더욱 양산되고 있다”며 “진정한 자율적 예산 집행이라면 지역교육청의 부서별 공모사업 형태가 아니라 학교의 총 예산에서 교육공동체의 협의로 여러 교육주제를 선정해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기존의 중앙행정부서인 교육부를 대신할 중간 기구를 조직해 실질적인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휴용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핀란드의 국가교육위원회나 호주의 주 교육위원회, 미국의 전미교사·학부모협의회 등과 같이 학교교육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의결기구로서 위상과 권한을 가진 공적 기구를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교육자치포럼은 3차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오는 22일과 내달 13~14일에 열리는 2·3차 포럼에는 시도교육감이 직접 참여해 교육자치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다. 이번 포럼은 1000여명이 참가를 신청해 접수를 조기 마감하는 등 교육계 안팎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