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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알쏭달쏭 '개념 미술'

최지은 기자

2020.01.0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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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붙인 바나나도 작품?… 생각 자체가 예술이 된대요

보이지 않는 생각에 중점 둔 '개념 미술'
프랑스 뒤샹, 남성 소변기로 포문 열어

영상·사진·음악 등 여러 재료 활용
사물·현상까지 미술로 봐 상상력 자극

지난달 5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한 미술 전시에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가 등장했다. 흰 벽에 은색 테이프로 붙여놓은 이 노란 바나나는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사진①>’이라는 작품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바나나는 무려 12만 달러(약 1억4000만 원)에 팔렸다. 7일 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데이비드 다투나라는 행위예술가가 바나나를 꿀꺽 먹어버린 것. 그는 “배가 고파서 먹었다”며 “이것이 예술가들이 대화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각종 패러디가 이어졌다. 파파이스·버거킹·펩시콜라 등 기업들은 자사 제품을 벽에 매달아 광고를 만들었고, 소셜미디어에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소지품을 벽에 붙인 사진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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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EPA 연합뉴스
바나나는 사라져도 작가의 생각은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썩어버리는 바나나가 어떻게 값비싼 예술 작품이 된 걸까? 여기서 중요한 건 바나나 자체가 아니다. 바나나를 벽에 붙이기로 한 '아이디어'가 핵심이다. 거래된 것도 바나나가 아니라, 바나나에 담긴 '개념'이다. 바나나를 전시한 페로탕 갤러리 측은 "'코미디언'은 고전적인 유머와 세계무역을 상징하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눈에 보이는 작품보다 보이지 않는 작가의 생각에 중점을 두는 미술을 '개념 미술'이라고 한다. 다투나가 바나나를 먹어치운 자리에 페로탕 갤러리 측은 새 바나나를 걸어뒀다. 그리고 "바나나는 사라졌지만, 진품 증명서가 있으니 문제 될 것 없다"고 했다.

손으로 만들지 않아도 미술 작품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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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샘’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은 개념 미술의 선구자다. '예술가가 직접 만들지 않아도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예술관을 탄생시켰다.

개념 미술의 시작은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뒤샹은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전에 남성용 소변기를 출품했다. 제목은 '샘<사진③>'이라고 붙였다. 협회는 이 작품을 전시에서 제외해버렸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제품이라 예술적 가치가 낮다는 이유였다. 뒤샹은 반발했다. 그는 "직접 손으로 제작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예술가가 이 소변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라며 "평범한 물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창조해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이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뒤 '샘'은 '20세기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꼽히며 199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700만 달러(약 198억8000만 원)에 낙찰됐다.

"예술가의 철학, 이해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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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 ‘풍선과 소녀’ /소더비 인스타그램
개념 미술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뒤샹처럼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영상이나 사진, 음악, 언어 등 여러 재료를 활용한다.

세계적인 그라피티 예술가 뱅크시는 2018년 10월 이벤트를 꾸몄다.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작품 '풍선과 소녀<사진②>'가 104만2000파운드(약 15억9000만 원)에 낙찰된 순간, 미리 설치한 장치의 작동 버튼을 눌렀다. 그림은 액자 아래로 내려오면서 잘게 잘렸다. 경매장은 당혹감으로 가득 찼다. 파괴와 자율이라는 예술의 속성을 보여주려는 뱅크시의 기획이었다. 작품은 손상됐지만,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다. 낙찰받은 고객은 잘려나간 작품을 낙찰 가격 그대로 구매하기로 했다. 그림에는 '쓰레기통 속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이처럼 관객의 반응이나 이후 상황도 개념 미술에서는 작품의 일부라고 여긴다.

개념 미술은 "안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작가의 심오한 철학에 대중의 머릿속에는 알쏭달쏭한 물음표만 남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개념 미술은 우리 시대 미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며 "사물과 현상을 미술의 일부로 보게 하면서 더 재밌는 생각을 할 가능성을 열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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