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도입 이후 우리나라 교육 달라질 것… 패러다임 변화 필요”
대구 =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12.16 11:59

-16일 ‘대구미래교육포럼’ 열려… IB 관계자 등 참석
-"향후 논술형 수능인 ‘한국형 바칼로레아’(KB) 운영해야"

  • 16일 호텔 인터불고 대구에서 ‘2019 대구미래교육포럼’이 열렸다. 이번 포럼은 국제 바칼로레아(IB) 프로그램 도입의 필요성과 이후 전망을 다뤘다. /오푸름 기자
    ▲ 16일 호텔 인터불고 대구에서 ‘2019 대구미래교육포럼’이 열렸다. 이번 포럼은 국제 바칼로레아(IB) 프로그램 도입의 필요성과 이후 전망을 다뤘다. /오푸름 기자

    “한국어판 국제 바칼로레아(IB) 도입은 시범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의 교사와 학부모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칠 겁니다. 똑같이 공립학교를 다니는 옆집 아이가 내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전혀 다른 숙제를 하고 시험을 보는데도 대학에 성공적으로 진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국내 최초로 한국어판 IB 도입을 공식화한 대구광역시교육청이 16일 호텔 인터불고 대구에서 ‘대구미래교육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IB 프로그램 도입 이후 변화와 필요성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이날 포럼에는 600여명에 달하는 교육청 관계자와 학부모, 교사 등이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IB의 초중고 교육과정 인증 관계자도 연사로 참석했다.

    스위스 비영리교육재단인 IBO가 주관하는 논술과 토론 중심 교육과정인 IB는 현재 전 세계 153개국에서 4964개 학교가 도입했다. 대구교육청은 올해 IB 후보학교 9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후 2021년 상반기까지 학교 실사와 준비과정 평가 등을 거쳐 IBO 인증을 획득할 예정이다.

    IB 고교과정(DP)은 우리나라의 내신과 수능처럼 내부평가와 외부평가를 운영한다. 평가 전반은 IBO에서 일관성 있게 출제·채점·관리된다. 이 소장은 “학력고사와 수능으로 이어진 객관식 상대평가 일색의 대입 시험에 사실상 근대교육사 최초로 전 과목 논·서술 대입 시험이 도입되는 것”이라며 "이번 IB 한국어화는 단순한 시험 번역뿐만 아니라 교원 연수, 채점관 양성을 비롯한 평가 문화까지 전반적인 패러다임과 교사 학생의 역량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IB를 둘러싸고 국내 교육계 안팎에서 제기하는 각종 우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외국의 교육과정을 국내 공립학교에 들이는 과정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소장은 “2015 개정교육과정은 이미 IB처럼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교육을 통해 전인적 인간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강조하는 IB 수업에서도 기존의 국내 교과서를 사용해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함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험에서도 ‘옥수수와 나(2012)에 실린 김숨의 국수와 황지우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1985)의 지문 중 하나를 골라 문학적으로 해설하시오’ ‘한국전쟁 발발에 외세의 영향은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쳤는가’ 등 국내 문학 작품을 분석하거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을 묻는 식이다.

    토론과 프로젝트, 논술 위주 교육과정 운영에 따른 학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소장은 “IB 시험에 나오는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안을 쓰려면 결코 지식이 허술해선 안 된다. 다만 지식을 얼마나 숙지했는지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관점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기존과 다른 학력을 쌓고 전 세계 명문대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부연했다.

  • 16일 오전 9시 30분 호텔 인터불고 대구에서 열린 '2019 대구미래교육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의 모습. /오푸름 기자
    ▲ 16일 오전 9시 30분 호텔 인터불고 대구에서 열린 '2019 대구미래교육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의 모습. /오푸름 기자

    현재 우리나라 대학 입시에서는 모든 과목에서 객관식 시험을 보는 동시에 ‘논술’을 별도의 시험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소장은 “한국의 논술은 교육과정과 연계성이 낮아 공교육에서 대비하기 어려운 탓에 사교육에 의존할 여지가 컸다”며 “반면 IB는 과목별 평가로서 교육과정과 연계성이 높아 사교육이 작용할 여지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그는 “IB가 이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평가하는 대입 시험이라는 점에서 수능 개혁의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며 “수십년 간 전 세계적으로 정성평가 결과를 정량화해왔다는 측면에서 학생부종합전형 개선에 필요한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전문가들은 향후 장기적으로 논술형 수능인 ‘한국형 바칼로레아(KB)’를 개발해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기존의 수시와 정시 등 이분법적인 논쟁이 아닌 제3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소장은 “IB 시범 도입은 공교육에 IB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며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수능과 내신을 선진화해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KB 체제를 10~15년 동안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한국어판 IB 도입은 향후 KB 운영에 필요한 공정한 채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IB를 참고해 현재 객관식 수능을 점진적으로 논술형 시험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매년 5%씩 논술형 문항을 추가해 15년 후 70%까지 확대하고 나서 전 문항을 논술로 출제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송재범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장은 “IB를 비판하는 대다수 사람도 IB가 추구하는 교육 목적이나 방향에는 공감하고 있다”며 “많은 시도교육청에서 IB 채택 여부를 고민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간 결과와 선발에 집중해왔던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