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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 中
많은 사람이 인생 영화로 꼽는 ‘어바웃 타임(About Time)’의 한 대사입니다. 한 편의 영화가 백 권의 책을 대신할 때가 있는 것처럼 고단한 하루가 책으로 채워지지 않을 때 저는 매운 떡볶이와 호가든 한 캔 그리고 영화 ‘어바웃 타임’을 패키지로 묶어 저 자신에게 선물합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우리 부모가 결혼 전이나 갓 결혼해서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노팅힐(1999)’과 ‘러브 액츄얼리(2003)’를 연출한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상상해보면, 이 영화를 볼 당시 우리는 영화처럼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영화처럼 마음먹은 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수많은 일에 부딪히고 시행착오를 거쳐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저는 강연장에서 부모를 향해 “여러분들은 왜 부모가 되기로 선택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특별히 부모가 되기로 선택한 적은 없는데 왜 선택했냐’고 물으니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도 모르게 ‘부모가 되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모른 채 결혼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결혼을 선택한다’는 것이 ‘부모가 되겠다는 것을 선택하는 것’과는 별개라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선택한 사실에는 쉽게 동의하면서도 부모가 되기를 선택한 사실에는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선택해서 부모가 되었고, 우리가 계획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품 안에서 애지중지 키웠더니 이제는 좀 컸다고 부모는 뒷전에 두고 친구들만 쫓아다니는 아이가 바로 우리의 자녀입니다.
철학에서는 자식을 키우는 것을 가리켜 ‘부모의 부재(不在)를 준비하는 일’에 비유합니다. 또 부모는 자녀에게 길을 내어 주어야 하고 그 일을 대단히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모의 역할에는 ‘부모의 균형’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존재합니다. 이 말은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부모의 역할을 균형 있게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러한 균형을 갖춘 부모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만큼 민주적인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똑같이 하루 1,440분, 1시간에 60분씩을 공평하게 사용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는 이구동성으로 할 일은 많고 하루는 너무 짧다며 하소연합니다. 특히, 백색 가전 제품과 바뀐 근로 제도는 부모의 삶에 더욱더 많은 시간을 선물해 주었고, 통계상 아버지의 여유시간이 과거보다 3배가 늘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아버지는 시간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맞습니다. 이번 주제는 부모의 ‘균형’에 빈틈을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의 역할에 관해 함께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지금껏 아버지를 모아 교육하고 싶어도 먹고사는 일 때문에 강연장에 올 수 없다는 말에 하지 못했습니다. 또 책을 써서 보여드리고자 했는데 대한민국 독서율이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탓에 그마저도 설득력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달려와 철퍼덕 주저앉았던 사람은 항상 어머니였고, 사안이 심각해 아버지에게 연락이라도 할라치면 어머니는 단호하게 혼자 감당하길 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유령 가정’이라는 새로운 가족 용어를 떠올려 봤습니다. 여기서 ‘유령 가정’이란 가족 상담학에서 말하는 사회용어가 아니라 아버지가 존재하지만, 아버지의 기능이 사라져버린 이 시대의 비정상 가정을 꼬집는 말입니다.
위험한 청소년들의 사례를 보면 공교롭게도 대부분이 아버지의 기능을 상실한 ‘유령 가정’이 많습니다. 물론 아이 문제의 원인이 아버지에게만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부모가 가정에서 균형을 갖추지 못하면 자녀 또한 균형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아버지들이 자녀에게 관심이 전혀 없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 뒤처진 옛 버전 시스템과 우리의 시간을 해체해버린 디지털 사회구조도 원인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강연장에 오지 못하는 아버지들을 직접 찾아가 땀내 나는 공장 한가운데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아버지들의 눈을 보며 강연한 경험이 있고, 특히 강연을 마치고 나서 쏟아내는 특유의 무뚝뚝한 질문 세례는 그 자체만으로도 진심을 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억울해하면 적극적으로 동의하게 됩니다.
칼럼 ‘요즘 자녀學’은 앞으로 우리 자녀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해법을 글로 담을 예정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그저 자녀 안으로 어떻게든 들어갈 타이밍만 노리고 있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제 글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 상단에 있는 ‘공유’ 버튼을 눌러 남편 혹은 아버지의 ‘카카오톡’으로 전송만 하면 됩니다. 그럼 아버지는 읽을 것이고, 어머니와 아이들의 ‘하트’ 이모티콘 개수에 따라 아버지의 읽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질 것입니다.
저는 작은 글이 아버지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구나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의 ‘밥상머리’ 교육은 불가능해 보이고, 거실에 떡하니 걸려있던 ‘가훈’은 행적이 묘연해진 데다 퇴근길에 그나마 아비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던 ‘붕어빵’은 이제 대형마트에나 가야 살 수 있으니 아버지로서는 달리 써먹을 수 있는 ‘비언어적 소통’이 사라진 셈입니다.
그래서 이 글이 아버지의 등장을 이끌어내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엄마, 아빠도 처음이라서 그래.”라는 어느 부모의 글 또한 모든 부모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글보다는 가족의 노력이 아버지를 움직일 거라 저는 믿습니다. 터무니없게도 저는 요즘 다 자란 아이들을 다시 한번 키워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아버지로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고, 소중한 시기에 소중한 것을 외면한 탓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명확해졌습니다. 부모는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과거를 현재로는 바꿀 수 없지만 대신 자녀를 위해 현재를 미래로 바꿀 수는 있다는 희망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저처럼 지난날을 아쉬워하는 아버지가 없기를 희망합니다.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 제 글을 아버지도 읽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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