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도 괜찮아요” … 폭력 내면화하는 학생선수들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11.08 11:31

- 인권위,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 발표
- 성폭력 피해 2212명 등 … 인권위 개선책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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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선일보 DB

    “미워서 맞는 것이 아니니깐 맞아도 괜찮아요. 운동하면서 맞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배구 초등학생 선수)
    “운동하는 사람들은 맞아야지 정신을 차립니다.” (양궁 중학생 선수)

    폭력을 경험한 학생선수 4명 중 1명은 ‘맞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력이 늘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내면화하는 모습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스포츠인권조사단(조사단)은 7일 ‘초중고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학생선수가 있는 전국 5274개교 초중고 선수 6만321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해 91.1%(5만7557명)가 응답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폭력을 경험한 뒤 감정에 대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함’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24.4%(2064명)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초등학생 선수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답한 초등학생은 38.7%(898명)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비율은 각각 21.4%, 16.1%다.

    조사단은 “학생선수들은 일상화된 폭력 문화 속에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폭력을 필요악으로 인식한다”며 “이러한 폭력의 내면화는 운동집단 내 폭력 문화가 지속, 재생산 되는 악순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전수조사에서는 학생선수의 인권실태 면면이 드러났다. 우선 성폭력을 경험한 학생이 2212명에 달했다. 초등학교 438명, 중학교 1071명, 고등학교 703명이다.

    피해 시 대처는 소극적인 편이었다. 괜찮은 척 웃거나 그냥 넘어가거나,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한 경우는 각각 20.8%, 20%다. 얼굴을 찡그리는 등 소심하게 불만을 표시한 경우는 13.6%다. 반면 싫다며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경우는 18%,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고 자리를 떠난 경우는 5.7%다.

    신체폭력을 경험한 학생은 8440명이다. 초등학교 2320명, 중학교 3288명, 고등학교 2832명이다. 신체폭력 가해자는 코치가 44.7%로 가장 많았다. 선배선수(28.7%), 감독(14.1%) 등이 뒤를 이었다.

    언어폭력을 겪은 학생은 9035명으로 신체폭력보다 많았다. 초등학교 3423명, 중학교 3039명, 고등학교 2573명이다. 언어폭력 가해자 또한 코치(37.6%)의 비중이 높았다. 선배선수(24.5%), 감독(19%), 또래선수(14.6%)이 뒤따랐다.

    인권위는 학생선수들이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음에도 공적인 피해구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성)폭력으로부터의 보호체계 정교화 ▲상시 합숙훈련 및 합숙소 폐지 ▲과잉훈련 예방 조치 마련 ▲체육특기자 제도 재검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정례화 등의 개선책을 검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