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보장한다며 도입한 업무용 휴대전화 … 탁상행정에 찬밥신세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10.17 10:13

- 당초 계획은 2800대, 실제 신청은 415대
- 다른 교육청 유사 사업도 기대보다 저조
- 사업 시점 2학기에 번호 이미 공개된 탓

  • 이번 학기부터 일부 시도교육청은 교원을 대상으로 업무용 휴대전화를 제공하거나 번호를 두 개 만드는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교사가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해 발생하는 사생활 침해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교사들이 정책에 공감하지 못해, 실제 신청은 미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업무용 휴대전화 신청 대수는 당초 계획(2800대)의 약 15%에도 미치지 못한 415대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5월 ‘2019 서울교원 교육활동 보호 주요 정책’을 발표하고, 올해 2학기부터 업무용 휴대전화 단말기와 통신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학부모의 잦은 연락으로 인한 교권 침해를 예방해보겠다는 의도다.

    다른 교육청도 상황은 유사하다. 충남도교육청과 경남도교육청은 지난 5월 교권 보장 대책의 일환으로 각각 ‘투 폰 서비스’ ‘투 넘버 서비스’를 올해 2학기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한 휴대전화로 두 개의 번호를 이용하는 통신사의 부가서비스를 신청하면 그 비용은 교육청에서 내주는 사업이다. 신청자 수는 각각 약 3000명, 1600명이다. 기기 관리 등 불편 사항이 적어 신청자는 서울시교육청보다는 많은 수준이지만, 두 교육청 관계자는 “예상보다 저조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업 부진은 현장 교사의 공감을 얻지 못한 탓이 크다. 서울 한 고등학교의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교사는 “학부모의 전화를 차단하면 학교로 불만이 접수 된다”며 “업무 시간 외에 연락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고선 실효성이 없을 것 같아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중학교 교사는 “정작 필요한 대책은 교사, 학교와 학부모간 연락 가이드라인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뒤늦은 시행 시점도 또 다른 실패 이유다. 세 교육청은 모두 2학기 사업 시행을 목표로 신청자를 받았지만, 이미 1학기에 교사의 연락처가 공개된 상황이다. 업무용 휴대전화를 지급받거나 새로운 번호를 발급받아도 기존 번호로 연락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경남도교육청은 교사가 신청하고도 ‘필요 없을 것 같다’며 취소하는 경우가 이어지면서 2학기가 한 달이 넘게 흐른 현 시점에도 아직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 교육청이 진행하는 사업이 단기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유사한 사업을 내년에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곳은 충남도교육청이 유일하다. 다른 교육청은 향후 반응을 보고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학부모 만족도 조사를 진행해 효과를 확인해야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다. 서울시의회가 사업 예산을 승인할 때 이러한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10월 말 만족도 조사를 실시할 계획인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지 불투명하다”며 “사업을 중단할 경우 현재 보급한 업무용 휴대전화는 위약금을 지불해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고 했다.

    현장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에 교육계에서는 “예산만 날린 꼴”이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서울초등교장회가 서울시교육청의 사업 발표 직후인 지난 5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속 교장 3분의 1이 정책을 반대한 데는 예산 낭비가 가장 큰(36.2%) 이유였다. 구자송 전국교육연합네트워크 상임대표는 “과도한 재정 부담이나 관리 문제는 현장 교사들이 예상했던 바”라며 “반별로 배치된 유선전화를 SNS와 연동 가능한 인터넷 전화로 바꾸는 등 경제적이면서도 유지하기 쉬운 다른 방법을 충분히 고안해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