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 출신 김기영 대표의 IT교실] 데이터 주권 이동의 시작, 탈중앙화 신원증명(DID)
기사입력 2019.10.09 10:25
  • “모든 정보의 주인은 사용자 본인에게 있다.” 삼성전자 서비스기획 그룹장 김주완 상무의 말이다.

    우리는 데이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개인(Individual)들은 세계 곳곳에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생성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데이터들은 소수의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개인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막대한 부를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이 아닌 서비스 제공자들이 데이터의 주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IT 업계에서 이런 시대착오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제시되었다. 바로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신원증명(DID, Decentralized Identity)’이다. 

    DID란 개인 정보를 사용자의 단말기에 저장하고, 개인 정보를 인증할 때 필요한 정보만을 골라서 제출할 수 있게 해주는 전자신원증명 기술이다. 중앙 기관들이 아닌 개인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는 구조인 것이다. 기존의 방식과 달리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모든 개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각각의 사용자가 인증을 위해 꼭 필요한 필수적인 정보만 선택해서 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편의점에서 술을 구매할 때 직원에게 보여주는 주민등록증에는 나이뿐만 아니라 주소, 이름, 주민번호 등 모든 개인 정보가 노출된다. 하지만 DID 기반 신원지갑을 사용하면 20세 이상 성인이라는 팩트만 확인 시켜줄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 사용 시 편의성도 개선 될 것으로 보인다. DID를 이용하면 매번 별도로 인증할 필요 없이 이전에 인증했던 데이터를 불러오면 된다. 즉 개인 정보를 반복적으로 입력하거나 일일이 신분증 사진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

    결국 핵심은 데이터의 주권이 중앙기관·기업에서 개인에게로 온다는 것이다.

    소수의 서비스 제공자가 운영하는 중앙 시스템에 방대한 양의 개인 정보가 몰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현상이다. 서비스 제공자들은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의 양이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관리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한 번의 해킹 공격만으로도 대량의 개인정보가 유출 될 수 있다. 국내 최고의 금융 회사인 삼성증권은 직원 1명의 실수로 시스템이 무너졌고,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인 페이스북도 고객들의 정보를 지켜내지 못했다.

    개인들은 본인이 생성하는 데이터가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변화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프라이버시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블록체인 기술기업 중 하나인 아이콘루프의 김종협 대표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사상의 중심이 인간으로 넘어 왔듯, 개인 데이터 주권도 거대 기업에서 개인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테크 기업인 IBM·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이미 DID 서비스 개발을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페이스북은 리브라 백서에 디지털 아이덴티티(Digital ID)를 탈중앙화된 방향으로 혁신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SK텔레콤·KEB하나은행 등이 DID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9년 9월 블록체인 기반의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 서비스에 대해 임시 허가를 부여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해당 서비스 개발을 위해 경찰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성장 가능성은 높은 시장이지만 기술 구현을 위한 구체적인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만 생각할 뿐 생태계적 관점에서는 충분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표준 정립이 시급하다. 이미 여러 번 강조했듯 거버넌스 및 공통 표준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혁명의 불꽃이 만개하기도 전에 사라질 수 있다. 전 세계 시스템을 하나로 통일하는 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핵심적인 기능들에 대한 표준화 작업은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의 중심은 데이터다. 그리고 데이터의 중심이 ‘기관’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비스 제공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은 개별 사용자 중심으로 개편 될 것이다. 사회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는 것인데, 이런 큰 변화 속에는 반드시 기회가 존재한다.

    관건은 타이밍 싸움이다.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가 필요하다. 우리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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