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지금] 문·이과 공통으로 '과학탐구실험' 도입했지만…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9.09 09:42

-교사 “실험준비하며 업무 가중… 도구·장비 마땅치 않아”
-학생 “이론 위주 수업 변화없어… 탐구활동 여전히 부족”

  • # A 고등학교 1학년 김재영(가명·16)군은 1학기 과학탐구실험 과목을 듣고 크게 실망했다. 김군이 예상했던 실험 수업 풍경과 크게 달랐다. 그는 “수업 주제와 관련한 이론과 실험내용 등을 스마트폰으로 각자 조사하고 프린트 빈칸을 채우는 식에 그쳤다”며 “2학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기대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학교 현장에서 탐구활동이 부족한 과학교육의 실태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과학적 탐구 역량을 강화하고자 문·이과 공통교과로 도입된 ‘과학탐구실험’ 과목이 당초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탐구 중심 과목 운영에 필요한 교육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다. 과학적 조사와 실험, 체험활동 등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과학탐구실험 과목은 지난해부터 고교에 2015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도입됐다. 학생 참여형 과학 수업이 부족하다는 과학계의 요청을 반영해 기존 과학 교과에 있는 실험과 탐구 영역을 하나의 교과목으로 개설한 것이다.

    과학탐구실험 교과는 역사 속의 과학탐구, 생활 속의 과학 탐구, 첨단 과학 탐구 등 세 단원으로 구성된다. 통합과학의 필수 탐구실험을 주제별로 선별해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중학교 3학년까지 배운 과학 개념을 직접 탐구하며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 목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올해부터는 과학탐구실험 교과에 적용했던 석차등급을 폐지했다. 등급을 매기기 위해 시행했던 지필 평가가 사라지면서 학생들이 느끼는 평가에 대한 부담도 줄었다. 현재 대다수 학교에서 과학탐구실험 과목은 수행평가 100%로 성취평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 수업을 준비하며 느끼는 부담감은 여전하다. 교사들은 과학탐구실험 교과서를 바탕으로 매학기 교육과정을 직접 설계한다. 과학탐구실험에서 진행하는 실험은 한 학기에 적으면 한번, 많으면 세 번 정도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B고의 과학탐구실험 담당 교사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시수가 적은 수업이기 때문에 교육과정에 넣은 실험이나 활동의 절반은 수업시간 외에 학생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내준다”며 “다 같이 실험해볼 만한 내용만 전체 실험을 같이하고, 나머지는 수행평가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업 준비에 매번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만큼 교과 진도를 미처 다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다수 과학교사가 통합과학을 비롯한 1~2개 교과목을 이미 맡은 상황에서 과학탐구실험까지 담당해 업무가 가중되는 탓이다. 인천의 C고에 재학 중인 김주희(16)양은 "지난 학기에 과학탐구실험 전체 17개 소단원 중 4개까지만 배웠다”며 “선생님 한 분이 맡은 교과가 많다 보니 진도에 맞춰 수업을 준비하기가 어렵다고 하신다”고 했다. 서울의 D고 교사는 “지금처럼 50분 수업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나서 뒷정리를 하기까지도 시간이 빠듯하다”며 “실험 결과가 잘못 나오더라도 그 원인을 학생들이 탐구하고 다시 실험에 도전해보려면 최소 2시간 이상은 편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짧은 시간에 실험을 진행하다 보니 초·중학교에서 과학 이론 위주의 학습에 익숙해져 있는 많은 학생은 실험 수업이나 수행평가를 어려워한다. 현미경 같은 기초 실험도구 사용법을 모르거나 실험결과 보고서 작성을 난감해하는 일도 다반사다. 수원의 칠보고에 재학 중인 신준희(16)양은 “이전까지는 다 나와있는 실험결과를 배우기만 했는데, 모든 실험 과정을 지켜보며 결과를 내고 분석까지 해야 해 다른 과목보다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일부 학교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이론 수업과 개인별 조사로 실험 수업을 대체하고 있다. 실험장비와 재료가 마땅치 않거나 교사의 역량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 부천의 E 고 교사는 “한 학년 전체 실험을 진행하려면 실험 재료를 최소 300개 이상 마련해야 하는데, 예산상 쉽지 않다”며 “전공하지 않은 영역의 실험도 일부 포함돼 있다 보니 지도에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다”고 밝혔다. 학생들도 비슷한 이유로 아쉬움을 전했다. 대전의 F고에 재학 중인 추미나(16)양은 “수업 시간에 하고 싶은 실험을 직접 고를 수 있어 흥미로웠지만, 막상 학교에 갖춰진 실험 재료나 장비가 부족해 실험을 제한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학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해소하는 대안으로 과학실무사 또는 과학전담교사 등의 배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경기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관내 고등학교 474곳에 배치된 과학실무사와 과학전담교사는 273명으로 나타났다. 과학실 10곳 중 4곳은 과학실무사도, 과학전담교사도 없는 셈이다. 학교별로 채용된 과학실무사 중에서도 실험실 관리와 실험 준비와 정리 등 관련 업무를 집중적으로 배정받은 과학실무사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앞으로 과학교육에서 탐구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향후 초·중등 공통교육과정에 적용될 ‘미래세대 과학교육표준’(KSES)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포함됐다. KSES에는 “앞으로의 과학교육은 탐구 수행 중심 교수학습을 통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과학적 소양과 성취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시돼 있다.

    이와 관련해 학생들이 특정 수업 시간 외에도 과학실험을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해 탐구 중심 교육환경을 갖춰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교육부 지정 학생참여형 과학수업 선도학교인 서울 마포고의 황경숙 과학과 교사는 “1년에 네 번, 1학기 중간·기말고사와 2학기 중간·기말고사 직후 일주일을 ‘실험주간’으로 정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교과서 실험을 집중적으로 실시한다”며 “과학탐구실험 과목에서도 최대한 많은 실험을 통해 학생들이 탐구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