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 ‘반쪽짜리’… 초등 저학년 적용 제외해야”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8.30 16:58

-30일 ‘학교폭력예방법 시행 15년, 어떻게 개정해야 할 것인가’ 토론회 열려

  • 30일 오후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 15년, 어떻게 개정해야 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2학기부터 시행되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오푸름 기자
    ▲ 30일 오후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 15년, 어떻게 개정해야 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2학기부터 시행되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오푸름 기자

    “초등학교는 지금 학교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번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도 반쪽짜리 개정안에 불과합니다.”

    한상윤 한국초등교장협의회장은 30일 오후 2시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 15년, 어떻게 개정해야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번 토론회는 신경민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과 한국초등교장협의회, 서울시초등학교교장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교육전문가와 학부모 등은 이번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의 성과를 평가하고,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교폭력예방법 적용 문제를 논의했다.

    앞서 지난 27일 교육부가 발표한 올해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4학년 이상) 피해 응답률은 3.6%로 전체 학교급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최근 들어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초등 저학년 학교폭력 소송 증가… “중·고등학생과 같은 적용 무리”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은 2학기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된다. 가벼운 학교폭력이나 피해 학생과 보호자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원회) 개최를 원하지 않을 경우, 학교가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동안 학교가 설치·운영했던 자치위원회의 기능은 내년 3월부터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된다. 한 회장은 “현재 초등학교에서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와 학부모들 간 분쟁으로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다”며 “자치위원회의 기능을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할 예정이지만, 학교가 사안 이관에 필요한 조건 4가지를 모두 충족하는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초등학교 저학년을 학교폭력예방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최근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한 소송은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의 경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학교폭력 관련 소송 91건 중 16건이 초등학교에서 제기됐다. 교사 출신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인 전수민 법무법인 현재 변호사는 “최근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소송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장난, 가벼운 다툼 등 일상적인 행위가 어른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학교폭력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등학생을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교폭력법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이어 “법원은 최근 초등학교 저학년의 가벼운 다툼은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학교의 규칙을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저학년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자인 이금녀 대구 관천초 교장은 “초등학교 저학년은 교육보다 보육의 개념이 더욱 크게 작용하는 시기”라며 “중·고등학교와 같게 법 적용을 하는 건 상당히 무리가 있다”고 했다. 학부모 대표로 참석한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초등 저학년은 조치가 아닌 교육이 필요한 대상”이라며 “우선 초등 3학년 이하 학생을 학교폭력예방법 대상에서 제외하고, 점차 전체 초등학생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학교폭력예방법의 적용대상에서 저학년을 제외하기보다 저학년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인수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연구 결과,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의 학교폭력 유형은 중학년 이상의 학생과 큰 차이는 없었고, 피해와 가해학생도 전형적인 패턴을 보였다”며 “초등학교 중·고학년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장난과 괴롭힘의 경계에 있는 행위에 선제로 개입하면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폭력 개념 재정립·사안 조사 단계서 외부전문가 개입 요구도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에 명시된 학교폭력의 개념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학교폭력예방법 제2조 제1호는 학교폭력을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학교폭력이 교육활동과 관련 없는 사적인 활동이나 아동학대와 가정폭력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되고 있어 학교 현장이 혼란에 빠져 있다고 입을 모았다. 권병진 서울 상도초 교장은 “학교의 관리나 감독, 교육권이 미치지 않는 장소나 상황에서 발생한 폭력을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교폭력의 범위에 포함해 학교와 교육 당국에 책임과 처리를 전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교장 역시 “학교폭력의 정의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으로 단순 우발적인 사안과 가벼운 사안은 ‘교우 간 갈등’으로 규정해 교육적으로 해결하고, 심각한 신체폭력, 집단폭행 등 범죄형 폭력은 강력히 대응하는 식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안 조사 단계부터 외부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전 변호사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자치위원회를 개최하고 사후 처리를 하는 학교의 행정적 부담은 줄었지만, 사안 조사를 하면서 발생하는 민원·갈등·교육력 낭비는 여전하다”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안 조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학교가 학생 지도에 교육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외부에서 사안 조사도 담당하도록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오 교수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마련한 학교폭력 화해·분쟁조정 운영 가이드라인에서도 화해와 분쟁 조정을 학교 교사의 역할로 제시한 이유를 바탕으로 이를 고려해봐야 한다”며 “사안 조사는 폭력을 교육적으로 처리할 때 교육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