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캐슬’에 허탈한 학부모 “학종 폐지하라”
조선에듀 교육팀
기사입력 2019.08.2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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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DB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자녀의 대학 입시 관련 논란이 커지면서 학부모들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회 고위층의 입시실태를 다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빗대어 ‘조국캐슬’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학부모들은 조 후보자 자녀 논란의 진실을 규명하고 문제의 발단이 된 학생부종합전형(학종·구 입학사정관전형)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원에서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키우는 박수진(52)씨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며 “학종을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재능 있는 학생을 발굴해 기회를 주는 학종의 취지에 공감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득권층이 자녀의 입시를 위해 인맥을 동원해 서 도움을 준 것을 관리감독하지 못하는 제도라면 폐지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조 후보자의 장녀가 부모의 도움을 받아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에 쉽게 진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 후보자의 장녀 조모(28)씨는 한영외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8년 단국대 의대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간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그해 12월 영어논문 제1저자로 이름이 올랐다. 이 논문은 2009년 3월 발간된 대한병리학회지에도 게재됐다. 당시 인턴십을 진행한 장영표 단국대 의과대학 교수의 자녀도 조씨의 한영외고 유학반 동급생이다. 장 교수는 “부인과 조 후보자의 부인이 학부모모임을 통해 알게 돼인턴십을 진행한 것”이라고 전했다.

    조씨는 이 논문을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진학 당시 자기소개서에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가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에 입학한 세계선도인재전형은 당시 입학사정관전형의 하나로, 자기소개서와 비교과를 포함한 생활기록부, 학업외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상장과 증명서 등을 심사하는 수시모집 전형이다. 1단계에서 어학 40%, 학생부 60%를 반영해 학생을 선발하고, 2단계에서 면접을 실시해 1단계 성적과 합산해 최종 선발자를 가린다. 면접 반영 비율은 30%다. 다만 조 후보자 측은 입시 과정에서 논문을 언급하지 않았다며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학부모들은 이 과정에서 객관적인 실력을 검증할 절차가 없었다는 데 분노하고 있다. 조씨가 입학한 세계선도인재전형은 수능 최저학력기준도 없는 전형이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수시모집에 합격한 뒤에도 수능시험의 종합 등급에 따라 당락을 결정하는 제도다. 사실상 학생이 제출한 서류와 다양한 활동, 그리고 입학사정관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최근 학종 역시 제대로된 시험을 치르지 않고 각종 교내외 활동으로 입시 당락이 결정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서울 한 고등학교 교사는 “고가 학생부 컨설팅이 화제가 됐을 정도로 합격에 유리한 학생부를 만들기 위한 사교육이 판을 치고 있다”며 “학연이나 지연 등 학부모의 배경을 등에 엎고 교내외 경험을 쌓거나 활동 실적을 내는 방식이 많아 서민 학부모의 박탈감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 때 조씨처럼 고등학생이 대학 연구에 참여해 논문을 쓰는 R&E(Research & Education) 활동이 학종에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관련 사교육도 늘었다. 교육부는 논문 사교육이 커진다는 지적에 따라 2014학년도 입시부터 논문 실적을 학생부에 기재할 수 없도록 했다. 지난해 치른 2019학년도 입시에서는 자기소개서에도 논문 실적을 기재할 수 없도록 강화했다. 이어 지난 5월 실태조사를 벌여 2007년부터 10여년간 5개 대학에서 255명의 교수가 논문 410건에 자녀를 포함한 미성년자를 공저자로 기재한 사실을 적발했다. 그러나 조씨는 논문에 소속을 한영외고 학생이 아닌 해당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기재해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R&E 활동이 성행하고 있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학생부에 논문 대신 보고서나 심층연구 등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해 연구활동 참여나 논문 실적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외활동을 포함하는 것도 금지돼 있지만 교과활동과 연계한 봉사활동 경험을 적는 방식으로 연구활동을 드러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번 조 후보자 장녀의 논란이 학종에 대한 학부모의 반발로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올해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킨 최영미(서울 동작구·가명·46)씨는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최씨는 “이번 논란은 그야말로 스카이캐슬을 재현한 것”이라며 “조 후보자의 자녀가 고려대에 입학한 과정이 투명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종은 입시에 대한 정보가 많고 학부모가 대리로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만 갈 수 있는 전형이라는 생각에 박탈감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키우는 김모(44)씨는 “우리 딸은 하루 3~4시간밖에 못 자면서 대입을 위해 스펙을 쌓고 있는데 조 후보자의 딸은 아버지 덕에 인턴 활동에 논문 저자 등록까지 했다니 씁쓸하다”며 “이제는 부모의 배경이 하나의 스펙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