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 자사고 10곳 일반고 전환…법적 공방 불가피
이재·하지수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8.02 14:56

-교육부, 2일 자사고 지정 취소 동의 발표
-자사고교장연합회 등 법적 대응 나설 계획

  • 지난 7월 자사고 지정이 취소된 부산 해운대고 학부모들이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연 모습./ 조선일보 DB
    ▲ 지난 7월 자사고 지정이 취소된 부산 해운대고 학부모들이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연 모습./ 조선일보 DB
    극적인 기사회생은 없었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인 서울 경문고·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 등 9곳과 부산 해운대고의 일반고 전환이 최종 확정됐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이 같은 내용을 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발표했다. 이로써 올해 운영성과(재지정) 평가 대상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결정이 마무리됐다.

    교육부는 전날 ‘특수목적고 등 지정위원회’를 열고 평가지표 내용의 적법성, 평가의 적정성 등을 면밀히 따져본 뒤 이들 학교에 대한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에 동의할지를 심의했다. 경문고를 제외한 9곳이 각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에서 낙제점(70점 이하)을 받아 자사고 지정에 탈락했기 때문이다. 경문고의 경우 학생 충원율 저하, 재정 부담 등을 겪는다며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했다.

    구체적으로 검토 결과를 살펴보면 서울 내 자사고 측은 평가계획을 사전에 안내하지 않아 학교가 평가지표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반발하나 교육부는 “대부분의 지표가 2014년 평가지표와 유사하며 자사고 지정 요건과 관련돼 학교 측에서 충분히 예측 가능하므로 적법하다”고 결론지었다. 또 해당 학교들에 대해 건학 이념, 지정 취지를 반영한 특성화 교육프로그램 운영과 교육과정의 다양성 확보 노력 등이 부족하다는 서울시교육청의 평가 역시 적정하다고 봤다.

    부산시교육청의 해운대고 자사고 지정 취소와 관련해서는 “해운대고 역시 평가계획을 사전에 안내하지 않은 게 법률불소급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하나 법률불소급 원칙은 적법하게 행한 행위에 대해 사후에 소급해 책임을 지우는 입법을 금지한다는 원칙으로 행정 행위인 자사고 성과 평가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평가 내용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2014년 평가 당시 부산시교육청이 해운대고에 ‘법인전입금(법인이 사립학교 운영에 투자하거나 지원하는 금액) 납부’ ‘정규교원 비율 확대’ 등을 개선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에 대한 해운대고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는  “2015~2016년 해운대고는 법인전입금을 2년간 미납했고 기간제 교원 수도 정규교원 수보다 많았다”고 설명했다.

    박 차관은 “교육부는 시·도교육청별 평가 내용과 절차 등이 법령에 위배되거나, 부당한 결론에 이르지 않도록 공정하고 엄정하게 검토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하는 학교의 기존 재학생은 자사고 학생 신분과 입학 당시 계획된 교육과정 등이 그대로 보장된다”면서 “교육부는 일반고로 전환되는 자사고에 3년간 10억 원을 지원하는 식으로 시‧도교육청과 함께 다양한 행·재정 지원으로 학교 혼란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의 결정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시교육청은 “관련 법령에 따라 운영성과 평가계획 수립부터 시행, 결과 통보, 청문, 교육부 동의 신청에 이르기까지 적법하고 공정한 기준에 맞춰 실시했다”며 “이러한 내용을 교육부가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고 했다.

    반면 서울 자사고 교장들로 이뤄진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는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철경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장(대광고 교장)은 “애초에 재지정 평가를 통과하기 어렵도록 잣대를 엄격하게 설정했다”며 법적인 대응을 예고했다. 자사고 8곳의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 측은 “교육부 결정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거친 뒤 자사고 등과 논의해 대응 방침을 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교육 관련 단체의 평가는 엇갈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는 교육부가 교육감의 재량권 남용에 면죄부를 준 결정이라고 비판하고, 교육제도 법정주의를 확립해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교육감이 평가를 하고, 교육부가 동의를 하는 절차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관련 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시행령으로 정한 자사고의 운영과 평가에 대한 규정을 초중등교육법으로 격상해 교육의 법적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은 당연한 결정이라는 반응이다. 김은정 사걱세 정책대안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평가에 절차상 문제나 위법성이 없고 낮은 점수가 나온 교육과정 운영이나 선행학습 금지 등은 자사고의 지정 목적 달성의 핵심지표이기 때문에 일반고 전환은 타당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평가지표가 늦게 공개됐고 내용도 변해 신뢰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분석해보면 전혀 새로운 지표가 생긴 게 아니라 배점이 상향 혹은 하향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앞으로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올해 경험한 것처럼 평가를 통한 자사고 폐지는 사회적 혼란만 야기한다”며 “자사고 폐지는 국정과제와 공약 등으로 대중의 합의를 이룬 사항이기 때문에 평가가 아닌 법적 개정을 통해 고교체제를 개편하는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재지정 평가 결과는 향후 자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하나고처럼 재지정 평가에서 생존한 학교들의 지원율이 소폭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자사고의 지위가 불안한 상황에서는 인기가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평가팀장은 “그동안 충원율이 낮거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자사고들이 재지정 평가 결과를 보고 자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는 사례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앞서 지난달 26일 교육부는 경기 안산동산고와 전북 군산 중앙고의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에 동의했다. 전주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에는 부동의했다. 이에 전북 교육청은 법적 대응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정 취소된 안산동산고의 문순용 교감도 “학교 차원에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며 “교육청으로부터 최종 확정 공문을 받으면 바로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