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 조기 대처로 읽기·쓰기 어려움 극복 가능해”
하지수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7.29 10:57

-읽기쓰기클리니컬센터장 양민화 국민대 교육학과 교수

  • 지난 23일 국민대 읽기쓰기클리니컬센터에서 만난 양민화 교수. 그의 앞에는 난독증으로 읽기,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개발한 교구들이 놓여 있다. 양 교수가 이끄는 읽기쓰기클리니컬센터는 국내 대학 중 유일한 난독증 교육연구기관이다./ 장은주 객원기자
    ▲ 지난 23일 국민대 읽기쓰기클리니컬센터에서 만난 양민화 교수. 그의 앞에는 난독증으로 읽기,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개발한 교구들이 놓여 있다. 양 교수가 이끄는 읽기쓰기클리니컬센터는 국내 대학 중 유일한 난독증 교육연구기관이다./ 장은주 객원기자
    “여기서 ‘자’처럼 ‘아’ 소리가 들어간 단어를 찾아볼까요?”
    “음…. ‘나’와 ‘나무’요!”

    지난 23일 오전 국민대학교 읽기쓰기클리니컬센터(ERiD). 강의실 문밖으로 수업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난독증을 겪는 어린이들이 각각 네 개의 방에서 교사에게 일대일 수업을 받고 있었다. 이곳은 국내 대학에 설립된 유일한 난독증 교육연구기관으로 여름방학을 맞아 한글 읽기, 쓰기 학습이 더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맞춤형 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요즘 학부모는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다 언어 발달이 더디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난독증 검사를 받게 해요. 과거와 달리 난독증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높아지면서 증상을 조기에 발견하고 극복하는 일이 늘었어요.” 읽기쓰기클리니컬센터장인 양민화(44) 국민대 교육학과 교수가 말했다.

    ◇글자 순서 뒤섞어 적는다면 난독증 의심해봐야

    난독증은 듣고 말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단어 해독과 철자(자음과 모음을 맞춰 음절 단위의 글자를 만드는 일) 능력이 부족해 학업적 어려움을 겪는 학습장애의 한 유형이다. 2016년 읽기 학습 부진 학생이 없는 학교를 제외한 전국 5641개 초등학교서 ‘난독증 선별 검사’를 실시한 결과 난독증으로 의심, 추정되는 학생은 2만3491명에 달했다. 중·고교생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할 경우 난독증인 학생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난독증의 근본적인 원인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으나 뇌영상연구와 인지과학 연구를 통해 이들이 문자를 읽고 쓰는 데 필요한 뇌인지 기능이 선천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천적 난독증이 아니더라도 어릴 적부터 음운(말의 뜻을 구별해 주는 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 인식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 후천적 난독 증상을 보이는 사례도 있다. 특히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가운데 이런 경우가 많다.

    양 교수는 “난독증은 결코 지능이 낮아 생기는 병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천재 과학자’로 불리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파블로 피카소 등도 난독증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난독증인 학생은 지능이 낮거나 노력을 하지 않는 아이로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곤 하죠.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 내용이 어려워지면 문제는 더 굳어져요. 나중에는 교우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느낄 수 있어요.”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학령기 이전에 난독증인지 확인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좋다. 꾸준히 교육을 펼치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안에 난독증으로 인한 읽기, 쓰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서다.

    부모나 교사가 관찰할 수 있는 난독증 징후로는 소리 나는 대로 철자하기를 어려워하거나 글자의 순서를 뒤섞어 쓰는 것 등이 있다. 양 교수는 “어떤 단어를 쓰고 읽어보라고 할 때 자꾸만 비슷한 다른 단어를 얘기한다면 이것 역시 난독증을 의심할 만한 단서”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잡아라’라는 글자를 보고 ‘자전거’라고 읽는 식이다.

    “난독증인 아이들은 소릿값대로 읽지 못하니까 단어를 통째로 외워 버려요. 기억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 머릿속에 저장한 단어를 읽고 쓰는 데 사용하죠. 그런데 기억에는 한계가 있어서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힙니다. ‘잡아라’를 ‘자전거’로 읽듯이 말이죠.”

  • 한 유치원생이 읽기쓰기클리니컬센터에서 읽기, 쓰기 능력을 향상해주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이용 중이다. /장은주 객원기자
    ▲ 한 유치원생이 읽기쓰기클리니컬센터에서 읽기, 쓰기 능력을 향상해주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이용 중이다. /장은주 객원기자
    ◇‘철자 패턴 익히기’ ‘글자 만들기’ 등 도움

    양 교수는 부모가 난독증을 겪는 자녀와 가정에서 해볼 만한 활동도 소개했다. ‘글자 만들기’가 대표적이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글자를 만들고 이를 이루는 낱자를 각각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주는 활동이다. 이때 아무 의미 없는 단어들을 새롭게 만들어봐도 좋다. ‘같은 소리가 나는 단어 찾기’와 ‘철자 패턴 익히기’ 놀이도 유익하다. ‘같은 소리가 나는 단어 찾기’는 ‘개’처럼 ‘애’ 소리가 들어간 단어를 함께 찾아보는 식으로 진행한다. ‘철자 패턴 익히기’는 ‘가지’와 ‘바지’, ‘강’과 ‘방’과 같은 단어 사이의 공통점을 알려주면서 자음과 모음을 맞춰 글자 만드는 능력을 길러준다.

    또 양 교수는 “부모가 가정에서 고급 어휘를 자주 사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엄마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독서를 하면서 어휘력을 키워요. 반면 난독증 아이들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니 어휘 수준이 유아기에 머물러요. 부모가 수준 높은 단어를 쓰면서 자녀에게 알려줘야 해요. 문화 체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녀가 고급 어휘나 정보에 노출되는 기회도 넓혀주세요.”

    최근 공교육 차원에서 난독증 학생의 읽기, 쓰기 능력 향상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 학생에 대한 기초학력 보장이 학교의 기본 책무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맞춰 경기도와 인천 등 각 시도교육청은 난독증 학생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양 교수는 “이번 기회로 학교에서 난독 증상을 예방, 해결해주지 못해 학생과 학부모가 민간 시장을 따로 찾아봐야 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난독증인 학생들이 좌절하기보다는 상황을 인정하고 극복해나갔으면 좋겠어요. 난독증은 인생을 사는데 하나의 장애물이지만,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