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 ‘자사고 폐지’ 될까…촉각 곤두세운 교육계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7.19 10:28

-내년 평가 대상 학교…“일방적 평가 걱정”
-전문가 “수월성 교육에 대한 정부 방침 결정해야”

  • 지난 17일 전주 상산고 학부모들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지정 취소 부동의를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 DB
    ▲ 지난 17일 전주 상산고 학부모들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지정 취소 부동의를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 DB

    올해 재지정 평가에서 지정 취소 결과를 받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최종 운명이 이달 말 차례로 결정된다.

    교육부는 오는 25일 특목고 등 지정위원회를 열어 전북 상산고와 군산중앙고, 경기 안산동산고의 지정 취소 동의 여부를 심의한다. 내주부터 이어질 교육부의 지정 취소 동의 여부 발표를 앞두고 교육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종 결정은 교육부 손에…시행령 개정 논의 주목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 대상 24개교 중 11개교가 지정 취소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가장 큰 논란이 일고 있는 곳은 전주 상산고다. 전라북도교육청이 다른 교육청의 기준보다 높은 80점을 적용했단 이유에서다. 상산고는 0.39점이 모자란 79.61점을 받았다. 상산고 측은 지정 취소가 확정되면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 등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까지 나서고 있다. 여야 의원 151명은 지난 18일 ‘상산고 자사고 지정 취소 부동의 요구서’를 교육부에 전달했다.

    교육부의 동의 절차를 앞두고 자사고 지정 취소를 둘러싼 교육계 안팎의 갈등도 점차 심화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 진보 성향 교육단체는 정부 공약에 따른 자사고 전면 폐지를 외치는 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등 보수 성향 교육단체는 정치 이념에 따른 자사고 재지정 취소를 규탄하고 있다.

    11개 자사고의 최종 운명이 결정되고 나서도 교육현장의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올해보다 더욱 많은 학교가 내년 재지정 평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평가 대상에는 자사고를 비롯해 외고, 국제고 등 특목고도 포함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재지정 평가를 받는 학교는 자사고 16곳, 외고 30곳, 국제고 6곳 등이다.

    이들 학교 중 최근 자사고 폐지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자발적인 의사를 밝힌 곳은 경문고(서울), 경일여고(대구), 군산중앙고·남성고(전북) 등 총 4개교다. 이들 학교는 학생 충원의 어려움과 재정적 부담을 그 이유로 들었다.

    아직 일반고 전환 의사를 밝히지 않은 학교들은 대체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일부 학교는 예상되는 평가 결과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A고 관계자는 “우선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하는 방향으로 내년도 평가를 준비하고 있다”며 “5년 전 평가에 비해 뚜렷한 원칙 없이 일방적으로 점수를 올려 평가를 진행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올해 재지정 평가에서 살아남은 학교도 교육부의 결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사고 폐지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7일 자사고와 일반고 종합 지원 계획 발표를 통해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자사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시행령에서 자사고 근거 조항을 삭제해 일반고로 일괄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은 또 “만일 법령 개정 의지가 없다면 자사고와 외고의 폐지 여부에 대한 국민 공론화를 진행하자”고 덧붙였다.

    이러한 목소리는 교육부의 동의 절차 이후 전국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최진욱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대변인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은 교육부 동의 절차 이후에 정비돼야 할 부분”이라며 “교육부가 뜻을 받아들이고 향후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뚜렷한 대책 없이 정책 추진…대안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자사고 지정 취소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점을 들어 정책 추진 절차부터 꼬였다고 지적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는 자사고 지정 취소 문제를 우선할 게 아니라 일반고 대책을 비롯한 고교체제 개편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먼저 제시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하는 학교에 대한 세부 지원책을 내놓은 곳은 서울시교육청뿐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에 교육부가 3년간 지원하는 10억원을 비롯해 5년간 2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희망학교를 대상으로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교과교실제, 교과중점학교를 우선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마저도 교육계 안팎에선 기존의 정책 되풀이에 그쳤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처럼 정부가 뚜렷한 대책 없이 고교체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학교 서열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평가 이후 재지정이 확정된 자사고는 더욱 입학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특히 이번 평가에서 지정 취소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지난 10여년간 대입 실적과 운영 노하우 등을 바탕으로 지역 내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일반고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열이 뜨거운 강남 8학군이 다시 떠오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앞서 지난달 말 공개된 국회 입법조사처의 ‘자사고 정책의 쟁점 및 개선과제’ 보고서는 현행 고교평준화제도에서 우수 학생들이 몰리는 자사고를 일괄적으로 전환하면, 강남 8학군에서 입시 성적이 뛰어난 일반고들이 자사고의 역할을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교육부는 “지난 10년간 자사고 정책과 무관하게 강남 8학군 선호현상은 있었다”면서도 “서울에서 강남 8학군에 배정되는 비율은 낮다. 대학 입시에서 수시가 확대되고 고교 내신 상대평가가 이뤄지는 점을 고려해 경쟁이 치열한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정부가 향후 수월성 교육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안선회 중부대 교육학과 교수는 “앞으로도 전문적 인재를 양성하는 수월성 교육은 정부 차원에서 비중 있게 추진해야 할 사안이므로 분명한 방침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우리 사회에 맞는 수월성 교육에 대한 비전과 로드맵을 구체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의견수렴과 시뮬레이션을 거치며 교육현장의 혼란을 줄여나가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