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듀 오피니언] 자사고 폐지, 절차가 정당성이다
이재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7.11 10:31
  • 교육당국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가 한창이다. 지난달 전라북도교육청의 전주 상산고등학교에 대한 운영성과(재지정) 평가 결과 발표를 시작으로 24개 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 결과가 속속 발표됐다. 9일 서울시교육청이 권내 13개 자사고 가운데 8개 자사고의 지정을 취소한다고 밝히면서 24개 자사고 중 11개 자사고가 지정 취소 위기에 몰렸다.

    교육 형평성 관점에서 보면 자사고 운영이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우선 연간 약 7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은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구에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에 충분한 액수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는 체제는 교육적으로 옳지 않다. 자사고가 사회통합전형을 설치했지만, 정작 저소득층은 학비에 대한 부담으로 지원을 꺼려 미달사태가 벌어진 것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자사고가 도입 취지와 다르게 운영된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교육을 한다는 목적은 엷어지고 입시에 파묻혀 일반고와의 차별성을 잃어버렸다. 물론 전적으로 자사고 탓을 하긴 어렵다. 한 자사고 교장의 말이다. “개교 직후 다양한 교육을 장려하고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했는데 입시성적이 좋지 않자 학부모의 반발이 커져 결국 대입에 몰두하는 교육으로 전환했다.”

    물론 이런 대입열풍의 주범으로 자사고를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고등학교 교육, 나아가 국내 교육 전반의 문제다. 어쩌면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사회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일부 교육감이 혁신학교를 도입해 일반고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와 자사고의 교육실험이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앞으로 이런 관점에서 교육을 혁신해야 할 교육당국이 지정 취소를 목적으로 절차적 정당성마저 훼손해가며 자사고 폐지를 강행하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 지난 10여년간 자사고가 성공하지 못해 폐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부와 법을 만드는 국회가 책임 있게 안고 가야 할 일이다. 지금처럼 평가 시점을 코앞에 두고 평가지표를 바꾸고,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지정을 유지할 수 있는 평가의 기준 점수를 상향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한 전북교육청은 교육부의 권고를 무시한 채 기준 점수를 상향해 논란을 자초했다. 이 과정에서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일반고 두어곳을 평가했더니 70점을 손쉽게 넘겨 80점으로 상향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통렬한 반박은 야당도 아닌 여당 교육위원에게서 나왔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정 기간과 대상을 정해 평가한 뒤 결과를 분석해 제시한 점수가 아니라 단순히 불시에 일반고를 점검했더니 자사고보다 나았다는 게 합리적인 근거냐”고 면박을 줬다.

    지정 취소 이후도 마찬가지다. 부산시교육청은 평가 결과 지정 취소에 해당한 점수를 받은 부산 해운대고에 어떤 점수내역도 공개하지 않았다. 6개 영역도, 12개 항목도, 31개 세부지표도 전혀 알 수 없었다. 해운대고의 운영 실패를 감안하더라도 점수는 알아야 묻고 답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이런 질문에 대한 부산교육청의 답변도 황당한 수준이다. “언론을 통해, 다른 경로로 이미 점수가 상당히 공개된 것으로 안다.” 

    서울교육청도 깜깜이 평가로 일관했단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민감한 평가였던 만큼 평가기준 설정과 심의과정, 평가위원 선정 기준 등 평가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어야 옳았다. 평가위원의 신상은 차후에 논의하더라도, 평가 기준의 변동과 평가의 중점요소조차 모른 채 평가에 임하는 것은 부당했다. 평가의 기본요소를 공개하지 않다 보니 각종 낭설과 억측이 난무해 불안감을 키운 것도 이번 평가의 문제로 지적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평가는 늦은 시점에 평가지표를 바꾸고, 재량권이란 이름으로 기준 점수를 비합리적으로 끌어올린 평가다. 게다가 제도 운용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청문 절차조차 졸속으로 치러지고 있다. 자사고에 대한 평가와 여론이 박할지라도 이런 방식으로 제도를 오용해선 곤란하다. 당장 내년으로 예정된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에 대한 평가에서 이런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교육에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을 내렸다면 설득과 공론화를 통해 진행했어야 한다. 지금처럼 취지를 무시하고, 절차를 왜곡해 일방적인 결론을 향해 폭주해선 안 된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시대는 지났다. 절차가 곧 정당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