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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대학의 사회와 산업에 대한 공헌, 그리고 창업과 학생의 윤리적 교육에 대한 고민을 평가하는 대학랭킹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때입니다.”
조동성 인천대학교 총장이 3~5일 인천대 송도캠퍼스에서 열린 2회 한자대학동맹 콘퍼런스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인천대와 한자대학동맹을 비롯한 전 세계 60여개 대학은 이날 새로운 대학랭킹 시스템 ‘WURI’(World’s Universities with Real Impact)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조 총장은 “WURI는 대학의 혁신을 위한 노력을 반영할 수 있도록 사례 위주의 정성평가를 진행한다”며 “한 대학의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을 평가에 참여한 대학의 총장이 직접 평가하고 이에 대한 경쟁력 순위를 공표해 다른 대학들이 자극을 받고 혁신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 사회적 공헌·창업·윤리적 교육 등 혁신사례 정성평가
WURI는 내년 3월 본격적인 평가를 시작한다. 평가지표는 각 대학이 직접 제출한 혁신사례다. WURI의 뼈대를 설계한 문휘창 서울대 명예교수는 “구체적으로 사회와 산업이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사회적 공헌과 스타트업 등 창업, 윤리적 교육 등을 평가 분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야에 해당하는 혁신사례를 WURI에 보내면, 참여한 대학의 총장들이 혁신성과 확산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검토해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WURI는 지표 중심의 평가를 벗어나 정성평가를 적극 도입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한자대학동맹과 인천대 등 평가에 참여한 대학이 기존 지표에 대한 평가를 병행하면서 대학의 혁신 사례를 평가에 참여한 다른 대학의 총장에게 제출한다. 각 대학의 총장은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점수를 매긴다. 이때 부여하는 점수가 사회적 공헌과 창업, 윤리적 교육 등이다. 이렇게 정성평가를 마치면, 3개 분야에 대해 각기 다른 랭킹을 매긴다. 조 총장은 “3개의 분야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를 취합해 순위를 매기면 평가가 왜곡될 수 있어 3개의 각기 다른 순위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문 교수는 WURI가 과거가 아닌 미래가치를 담아내기 위한 변화라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함에 따라 대학이 생존과 변화를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지혜의 생산과 전파 ▲다양한 사회적 수요에 대한 해결책 ▲전통적인 학문적 성과 ▲실제 세상에 대한 공헌 ▲대학이 보유한 자원 ▲자원을 동원하는 방법 ▲환경에 대한 적응 ▲기업가정신 ▲윤리적 교육 등 변화를 담기 위한 시도란 것이다. -
◇ 미네르바스쿨·에콜42 등 새로운 혁신 사례 등장
이러한 도전은 기존의 대학평가가 연구와 논문 위주의 양적 평가에 치우쳐 새로운 대학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나왔다. 실제 이들의 지적처럼 대학교육엔 다양한 혁신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가한 미네르바스쿨이 대표적이다.
2014년 처음 문을 연 미네르바스쿨은 기존 대학의 틀을 바꾼 혁신적인 형태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대학은 시설이라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7개국에 설치한 기숙사밖에 없는 단출한 대학이다. 그러나 인터넷강의를 활용한 교육과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학업을 지정하는 능동적인 교육 형태, 그리고 7개국을 선회하며 학업을 하는 방식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대학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미네르바스쿨을 설립한 벤 넬슨은 “기존 대학은 시설을 유지하고 교수진을 꾸리는 등 고정비용이 많고, 이를 활용한 연구에 치우쳐 정작 학생 교육엔 소홀했다”며 “이런 형태는 학생에게 지식을 전수할 순 있어도 지혜를 심어줄 순 없다”고 비판했다.
대학교육을 혁신하려는 사례는 미네르바스쿨 뿐만 아니다. 프랑스의 에콜42도 새로운 대학혁신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정형화된 대학이 아닌 코딩 창업학교로 불리는 곳으로, 교수 없이 학생들이 실제 기업과 현장에서 발생하는 기술과제를 팀 프로젝트를 통해 해결하는 프랑스 민간 교육기관이다.
그렇지만 이들 대학은 기존의 세계적인 대학랭킹 시스템에선 높은 성과를 거두지 못해왔다. 콘퍼런스에 참가한 헨크 필만 네덜란드 한제대 총장은 “연구력을 측정하는 기존 대학랭킹 시스템도 의미가 있지만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며 “한제대는 22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대학이고, 네덜란드에서 혁신적인 대학으로 꼽히고 있지만, 이런 노력이 랭킹엔 반영이 어려워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제대를 비롯한 한자대학동맹은 2세기가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녔지만,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하는 평가에선 약세를 보여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올해 개교 40주년을 맞은 인천대도 마찬가지다. 한자대학동맹은 12세기~13세기 북해와 발트해 연안의 독일 도시국가들이 통상을 목적으로 결성한 ‘한자동맹’에 속한 대학들의 연대체다. -
◇ ‘학습과 공유’ 통한 대학 간 집단지성 형성이 핵심
WURI는 이런 새로운 대학의 출현과 기존 대학의 혁신사례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게 목표다. 인천대와 한자대학동맹은 새로운 평가를 통해 대학이 혁신사례를 발굴하는 집단지성을 발휘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별 대학의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총장은 “평가의 중점을 혁신성과 확산가능성 등에 둘 계획”이라며 “한 대학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혁신사례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많은 대학으로 확산해 고등교육의 질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는 사례를 발굴하고 이식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물론 과제는 있다. 당장 참여율이 관건이다. WURI가 지속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대학들의 참여가 필수다. 한자대학동맹과 인천대는 내년 3월까지 약 200여개 대학이 평가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평가를 신청한 대학 수는 약 20곳 수준이다. 전 세계 대학에 파문을 일으키기 위해선 좀 더 많은 대학의 자발적 참여가 요구된다.
특히 평가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과제다. 평가 방식과 결과가 의미가 없다면 참여도 없을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 조 총장은 “평가지표와 내용 등을 제대로 구성한다면 다른 대학들의 참여도 자연히 늘어날 것”이라며 “특히 한자대학동맹이라는 대학 연대체와 함께 시작해 일정한 플랫폼을 확보한 만큼 안착을 자신한다”고 전했다.
혁신에 방점 찍은 대학랭킹이 온다 … 인천대·한자대학동맹 개발
-3~5일 열린 2회 한자대학동맹 콘퍼런스서 발표
-대학의 사회적 공헌·창업·윤리적 교육 등 주목
-확산에 비중을 두고 지표 아닌 사례 ‘정성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