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지금] 문·이과 구분없이 과목 선택권 확대됐지만…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6.27 10:01

-고1, 선택과목 예비조사 앞두고 고민 깊어져
-각 학교 운영 교과목 크게 달라…학생 선택권 좁혀
-전문가 “진로 고려해 선택과목 이수·설계해야 유리”

  • 지난달 말,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주최한 ‘고1~2학년 진학지도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2021~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선택과목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오푸름 기자
    ▲ 지난달 말,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주최한 ‘고1~2학년 진학지도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2021~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선택과목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오푸름 기자
    “경영학과에 가고 싶은 고1 학생입니다. 2학년 때 사회·과학 교과에서 3과목을 들어야 하는데, 대학입시에서 어떤 조합이 유리할까요?”

    “고1 아들이 어느 학과에 지원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2학년 때 어떤 과목 위주로 선택하면 좋을지 조언 부탁합니다.”

    최근 고등학교 1학년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문·이과 칸막이 없이 주어지는 ‘선택과목’이 가장 큰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일선 학교에서 2학년 선택과목 예비조사가 진행되면서부터다. 현재 고1, 2학년에 적용된 2015개정교육과정의 핵심은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다. 이들의 과목 선택 범위가 계열을 구분하지 않고 확대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는 2021·2022학년도 대입에서는 이들이 ‘선택과목’을 어떻게 설계하고 이수했는지가 중요한 평가 요소로 떠오를 전망이다.

    ◇진로에 따른 선택과목 이수 중요성 大

    지난달 말,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주최로 열린 ‘고1, 2학년 진학지도 설명회’에서 발제를 맡은 교사들은 “2021·2022학년도 수시모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에서 학생의 진로에 따른 선택과목 이수상황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반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서울 주요대학 등은 학생들의 합리적인 과목 선택을 돕기 위해 희망 계열별 이수 권장 과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속속 내놓고 있다. 학생의 진로 결정 여부에 따라 선택과목을 고르는 구체적인 기준은 달라진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발간한 ‘선택과목 안내서’에 따르면, 자연계열 분야로 진로를 정한 학생은 2학년 때 가급적 과학 교과를 중심으로 이수하는 게 바람직하다. 인문·사회계열 분야의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은 2학년 때 과학Ⅰ 과목에서 1~2과목을 선택하는 게 좋다. 많은 학교에서 3학년 과정에 과학Ⅱ 등 진로선택 과목을 편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고1 학생들은 과목 선택에 앞서 진로 설정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학생이라면 2학년 때 과학Ⅰ 과목 중 1~2과목을 선택하면 도움이 된다. 심화 교과가 주로 개설되는 3학년에 올라가서도 계열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이후 진로를 구체화하면 희망 계열에 따라 과학Ⅱ 과목을 수강하거나, 사회 교과 진로선택 과목을 들으면 된다.

    특히 현 고1부터 진로선택과목의 등급 대신 성취도만 대입 전형자료로 제공해 상대적으로 과목 선택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앞서 과목 난이도와 수강 인원 등을 바탕으로 내신 성적 유불리를 따졌던 지난해와 달리 선택 동향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이유다. 경기 고양의 한 고교 교무부장은 “지난해와 달리 진로선택과목에 성취평가제가 도입되기 때문에 올해 1학년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선택하는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시교육청 제공
    ▲ /서울시교육청 제공
    ◇학교별 교육과정 편차 여전…“지역 단위 교육과정 활성화해야”

    문제는 학교별로 교육여건이 달라 발생하는 교육과정의 차이로 인해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교과교실제를 운영하는 서울의 A고 교무부장은 “2015 개정교육과정 도입 이후 사회·과학 교과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수업을 두루 수강하는 추세”라며 “최근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예비조사에서도 과목 선택 결과가 다양하게 나타나 추가 조사를 거쳐 교육과정을 편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문·이과 칸막이가 학생의 선택권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 곳도 많다. 경기 지역 B고의 경우, 기존처럼 문과와 이과를 나눠 교육과정을 편성할 계획이다. 학부모 김모씨는 “문·이과 통합교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학교에선 반을 나눠 선택과목을 조사하더라”며 “어떤 식으로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고 털어놨다.

    앞서 현 고2의 선택과목 편성 현황을 살핀 연구자료에서도 학생들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교육부 용역보고서인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선택과목 편성운영 현황 조사’에 따르면, 경기 지역 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을 편성하는 유형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건 ‘모든 영역별 과목 지정형’(22.4%)으로 나타났다. 새 교육과정이 도입됐음에도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이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단위 학교도 난감한 상황이다.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선택할수록 교사 수급이나 시설 등의 한계로 인해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고교 교사는 “과목 선택권이 확대되고 나서 학생들의 수업참여도가 좋아져 교사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면서도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해 여러 과목을 개설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를 교육과정 편성에 반영하면 교사 한명당 한 학기에 최소 두세 과목을 동시에 맡는 경우도 생긴다. 이 경우, 교재 연구와 시험 출제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 현 고 1, 2가 모두 선택과목을 이수하는 내년부터는 단위학교에 개설되는 과목의 가짓수가 늘어 교사의 업무량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지역 단위 교육과정 운영을 활성화해 학생들의 실질적인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전망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연합형 ▲거점형 ▲온라인형 등 학교 간 협력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경기도교육청은 2~3개의 인근 학교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개설해 운영하는 학교 간 공동교육과정인 ‘클러스터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제시한 보고서의 연구진은 “학생의 실질적인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현재 소수 인원만 수강하는 클러스터 교육과정을 학군 수준으로 확대·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현 전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장(경상대 입학사정관팀장)은 “2022학년도 대입을 중요한 변화의 기점으로 보고 있다”며 “학교별로 교육과정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학종을 비롯한 대학 입학전형 평가에서도 이를 명확하게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