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희 서울대 AI위원장 “서울대판 실리콘밸리 만들 것”
최예지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6.14 14:55

- AI 경쟁력 높이려면 ‘생태계’ 조성해야
- 현행 학사제도는 창의적 시도 억눌러
- 새로운 시대 인재상 사회적 논의 필요

  • 최양희 서울대 AI위원장(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향후 서울대 부근에 조성할 AI밸리는 국내 다른 대학, 연구기관, 스타트업, 대기업을 비롯해 해외 기업과 대학까지 모인 일종의 ‘실리콘밸리’가 될 것”이라며 “AI 이해관계자들이 만날 수 있는 일종의 ‘광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이경호 기자
    ▲ 최양희 서울대 AI위원장(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향후 서울대 부근에 조성할 AI밸리는 국내 다른 대학, 연구기관, 스타트업, 대기업을 비롯해 해외 기업과 대학까지 모인 일종의 ‘실리콘밸리’가 될 것”이라며 “AI 이해관계자들이 만날 수 있는 일종의 ‘광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이경호 기자
    “AI(인공지능)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학을 운영해야 합니다.”

    지난달 서울대학교는 AI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는 AI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등 서울대의 관련 사업을 총괄한다. 위원장은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인 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맡았다. 장관 재임 시절에 정보교과를 초·중학교에 필수화하고, 대학에는 소프트웨어 중심대학을 도입한 인물이다. 정보교과로 우리나라는 코딩교육을 의무화했으며, 35개의 소프트웨어 중심대학은 매해 대학별 100명 이상의 소프트웨어 인재를 기르고 있다. 소프트웨어 인재양성의 기반을 닦은 데 이어 서울대를 중심으로 AI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겠다는 최 위원장을 만나봤다.

    ◇ 외부 기업, 연구소 모아 ‘AI 집적단지’ 만든다

    “구글, 페이스북 등이 그러했듯 소규모 스타트업이 급성장해 AI 산업의 주도권을 잡을 겁니다.” 최 위원장은 힘줘 말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대학이라고 봤다. “글로벌 대학이 배출해 온 수많은 스타트업 사이에서 지금의 거대 IT기업이 탄생했습니다. 우리에게 세계적인 IT 기업이 모인 곳으로 알려진 실리콘밸리도 스탠포드 대학 출신 스타트업을 주축으로 형성된 산업 생태계입니다.”

    최 위원장은 스탠포드 대학처럼 서울대가 AI산업의 중심에 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내년 ‘AI밸리’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대 주변 낙성대에 일종의 ‘미니 실리콘밸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AI 관련 이해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교류하는 일종의 ‘광장’을 그리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비롯해 연구기관, 대기업, 국내외 대학 기관이 자리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AI밸리의 문은 서울대 밖으로 열려있다. AI경쟁력을 높이는 데 ‘생태계’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최 위원장은 “AI 경쟁력을 높이려면 도전적인 시도를 뒷받침할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을 지지해줄 투자자가 있어야 하며, 스타트업의 결과물을 산업체가 활용하는 등 스타트업과 산업체 간 선순환 체계가 구축돼야 하는 식이다. 이에 AI밸리에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울 투자·법률·마케팅 지원조직이 입주한다. 산업체와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의 AI조직도 유치할 계획이다.

  • /이경호 기자
    ▲ /이경호 기자
    ◇ 문제는 경직된 학사제도 … ‘언번들링’이 한 방법

    단, 서울대가 변하는 데는 한가지 걸림돌이 있다. 다름아닌 ‘학부 교육’이다. 학부에서부터 혁신적인 시도가 잦아야 창업으로 이어져 AI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 위원장은 “무엇보다 경직된 학사제도가 학생들의 창의적인 시도를 억누른다”고 짚었다.

    “지금의 체제에서는 학생이 자유롭게 수업을 듣기 어렵습니다. 세세하게 규정된 졸업요건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크지 않기 때문이죠. 관심사를 넓히려 복수전공·부전공 과정을 이수하고자 하더라도 이 또한 지나치게 구체적인 조건을 요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학사제도의 요건을 맞춰가며 관심사를 충족하려면, 졸업을 늦출 정도로 시간을 많이 써야 합니다.”

    그는 학사제도를 유연하게 할 방법으로 ‘언번들링(Unbundling)’을 제안했다. 현재 전공 단위로 묶여 있는 교육과정을 수백개의 수업으로 낱낱이 해체한 다음에, 학생이 재조합한 바에 따라 전공으로 인정하는 식이다. 예컨대 자신의 교육과정을 소프트웨어와 교육 분야의 수업으로 구성한 학생이라면 ‘컴퓨터교육’ 전공을 부여한다. 그는 “언번들링이 정착하면 학생의 다양한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수업의 목적에 따라 방식과 기간도 온라인·현장강의·토론형, 8·10·20주와 같이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정보교과, 과학탐구 선택과목으로 지정 논의해야

    한편, 최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AI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서울대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사회 전반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으로는 인간뿐 아니라 기계와 소통하는 능력도 중요해질 것입니다. AI 시대의 인재상이 무엇인지 국가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그 일환으로 과학 과목을 재편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로 나뉜 과학 과목 분류는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며 “시대가 바뀐 만큼 새로 등장한 과학을 과목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정보화 사회에서 새롭게 조망받는 ‘정보과학’이 대표적”이라며 “실제로 세계 각국은 소프트웨어, 컴퓨터 사이언스, 컴퓨팅 사고력 등의 명칭으로 정보과학을 과학 과목으로 인정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초·중학교에서 의무화한 정보교과를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과학탐구 선택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정보교과가 과학 과목이 되기까지는 난망하겠지만, 논의만으로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인재에게 정보과학 역량이 필요한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