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의 학습 원포인트 레슨] 요새 아이들에겐 실제로 공부가 어렵다
기사입력 2019.06.14 09:00
  • 세상은 늘 비슷한 수레바퀴가 반복해서 돌아가는 듯 보여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어느새 변화 발전하고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그런 세상에 노출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신기하던 시절이었는데, 이젠 보편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에 따라 아이들도 자연스레 스마트폰 네이티브로 성장한다. 게임이라고는 고작 오락실의 게임기가 전부이고 성인이 돼서야 비로소 게임다운 게임을 했던 우리 세대에 비하면 요새 아이들은 초등 때부터 화려하고 본격적인 게임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유년기에 컴퓨터 화면이 컬러로 바뀜에 깜짝 놀라고 하드디스크 용량 20메가바이트에 눈물을 흘렸지만 요새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화면은 당연히 터치되는 세상에서 자라난다. 그렇게 환경은 늘 변한다.

    문제는 이런 환경 변화와 무관하게 아이들 공부와 시험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험의 도구가 컴퓨터 베이스로 바뀌고 정보를 숙지하기 보다는 정보를 검색하고 조합해서 나의 새로운 의견이나 창의적 생각을 내는 시험으로 바뀔만도 하건만, 상전벽해와 같은 세상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시험은 약간의 수행평가와 서술형이 가미되었을 뿐 내 어린 시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 공부하는 내용이나 방식을 들여다보면 그 차이가 더욱 없고 심지어 거의 놀라울 만큼 똑같아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좌우지간 현실은 이렇다.

    이런 상황은 사실 버티기를 시작한지 오래되었고, 대대적인 변화 직전에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도대체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를 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2009년 즈음에 아이폰이 도입되어 한국 시장이 크게 변화했듯이 어느 시점엔가 무언가가 들어와서 도저히 하던 대로 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예상해볼 뿐이다.

    그래서 이런 어중간한 과도기에 놓인 청소년들은 최첨단의 환경 아래에서 고전적인 공부와 시험의 압박 속에 참을 인자를 새겨가며 고군분투중이다. 어른으로서 가끔 미안하고 안쓰럽기 그지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 공부의 어려움과 힘듦의 원인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우선 게임과 인터넷 생활을 어려서부터 오랜 시간 노출되다 보니 (게임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당연히 제 나이에 걸맞게 성장해야 할 어휘력이나 문장 독해력이 떨어지고 상식 또한 쌓이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본다. (솔직히 남자아이들은 욕도 많이 쓴다) 어려서부터 사교육을 통해 문제풀이 훈련을 받아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의 똑똑함은 월등하지만 기본적인 청소년으로서 기대되는 수준의 유식함은 보자란 경우가 많다.

    2) 어려서부터 힘들고 어렵고 해야 되는 것보다는, 쉽게 재미있고 하고 싶은 것을 지지와 격려를 받으며 해오다보니, 중고생이 시험을 보려고 하면 출제자의 의도를 간파하기 보다는 그냥 나에게 구미가 당기는 답안에 즉흥적으로 반응한다. 쉽게 말해, 객관식 문제를 푸는데 5번까지 보기도 전에 3번에 유혹적인 내용이 있으면 그냥 3번이라고 쓴다.

    3) 사교육에 많이 노출되다보니 (사교육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너무 많이 받는다는 의미다) 만성적으로 자기 공부시간은 부족하고 학교와 학원의 숙제는 오죽 많은 터라 이를 다 해내려면 필연적으로 숙제를 해치우듯 모든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신중함이나 깊은 사고의 과정보다는 그냥 빨리 많이 대충 공부하는 습관이 누적된다.

    4)어떤 과목을 공부하든 간에 제대로 한 번의 공부를 하기보다는 대강 여러 번 하면 된다는 생각이 많다. 공부를 시키는 콘텐츠나 프로그램들도 살펴보면 정성들여 한번이 아니고 “대략 여러 번” 의 철학이 투영된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 학생들의 것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진하다. “틀려도 괜찮아 또 하면 되”. 이런 생각이 나쁜 건 아닌데 그러다보니 중고등 시험에서 틀린 건 모두 괜찮고 실수로 치부된다. 사실 공부를 제대로 하면 별로 틀릴 문제가 아닌 경우 라든다 다시 풀면 맞추는 경우를 자주 본다.

    5) 게임은 즉각적으로 빠르게 반응해야 생존하고 득템 한다. 그리고 설사 좀 상처를 입어도 치유가 가능하고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공부나 시험은 차분히 생각하고 진지하게 반응해야 한다. 이러한 둘 간의 차이로 인해 시험에서 즉흥적이고 사려 깊지 못한 풀이가 나오고 결국 실수라 간주되는 실력으로 고착된다.

    결국 당분간 시험이 현재의 방식을 고수한다고 가정하고, 중고등 단계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좀 더 진정성 있게 진지하게 한 번의 공부를 제대로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양보다 질을 높이는 주도적 공부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어른들이 스스로의 걱정과 불안과 의존성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자가 치유력과 문제해결력을 믿고 맡겨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만년 85점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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