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 일원화 시동 거나…“한의대 폐지” VS “기존 교육에 의학 접목”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5.16 10:01
  • 최근 정부가 의료일원화를 실현하고자 사회적 공론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상반기 중으로 여러 이해관계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칭) 의료일원화·의료통합을 위한 의료발전위원회(이하 의료발전위원회)’를 구성해 2년의 기한을 두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앞서 지난해 의료일원화를 위한 의·한·정 협의체 합의가 무산된 점을 고려해 사회적 논의 구조를 확장함으로써 반드시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시 합의문 초안에는 오는 2030년 대학 입학생부터 의료와 한방의료의 교육과정과 면허제도를 통합하는 의료일원화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기존 면허자의 통합면허 문제로 협상이 파행됐다. 이에 의료계와 한의계 안팎에서는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 간 교육 통합부터 이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료계 “한의대 폐지 혹은 흡수통합해야”

    하지만 의학교육 측면에서의 통합도 쉽지 않다. 의료계와 한의계의 입장 차가 여전히 뚜렷하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의학교육 일원화의 전제조건으로 ‘한의대 폐지’를 내걸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난달 19일 복지부 장관 앞으로 보낸 공문을 통해 “단일 의학교육제도 도입을 위해 현 한의대를 폐지하고, 의대 교육을 통한 단일 의사 면허자 배출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 측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일원화를 위한 대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무엇보다도 의료계는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해야 일원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고려대 의대 교수)은 “일반 의학은 통계자료 등을 통해 학문적으로 치료 효과를 입증할 수 있지만, 한의학은 상대적으로 학문적인 체계가 덜 갖춰져 있다”며 “의대에서 한의학을 한 부분으로 도입해 함께 교육하고 연구하는 방향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의학이 의학교육의 전문분야 중 하나로 흡수 통합되거나 단계적으로 폐지될 경우, 교육계에선 큰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전국적으로 의대는 37곳(의전원 제외), 한의대는 12곳이 있다. 지난 7일 토론회에서 임기영 의료리더십포럼 회장(아주대 의대 교수)은 “의학교육 일원화가 이뤄지면 의대는 정원을 늘릴 수 있지만, 한의대만 있는 곳은 의대 전환 혹은 폐교 유인책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해당사자들 각각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단, 무엇이 옳은 길인지 국민과 사회에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의계 “기존 한의대에 의학 접목…통합교육 시범사업 운영 필요”

    이와 달리 한의계에서는 기존 한의대를 유지하되 의학을 접목하는 형태로 통합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의대 교육과정의 약 70%가 의대 교육과정과 같기 때문에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에서 요구하는 국제 의학교육 기준을 따라 그 비율을 확대하는 게 올바른 개편 방향이라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한의계가 주장하는 통합교육 방식은 미국의 전통의학을 바탕으로 하는 D.O(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정골의사)제도에 가깝다. 이재동 한국한의과학대학(원)장협의회장(경희대 한의대학장)은 “미국의 D.O 대학에서 학생들은 일반의학과 정골의학(변형된 뼈의 구조를 찾아내 바로잡는 대체의학)을 함께 배우고 일반 의사들과 같이 통합면허를 취득한다”며 “우리나라 한의대의 경우, 이미 의대와 유사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어 이러한 모델로 전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또한 통합교육 시범사업도 병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현재 한의대 교육현장에서는 엑스레이, 방사선, 초음파 등 현대의료기기를 활용한 교육을 진행할 양방 교수들을 섭외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한·양방 통합교육 시범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의료 측면에서 국가적인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와 한의계 안팎에서는 본격적인 의학교육 일원화를 논의하기에 앞서 의료일원화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잇따라 제기돼왔다. 신좌섭 전 한국의대·의전원 전문위원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의료정책포럼 제13호 4권에 실린 ‘의학교육 일원화에 대한 고찰’에서 “의학교육 일원화는 의료일원화의 정책 방향이 어느 방향으로 정리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으로 의학교육 일원화의 명확한 개념을 비롯한 세부 방안은 의료발전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다만, 최근 의료계와 한의계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면서 의료발전위원회 구성에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방 진료에서 앞으로 혈액검사기와 엑스레이를 사용하겠다고 밝히자, 의협이 ‘의료일원화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의료발전위원회의 사회적 논의구조를 확대해 의료일원화를 실현할 계획이다. 실제로 의료계, 한의계, 교육부 등 다양한 단체의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유정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서기관은 “위원회에 참여하는 단체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면서도 “의료일원화 논의에 필요한 기관과 부처가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