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초등

교육 현장에 파고든 '넛지 효과'

김다혜 기자

2019.05.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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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백번 말보다 스스로 깨우치도록… '행동' 이끌어내요

강압 없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더 나은 행동 유도하는 '넛지'

실험 통해서 나쁜 식습관 개선
학교 주변 설치한 '옐로카펫'은
한 번 더 주의하도록 환기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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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바람'이라는 이솝우화를 알고 있나요?

어느 날 해와 바람은 서로 자기 힘이 더 세다며 내기를 했습니다. 마침 길을 지나던 나그네의 외투를 먼저 벗기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정했지요. 바람이 '후~~' 온 힘을 다해 강풍을 일으켰습니다. 센 바람이 불자 나그네는 추위를 느껴 옷깃을 꼭 쥐며 몸을 웅크렸어요. 승자는 따스한 햇볕을 비춰 나그네 스스로 외투를 벗게 한 '해'였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강제성을 띤 지시가 아닌 부드러운 방법으로 원하는 결과를 유도해내는 것을 '넛지 효과'라고 부릅니다. 넛지(Nudge)는 팔꿈치로 다른 사람을 툭 친다는 뜻의 영어 단어예요. 이 개념을 처음 생각해낸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는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어요. 최근엔 다양한 교육 현장에 넛지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설탕 영향 알고 나면 탄산음료 덜 마셔요"

얼마 전 서울 방이초 1학년 학생들은 영양 수업 시간에 특별한 실험을 했어요. 먼저 파인애플·청포도·적포도가 꽂힌 과일 꼬치를 맛본 뒤, 탄산음료에 든 것과 같은 양의 설탕을 녹인 물을 마셨어요. 그런 다음 과일 꼬치를 또 먹어본 어린이들은 무척 놀랐다고 해요. 설탕물을 마시기 전에는 분명 달콤했던 과일이 전혀 달지 않았거든요! 영양 수업을 진행한 백명주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했어요. "설탕의 단맛이 입에 남아 과일 고유의 단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탄산음료에 얼마나 많은 설탕이 들었는지 알 수 있지요. 탄산음료를 먹지 말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실험해보는 것이 나아요. 스스로 설탕을 얼마나 먹는지 깨닫는 것만으로도 덜 먹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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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명주 방이초 선생님의 영양 수업에서는 과일 꼬치를 활용해 설탕의 영향을 알아본다.

백 선생님은 조금 충격적인 고백도 했어요. 당분, 나트륨의 해로움을 가장 잘 아는 백 선생님이 탄산음료와 소시지를 좋아하신다는 거예요. "저도 탄산음료 마시죠. 얼마나 맛있는데요. 그런데 설탕의 악영향을 알고 섭취하는 것과 모르고 섭취하는 건 천지차이예요. 나쁘다는 걸 알면 두 개 먹을 것을 하나만 먹게 되니까요. 해로움을 알려주는 게 무조건 '안 된다'고 막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랍니다."

화내는 학생 혼내지 않고 '쉼터'에 있도록

요즘 제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워하는 어린이가 많습니다. 김소통(가명) 군은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화가 삐죽빼죽 차오르다가 금세 폭발해버렸습니다. 김 군은 분노가 가라앉고 나면 늘 마음이 괴로웠어요. '나는 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 걸까?'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김 군은 혼자 기분을 다스릴 수 있게 됐어요. 화가 날 때마다 교실 뒤편에서 마음에 휴식을 주는 연습을 하며 자신감을 쌓은 덕분입니다. 친구들 사이에 골이 생긴 건 내 감정 때문이 아니라 표현 방법 때문이었다는 점도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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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원남초 진효주 선생님이 교실 뒤편에 만든 '쉼터'는 책 'PDC 학급긍정훈육법'을 활용한 '어린이 감정 회복 공간'이다.

경북 원남초등학교에 있는 쉼터는 이런 학생들을 위해 진효주 선생님이 활용한 방법이에요. 혼자 감정을 다스리고 싶을 때 이용하는 교실 뒤편의 감정 회복 공간이죠. 선생님은 흥분한 학생을 혼내는 대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어요. 학생들은 감정의 방을 어디에 어떻게 설치할 건지도 학급 회의 시간에 정했대요. 진 선생님은 "감정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과정 자체가 어린이들 사이에 '감정을 스스로 다스려야겠다'는 분위기를 형성해줬다"고 했어요.

진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 사이에는 중요한 약속이 있어요. 언제든 주변과 내 의견이 충돌할 때면, 내 의견을 분명히 말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충분히 설명하기로 한 거죠. 그래서 학급 회의에서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 수 있었대요. 평소에 내 마음을 표현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연습을 하는 인성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던 보람이 있네요!

'천천히' 경고 대신 '옐로카펫'

도로교통공단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건널목 주변 길과 벽에 노란색 칠을 한 안전지대(옐로카펫)를 설치했더니 차들이 속도를 줄였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 2일 발표했어요. '천천히'라고 적은 표지판도 해내지 못한 일이죠. 게다가 초등학생 93% 이상이 안전지대 위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고 해요. 따로 경고를 써놓지 않고도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건널목에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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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1호 옐로카펫은 서울 길원초 교차로에 제작됐다.

도로교통공단 통계를 보면 지난해 일어난 어린이 교통사고 총 1만9건 중 1859건은 길을 건너던 중에 일어났어요. 그중 198건은 보도를 걷던 중 발생했죠. 그러니 길을 안전하게 건너는 것은 어린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내기 어려운 일이에요. 길을 걷는 사람과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모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요. 지난 2015년 서울 길원초 앞 횡단보도 주변 길에 국내 첫 옐로카펫을 설치한 국제아동인권센터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옐로카펫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어린이 스스로 참여하도록 해 완성해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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