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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한복판, 스승의 날을 앞둔 김민준(가명·23)씨는 고민이 깊다. 가르치는 아이의 부모님이 선물을 보내겠다고 벌써부터 언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몇번이나 고사했지만, 작은 성의라며 아이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을 막무가내로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학원강사로 일하다 보니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뿐만 아니다. 재학 중인 대학의 전공교수에게 줄 선물도 고민해야 한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비용부담은 줄었다. 다만 비용이 줄어든 덕분에 ‘센스’를 발휘해야 할 부담은 더 커졌다. 교수의 가슴팍에 카네이션만 달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원생 학부모가 보낸 선물을 그대로 교수에게 전달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랬다간 김영란법을 어기기 십상이라 단념했다.
학생이자 선생님. 20대 초반 ‘꿀알바’(급여가 높고 업무가 적은 편안한 아르바이트)를 찾아 보습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김씨의 양면이다. 언론에 오르내릴 만한 갑질을 당한 적은 없지만 종종 대학생이라 무시를 받는 때는 있다고 털어놨다.
◇ 동료 강사 불편한 시선 “대학생이라 미숙”
대학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아르바이트처럼 학원에서 강의를 하는 대학생을 통상 ‘대학생 강사’라고 부른다. 대학생 강사는 최저시급보단 꽤 높은 시급을 받아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대략 시급은 대략 1만원~1만5000원 선에서 형성돼 있다. 수준이 높고 인원이 많은 강의를 맡을 경우엔 2만원을 넘는 시급을 받기도 한다. 김씨가 받는 시급은 1만 2000원이다.
대학생 강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미숙함’이다. 특히 동료 전업 학원강사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학부모 상담을 어려워하고, 시험기간이 되면 연락도 없이 모습을 감추는 경우도 있다. ‘잠수’다. 목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한 7년차 전업강사(33)는 “학부모 상담을 못하거나 실수를 해서 원장이 사과하는 경우도 있다”며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다 보니 사람을 대하는 게 노련하지 않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개중엔 대학생 강사가 많은 학원은 발도 들이지 않겠다는 전업 학원강사도 있었다. 인근 또 다른 수학학원의 5년차 강사인 강석준(가명·33)씨는 “강사를 생업으로 삼은 입장에서 보면 대학생 강사는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해서인지 수업준비도 잘 하지 않고 강의도 대충대충 시간만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며 “열정이 없고 진지하게 업무에 임하지 않는 모습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몇 차례 대학생 강사로 인한 사건을 경험한 강씨는 이제는 학원을 옮길 때도 대학생 강사가 많은 곳은 거르게 됐다고 털어놨다.
◇ 학원이 대학생 ‘유령강사’ 찾는 이유는 돈 때문
대학생 강사의 종류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3학년 이상의 강사다. 이들은 법에 따라 지역 교육청에 정식으로 학원강사 등록을 하고 강의를 한다. 자격 면에선 전업 학원강사와 다르지 않다. 다만 대학 수업이나 취업준비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임금도 시급으로 계약한다.
다른 하나는 유령강사다. 유령강사란 학원등록 자격이 없는데 강의를 하는 강사를 말한다. 현행 ‘학원법’(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학 1~2학년 학생은 학원강사 자격이 없다. 최근 이런 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며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은 통과되지 못한 상황이다. 현행법에 따라 강의를 하지 않고 질의응답을 받거나 채점을 하는 보조교사로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신분을 숨긴 채 강단에 서는 1~2학년 학원강사도 많다. 이들을 유령강사라고 부른다. 김씨도 실은 유령강사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학원이 대학생 강사를 채용하는 이유는 돈이다. 학원 운영에서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지난해 대치동에서 과학전문학원을 개원한 한 원장은 “대학생 강사를 채용하면 임금부담이 적고 다니는 대학을 홍보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러는 학부모가 대학생 강사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최신의 대입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학원에 머문 전업 학원강사보다 대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 대학생 강사 중에도 이런 점을 강점으로 어필하는 강사도 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주하나(가명·20)씨는 “바로 지난해 대입을 경험했기 때문에 대학과 관련한 최신 정보를 알려줄 수 있고 문제풀이도 최근 경향을 전달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주씨는 현재 지난해 다녔던 재수학원에서 수학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 시도때도없는 상담 스트레스와 학업시간 부족
대학생 강사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학업과 일의 병행이었다. 학원강사가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높고 육체노동이 덜해 꿀알바로 통하지만 뜻밖에 수업준비나 원생 관리에 쓸 일이 많고 다른 강사나 원장,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이다.
툭하면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학부모로 인해 학업에 방해를 받은 경우도 많다. 수업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하면 칼같이 모바일 메신저로 전화를 왜 받지 않느냐는 힐난이 날아온다. 한 대학생 강사는 “단순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는데 학원에 점점 매이는 기분”이라며 “내 공부는 소홀히 한 채 다른 자녀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면 관둘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생 강사들이 이런 감정을 크게 느끼는 시점이 시험기간이다. 과제와 시험이 쏟아지는 와중에 다른 공부를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없다 보니 학원에서 남는 자투리 시간에 시험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전업 학원강사들이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일터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이렇게 연출된다.
주씨는 그래서 수업을 아예 한 주에 세 번으로 몰아넣었다. 이른바 ‘주3파’(일주일 동안 3일만 강의를 듣는 대학생)다. 학원에 가는 월요일과 목요일은 비워두고 화, 수, 금요일에 17학점을 신청했다. 그러다 보니 강의가 있는 날이면 하루에 6시간 이상 강의를 듣고 있어야 한다. 교대생인 주씨는 아직 부담이 없지만 일반대학 학생이라면 여기에 토익 등 영어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박준희(가명·24)씨가 이런 경우다.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박씨는 취업준비를 보태기 위해 어학원에서 강사일을 시작했다. 시급은 1만 3000원이다. 원래 일주일 중 하루 이틀 정도만 일하려고 했지만 학원 측의 요청으로 매일 강의를 맡았다. 대상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다. 한 반에 5~6명씩 맡아 50명을 가르치는 수업스케쥴이다. 수업 시간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다.
박씨는 “시간이 많이 생길 줄 알았는데 수업을 전후해 수업준비나 잔업 등이 있어 취업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가 말한 잔업은 학원 블로그 관리와 채점 등이다. 학원 측은 박씨가 ‘젊다’는 이유로 블로그 관리를 부탁했다. 잔업을 하거나 블로그를 관리한다고 해서 시급을 더 쳐주거나 하진 않았다.
◇ “사교육 담당 거부감 느꼈지만 학생 만나서 보람도”
흥미로운 대목은 취재 도중 만난 대학생 강사들 대부분 일을 시작한 초기엔 사교육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데 거부감을 느꼈다는 점이다. 특히 교대를 다니는 주씨는 “앞으로 공교육에서 일해야 하는 입장인데 사교육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어도 될까 싶은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주씨는 고등학교 대입 시절 아예 학원에 다니지 않은 경험도 있어 고민이 됐다고 전했다.
박씨도 마찬가지다. 주씨와 달리 박씨는 초중고 시절 각종 학원에 다니며 사교육에 익숙했지만 대학에선 흔한 과외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다. 주씨는 “처음 학원에서 일을 시작하려 할 때 내가 과연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자격과 자질을 갖고 있는 것인가 자문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실제 학생들을 만나면서부터는 그런 고민도 사라졌다. 박씨는 “초등학생 저학년은 아직 철들지 않고 공부하는 방법도 몰라서 대하는 게 어려웠다”며 “차츰 아이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단순히 영어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자세나 생활습관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주면서 교육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 보람이 있다”고 전했다.
‘꿀알바’ 대학생 강사 “학업·일 병행 어려워”
-학부모 상담 못하고 시험기간에 ‘잠수’도
-가장 최근 대학입시 돌파한 최신정보 강점
-“사교육 몸담아도 되나” 정체성 고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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