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폐지에 제동 건 헌재 … 중2 학생 '갈팡질팡'
이재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4.12 16:15

-헌재, 11일 자사고·일반고 중복지원 금지 '위헌'
-2020학년도 입시는 이대로 … 2021학년도 안갯속

  • 헌법재판소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우선 선발권과 중복지원 금지조항에 대해 각각 합헌,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2020학년도 고등학교 입시는 2019학년도와 동일한 방식으로 치러진다. 자사고 선호도 전년도와 유사한 수준일 전망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재지정 평가)가 남아있어 2021학년도 자사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부모들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당장 2020학년도 고입은 2019학년도와 동일하게 치러진다. 현재 중3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일단 입시에 전념하는 분위기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당초 발표한 고입전형이 그대로 진행돼 교육현장의 혼란은 최소화할 것”이라며 “자사고 지원 열기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지만 중2 자녀를 둔 학부모는 입장이 달랐다. 서울 동작구 김보경(가명·48)씨는 “2021학년도 고입에서 자사고가 살아남았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헌재가 어중간하게 결정을 내려 자사고 입시 준비를 계속하기도, 중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털어놨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현상유지’다. 헌재는 자사고의 모집시기를 전기전형(8월~11월경)에서 후기전형(12월~이듬해 2월경)으로 옮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80조1항은 합헌으로 결정했지만, 자사고 지원 학생이 일반고에도 원서를 넣을 수 있는 중복지원 금지조항을 규정한 81조5항은 위헌으로 결정했다. 앞서 지난해 6월 같은 사건에 대해 자사고 측이 제기했던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정과 같다. 교육당국이 자사고의 우선 선발권을 폐지해 고입 단계부터 학생지원을 위축시키고, 재지정 평가로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려는 움직임엔 제동을 건 셈이다.

    그러나 김씨의 지적처럼 2021학년도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2021학년도 입시 때는 재지정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자사고들이 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사고의 경쟁률이 크게 오르거나 자사고 지원 열기가 사그라지는 등 예상이 쉽지 않다.

    서울 관악구 박병호(가명·51)씨는 “헌재가 두 조항에 대해 같은 판단을 내렸더라면 확신을 갖고 입시를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는 없앤다고 하고 법원은 막겠다고 나선 꼴이라 학생·학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게 됐다”고 탄식했다.

    헌재 판결을 둘러싼 어지러운 분위기는 소송 당사자에게도 읽힌다. 당장 판결 직후 교육부는 헌재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위헌조항에 대한 개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지원 학생이 일반고를 중복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둠으로써 여전히 자사고가 학생 선점권을 갖게 한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자사고 한 관계자는 “시 교육청의 대응은 사실상 재지정 평가로 승부를 보겠다는 선전포고 같다”고 털어놨다.

    실제 시·도 교육청이 마음만 먹는다면 2021학년도부터 자사고 지원 학생의 이중지원을 금하는 조치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고입전형 기본계획을 마련하는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기 때문이다. 단계별 지원과 배정으로 이뤄지는 기본계획을 수정해 자사고 지원 학생이 일반고에 지원할 때 지원횟수를 더욱 제한하거나, 배정 단계에서 임의배정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줄 수 있다.

    현재도 자사고 지원 학생의 일반고 배정 방식은 지역마다 편차가 있다. 서울은 자사고를 지원한 학생이라도 일반고 지원 시 불이익이 크지 않다. 일반고를 지원하면 1단계 20% 배정 이후 2단계 40%, 3단계 40% 배정에 포함돼 학교를 배정받는다. 2단계 배정은 학생의 지망을 우선하기 때문에 자사고를 지원한 학생이라도 지원하는 일반고에 배정될 확률이 있다.

    반면 다른 시·도에선 일반고 지원 학생의 1지망으로 정원 100%를 모두 채우는 방식을 택한 곳도 있다. 이런 경우엔 자사고를 지원한 학생은 무조건 고교평준화와 거리 등을 따져 정원을 채우지 못한 일반고에 임의배정된다. 자사고를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원치 않는 학교에 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자사고들은 재지정 평가에서 지정 취소 결과를 받아들면 행정소송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한 자사고 교장은 “대외적으론 학부모 지지를 얻기 위해 자사고 폐지에 맞서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자사고 폐지 압박이 지속하는 마당에 행정소송에 승산이 없을 것이란 우려도 크다”며 “재지정 평가 결과가 나오면 되레 폐지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