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내 아이의 사회생활 ‘대숲’을 아시나요
이재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9.02.21 10:58

-대학가 중심에서 10대 청소년들로 퍼져
-교우 관계, 학업 등 다양한 고민글 쏟아져
-학교폭력의 진원지로 악용되기도

  • /학교 대나무숲 페이지 캡처
    ▲ /학교 대나무숲 페이지 캡처
    “2학년 3반 김수현(가명) 잘 생겼어요, 여자친구 있나요?”

    서울 강남구 중학교의 ‘대숲’(대나무숲ㆍSNS상에서 익명으로 소통하는 게시판)에 올라온 익명 포스팅이다. 이 포스팅엔 곧장 동조하는 댓글이 달렸다. 개중엔 다른 반 누가 더 잘 생겼다거나, 다른 학생과 ‘썸’을 타고 있다는 댓글도 있었다. 이윽고 SNS 기능을 이용해 수현이를 ‘태그’하는 댓글도 이어졌다.

    대구의 한 고등학교. 졸업과 입학이 맞물린 2월, 이 학교 대숲은 예비 고등학생들의 질문이 많다. 어떤 교과서가 좋은지, 기숙사는 살 만한지, 남학생과 여학생간 관계는 어떤지 등.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선배들의 도움을 구하는 질문이 많이 올라온다. 귀찮을 법도 한 이런 질문에 재학생들은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준다.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대숲이 10대 청소년들의 중심 커뮤니티로 부상했다. 이성에 대한 관심과 학업에 대한 고민, 10대 청소년이 할 법한 자아에 대한 고민(?)까지. 익명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소재나 내용의 제한도 없어 학생들의 참여도 높다. 학생회 행사나 동아리 홍보도 대숲을 병행해 이뤄질 정도다.

    특히 대숲엔 초중고 학생들의 시기별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등학교 대숲은 대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다. 스포츠클럽 활동이 학생부종합전형에 유리할지 묻는 말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중학교 대숲은 고등학교와 비교해 이성친구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룬다.

    초등학교 대숲은 중고등학교에 비하면 활성화되지 않은 편이다. 학교에 따라 상황은 다르지만 ‘좋아요’가 1000개를 넘는 곳이 대부분인 중고등학교 대숲과 비교하면 초등학교는 두자릿수에 머문 대숲이 더 흔했다.

    대숲이 마냥 발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스쿨미투 폭로가 활발히 이뤄진 곳도 대숲이다. 학교폭력이나 왕따의 진앙이 되기도 한다. 일부 대숲은 그래서 익명이더라도 욕설이나 ‘저격’(웹상에서 특정인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행위)은 거르기도 한다.

    교사들이 대숲을 바라보는 표정은 복잡하다. 인천에 위치한 한 중학교 교사는 “하나의 소통창구니까 제약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문제가 있다”며 “반대로 그냥 내버려두자니 무분별한 폭로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다. 서울 도봉구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익명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학생들이 교사의 신체부위를 모멸감이 들 정도로 비하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이런 문제가 자꾸 불거지다 보니 교사들이 고민을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모임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