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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의사가 되기를 꿈꿨다. 누나가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하면서부터였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몰두했던 소년은 코피를 유독 자주 쏟았다. 몸이 점차 약해지면서 집중이 흐릿해졌고 의욕마저 떨어졌다. 심지어는 학력고사를 앞두고 한 달간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소년은 결국 재도전 끝에 원하는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윤영호(54)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청소년기 건강관리의 중요성에 주목해 지난해 8월 ‘학교건강지수(School Health Score Card‧SHSC)’를 개발한 윤 교수는 최근 학생들의 건강 문제가 이전보다 나빠지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미세먼지에 신체활동 줄어 체력 저하…대책 마련해야"
윤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 소아 청소년의 주요 건강 이슈로 비만, 영양관리와 운동 부족, 정신건강, 구강건강, 알레르기 등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알레르기 질환이 급증하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요 요인은 환경, 식습관, 위생 문제 등”이라며 “특히 미세먼지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청소년의 폐와 기관지 등을 자극해 염증을 일으키거나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는 학생들의 신체활동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이상일 경우, 외부활동을 전면 금지하고 있죠. 이제는 부족한 활동량을 늘리기 위한 대안도 논의해야 할 시점이에요. 실내에서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학교가 많지 않아 학생들의 신체활동 횟수가 확연히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체력이 점차 떨어지면 육체적 피로와 스트레스를 쉽게 느끼게 돼요. ‘악순환’을 반복하는 셈이죠.”
윤 교수는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학생들의 운동 부족 문제가 학업성취도 수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7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이환율 및 사망률 주간 보고서(MMWR)에 소개된 고등학생 대상 연구결과에 따르면, 하루에 최소 60분씩 주 5일 이상 신체활동을 하는 학생일수록 학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러한 연구결과는 운동 등을 통해 건강을 잘 관리하는 학생일수록 학업성취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고등학교에서는 체육수업을 줄이고 있어요. 주 3회 이상 체육수업을 하는 고등학교는 전체 4곳 중 1곳에 불과하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싶다면 오히려 학교 체육 활동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짙으니 학생들의 체육 활동을 중단하는 식으로 대처하기보단, 학교가 교육청이나 지역사회 등과 협력해 학생들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단 얘기죠. ” -
◇"학교 중심으로 학생 건강관리 체계 갖출 필요 있어"
윤 교수는 학생 건강관리 체계의 기본 단위로 ‘학교’를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이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르는 곳이 ‘학교’인 만큼 학생 건강관리 현황을 학교 단위로 정확히 파악하고 관리해야 한다”며 “학교의 역할을 진로‧진학 지도뿐만 아니라 학생 건강관리의 장(場)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학교를 중심으로 학생 건강관리 평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경우, 지난 2008년부터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SHI(School Health Index)를 개발해 지금까지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SHI의 적용대상을 중고등학교에서 초등학교까지 확대하고, 학교 단위로 학생 건강관리 체계를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죠.”
연구팀이 지난해 개발한 학교건강지수는 개별적인 건강 교육프로그램부터 학교 건강 정책에 이르기까지 총 158개 항목을 포함한 자가평가용 학교건강점수카드다. 가령,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건강 정책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워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한다. 이와 함께 학교에서 시행하는 체육수업·안전 및 보건교육·자살예방 상담 등 세부 프로그램의 현황과 내용을 파악하고, 학교의 전반적인 건강관리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링과 평가시스템 등도 평가할 계획이다.
실제로 이 같은 지표를 활용해 30개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교 건강정책과 평가 및 모니터링 등 핵심 지표가 ‘양호’할수록 학생들의 결석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 교수는 “학교건강지수를 중심으로 학생 건강관리 체계를 갖춘다면 학생들의 결석률과 지각률을 낮추고 학업성취도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건강은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형성될 수 있습니다. 내가 건강해지려면 나 자신과 영향을 주고받는 다른 사람들도 건강해야 한단 의미죠. 이런 점에서 학교는 건강관리 교육에 아주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어요. 특히 청소년기에 형성되는 여러 생활 습관은 성인기 건강에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칩니다. 청소년기에 비만을 겪으면 지방세포가 커지고 그 수가 늘어나는 탓에 성인이 돼서도 비만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처럼요. 이에 앞서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의 건강관리 현황을 진단해 개선한다면 올바른 건강관리 습관을 바탕으로 성인기에도 건강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학생 건강 ‘악순환’ 막으려면…“학교, 건강관리의 장(場) 역할 해야”
-학교건강지수 도입 추진하는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인터뷰
-“하루 최소 60분씩 주 5일 이상 신체활동 할수록 학점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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